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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리 600살 전나무...“죽어서도 하늘 높이 우뚝 선 당당함”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두 번째 여행 [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9]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2.06.0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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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항면 대야2리 (대동)마을의 600년 전나무 생전 모습

인간이나 동물은 생명이 있을 때는 너무나 당당하지만 죽어서는 볼품없다. 하지만 나무는 좀 다르다.

노거수는 죽어서도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껍데기가 썩어 바람에 떨어지고, 가지가 조금씩 꺽여 땅으로 돌아가고,또 많은 시간이 흘러야 本體가 부서져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김천의 오지(奧地)중에 한 곳이 부항면이다. 아직도 부항댐을 비롯해 때 묻지 않은 청정 그대로의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부항면엔 깊은 골짜기들이 여러개 있다. 부항댐을 건너 월곡리로 들어가면 해인동과 대야리로 나뉜다.

백두대간과 연결되는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군 황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사된 대야리 600살 전나무의 모습

대야2리 대야동은 삼도봉 동쪽 자락에 위치해 서쪽으로 밀목령을 넘으면 충북 영동군 황간면과 경계이고 동으로는 파천리, 남으로는 해인리와 닿는다.

대야(大也)리는 원래 천지(天地)동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는데 일반 백성이 사는 곳을 천지라 할 수 없다고 해 天에서 한一자를 빼고, 地에서 흙土를 떼어내 대야(大也)가 되었다고 한다.

대야2리는 큰 동네라 大洞으로도 불렸다.뒷산에 일제 강점기 큰 금광이 개발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탓다. 많은 금이 생산되면서 일본인 기술자들과 노동자들로 붐벼 번성하기도 했다.

현재도 대량,금량,대야라는 이름의 금광굴이 남아있다. 금광은 식당의 김치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50대 중반의 사람들은 금광석을 깨던 어릴 적 물레방아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김천시의회에서도 금광에 관한 학술토론회를 열고, 김천시에서도 금광관련 사업을 검토중이다.

일제 강점기엔 금광개발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지서까지 생겼다. 말썽을 피우면 잡아다  문초하고 사람을 때리기도 했다.

고사된 대야리 600살 전나무의 현재모습

이 마을 입구에는 흉고(가슴둘레) 5m의 하늘을 향해 바벨탑처럼 우뚝선 거대한 전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枯死된 채로 말이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옛날의 영화로운 시절의 자태를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지난 1999년 김천시 승격 60주년 기념사업으로 발간한 ‘김천기네스’에 지역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로 기록되기도 했디. 그 당시 키가 30미터 인데 20년 전에 벼락에 맞아 부러지기 전에는 50미터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나무 노거수는 경북에서 유일한 나무로 1999년 12월 편찬된 ‘김천시사’에도 대야리의 상징으로 기록된 바 있다. 하지만 10년 후인 2020년에 고사했다.

출판된 한 노거수 책자에는 2002년 당시 전나무의 나이는 570년 ,수고는 50m라고 적혀있다.

고사되어 썩어가고 있는 대야리 600살 전나무의 현재모습

나무가 돌아가신지 2년이 된 지금 그 푸르던 잎과 가지는 다 사그라져 떨어지고 몸통만이 옛날의 강건함을 보여주고 있다.

몸통을 감싸던 껍데기는  떨어져 알몸이 드러나고 있다.

조금씩 위에서부터 썩어 키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몸통만 남고 다시 시간이 흐르면 다리만 남을 것이다.

더 시간이 흐르면 키는 자꾸 낮아져 쓰러지는 날이 올 것이다.

전나무와 350살 느티나무/ 두 나무 사이로 원래 길이 있었다.

김천시 농업기술센터에 근무중인 이 마을(大洞) 출신의 홍영기 팀장은 동네에서도 이 나무를 살리려고 고사한 전나무와 350살 느티나무 사이에 있던 원래의 마을길을 바깥으로 돌려 차가 다니는 길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어릴 때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은 나무인데, 조금 더 일찍 관심을 가졌더라면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전나무는 주로 동네의 경계와 절의 경계에 심겨졌다.

동구밖과 山門의 내외를 가르고 안내하는 현대식 안내판인 셈이다.

전나무라는 이름은 하얀 유액(젖)이 나온다고 해서 젖나무로 불리다가 전나무가 되었다.

전나무는 고산대의 한랭한 지대에서 자생한다, 때론 계곡이나 바람이 잘 통하는 고개 지형도 냉해가 발생하는 지역이면 드물게 산다.

전나무 수종의 노거수는 대야2리가 경북에서는 유일했었다.

고사된 전나무 뒤 350살 느티보호수

바로 옆에는 350살 된 느티 보호수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허전함을 달래준다. 느티나무 곁에는 고사한 전나무의 20대 손자쯤 되는 전나무 한 그루가 잘 자라고 있다. 유전자는 모르지만 후계목인듯 하다.

이곳에는 한랭지대에 생육하는 상록침엽수인 전나무와  활엽수인 느티나무가 공존하며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사한 전나무의 껍데기는 하얗게 변해 살아서 어떤 나무인지조차 상상하기 어렵지만,우람하고 단단한 근육질의 心材는 그가 보통 나무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파천리 숲실 경로당 앞 언덕의 전나무/황악신문
칠불사 동네 입구의  전나무/황악신문
폐교된 대야초등학교 부지의 거대한 전나무

다행히 부항리에는 높이가 20미터에 달하는 전나무들이 가끔 보인다.

김천물소리생태숲 가는 길가 언덕의(파천 숲실 경로당 앞) 전나무도 멋있다.

칠불사 들어가는 길목의 농장 입구에도 큰 전나무 두 그루가 있다.

가장 큰 전나무는 지금은 폐교된 대야초등학교 부지에 있다. 수고가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엄청난 높이다. 흉고도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나무다.

관리를 조금만 한다면  고사한 나무의 후계목으로 삼기에 충분해 보인다.

대야초등학교 부지의 전나무는 200년 이상 되어 보이는데 대야초등학교 졸업생의 얘기를 들어보면 최소 100년 이상 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본 부항댐은 가뭄에 수위가 많이 내려가 잠겼던 흙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전에는 祈雨祭를 지내고도 남을 심한 가뭄이다.

부항을 한 나라의 왕조보다 더 길게 지켜 온 부항의 수호신인 전나무의 신통력(神通力)으로 가문 이 땅에 귀한 비를 내려 주시길 기원했다.

고사한 대야리 600살 전나무와 후계목

600살의 긴 삶을 마감하고 2년 전 영원한 安息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전나무님의 명복을 빈다.

신령스러운 전나무가 긴 세월을 뿌리박고 사시면서 겪은 대야리의 아득한 여러 추억과 일제 강점기의 금광수탈 등 많은 얘기들을 들어보고 싶다.

꿈속에서라도 전나무의 위대한 정령(神)께서 나타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꼬깃꼬깃 숨겨진 얘기들을  조금이라도 들려준다면 그 은혜에 感服(감복)할 것이다.

기술이 더 발달한다면 전나무의 DNA에 담겨진 부항의 傳說들을 VR(가상현실)로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회화나무와 선비문화 등

#김천의 나무 #대야리 600살 전나무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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