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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유일의 천연기념물 조룡리(釣龍里)은행나무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두 번째 여행 [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1]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2.02.2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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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젖가슴 같은 옹이로 반겨주는 너그러운 품”

조룡리 은행나무

증산에서 대덕면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에 조룡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좁다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예상보다 긴 골짜기가 동네를 이루고 있다.

섬실 혹은 섬계(剡溪)로 불리는 조룡1리는 조선 세조때 단종 복위를 주도한 백촌(白村) 김문기의 17세 손인 김경욱이 영동에서 이거해 김녕김씨 충의공파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조룡(釣龍)이라는 이름은 마을 앞 봉곡천에서 용을 낚았 올렸다는 용구(龍口)라는 웅덩이가 있어 연유한 이름이다.

조룡리 은행나무

동네 입구의 노거수 느티나무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에 서원이 하나 있다. 섬계서원(剡溪書院)이다. 섬계서원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선생의 충절을 기리고자 창건됐다. 김문기와 아들 김현석 부자를 주향하고 지례현 출신 유학자 장지도,윤은보,서즐을 종향하고 있다. 1802년(순조2년)에 세워졌다가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훼손되었다가 1899년 복원됐다.

조룡리 은행나무

섬계서원 뒤쪽 담장곁에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김천유일의 천연기념물인 조룡리 은행나무다. 천연기념물 300호로 높이 28m, 가슴높이둘레 11.6m인 노거수로서 가지의 길이는 동쪽 6.8m, 서쪽 12.3m, 남쪽 9.1m, 북쪽 13.4m이다. 가지가 동서로 19m, 남북으로 22.5m 정도의 크기로 퍼져 있는 엄청난 수세다.

조룡리 은행나무

나무의 나이는 짧게는 420년에서 500년,최장 800년까지 보기도 한다. 은행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섬계서원을 세운 무렵에 심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시기가 200년 정도에 지나지 않으므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나무를 섬기는 제사의 흔적이나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김녕김씨 종중에서는 서원의 일부라 여겨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1980년대 서원의 인근 밭 주인과 은행나무의 소유권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김녕 김씨 종중이 승소했다.

조룡리 은행나무

나무를 심은 주체에 대해서도 김녕 김씨와 서산 정씨 간에 상반된 주장이 있다.

은행나무는 왕조가 바뀔 정도의 기나긴 세월을 묵묵히 버티어 온 신령스러운 나무다. 임진왜란 때 불이 타올라 가는 것을 호미로 끗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부터 430년 전에 이미 큰 나무였다는 말이니 최소한 500살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1970~198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다람쥐나 구렁이가 살기도 했고, 1970년대에는 나무에 서식하는 다람쥐를 잡으려 마을 청년이 불을 피워 다람쥐 구멍에 연기를 내다가 화재를 낸 일이 있다고 한다.

조룡리 은행나무

지난 1982년 11월 3일 천연기념물 제300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2015년 김천시는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문화재청과 함께 유전자원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DNA 추출과 나무를 복제해 육성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현재 73주의 후계목이 증식되어 자라고 있다.

조룡리 은행나무는 2015년 서울 용문사 은행나무,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영동 영국사 은행나무,청도 대전리 은행나무,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등 1000년을 넘은 은행나무 17그루 중 하나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노거수 유전자원 보존 대상목에 포함됐다.

섬계서원의 담장에 갇혀 은행나무를 직접 대면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귀한 나무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도록 담장을 개방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CCTV를 설치하는 등 약간의 보호 장치만 마련된다면 신령스러운 나무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잎사귀가 파랗게 돋는 봄,푸르디 푸른 여름의 시원함,단풍이 물드는 가을이면 은행이 가득 열린 노란 할머니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겨울이면 찬란하면서 우람한 은행나무의 裸身을 감상할 수 있다.

조룡리 은행나무에 젖가슴을 닮은 유주(乳柱)가 주렁주렁 매달려 자라고 있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 밑으로 많은 옹이가 할머니의 젖꼭지처럼 늘어져 기이함을 더한다. 이 옹이는 은행나무 줄기에만 자라는 유주(乳柱)다. 유주는 나뭇가지에서 땅 쪽으로 발달하는 돌기를 말하는데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공중의 가지에서 자라난 뿌리의 일종이다. 남자의 고추를 닮기도 해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 나무는 암컷이다. 밑둥 부분은 중심부가 썩어 조치를 취한 흔적이 보인다. 운이 좋으면 섬계서원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섬계서원을 지키고 있는 김녕 김씨 23세손인 김형근 翁은 "어린시절 은행나무에 불이 나서 10일 정도 탓고 그 당시 주사 1대에 60만원 짜리 3대를 나무에 맞혔는데 지금으로 치면 1000만원이 넘을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별탈없이 살아오던 나무가 단 한번 1950년 6.25를 예언하듯 세 개의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지금도 역사학자, 은행나무를 연구하는 사람, 풍수사 등 여러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귀뜸했다.

할머니의 가슴같은 옹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5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김천을 지켜온 할매 은행나무가 오래사시길 바란다.

인간은 변덕이 朝變夕改지만 나무는 말없이 모든 것을 참는다.좋고 나쁜 것 ,기쁘거나 슬픈 것, 모든 것을 눈감고 오로지 바람이 불 때만 자신의 얘기를 세상에 조금씩 들려 줄 뿐이다.

조룡2리 봉곡사 대웅전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좁은 골짜기를 따라 15분정도 차를 달리면 오른쪽에 봉곡사라는 절이 나온다.

봉곡사에는 재미있는 창건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도선국사가 산 너머 구성면 사등리 갯절(단산)에 절터를 닦고 목수를 불러 재목을 다듬는데 까마귀들이 나무 다듬은 자귓밥을 계속 물고 가자 이상하여 까마귀의 뒤를 따라가 보니 지금의 봉곡사 절터에다 물고 온 자귓밥을 쌓아 집을 짓고 있어 주위를 돌아보니 산세가 더 좋은 명당이라 절터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봉황의 전설인 서린 비봉산(飛鳳山)/ 봉황의 목이 선명하게 보인다.

사찰의 이름이 봉곡사인 것은 절 뒤에 강종대왕의 능이 있어 봉능, 산 이름은 상스러운 새가 나뭇가지를 물고갔다고해 비봉(飛鳳)산,절 이름은 鳳谷寺(봉황의 골짜기)라고 했다,

봉곡사 명부전의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은 숙종 16년인 1690년 조성된 불상으로 경북도유형문화재 제405호로 지정됐다.

봉곡사에 모셔져 있는 봉황의 알

절집 앞에서 비봉산을 바라보면 봉황(鳳凰)의 목이 선명하게 보이고, 절집 앞에는 봉황이 날아가지 말고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하는 돌로 만든 봉황의 알 두 개가 정성스레 모셔져 있다.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조룡리 은행나무 #봉곡사 #김천의 노거수를 찾아서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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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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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윤 2022-03-30 16:35:25

    은행나무에 종유석처럼 ~~
    김천에 천연기념물이 있다니
    유유자적 함 돌아보고싶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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