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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문국 세자궁터,내황실, 동고산,진대골을 찾아서...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첫 번째 여행 ” [감문국 이야기 15]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1.10.0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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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문국의 진산인 감문산 취적봉(감문산성과 봉수대 흔적이 남아 있다)/황악신문

계절이 가을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갈대꽃도 무게를 줄이며 너울거린다. 나락도 조금씩 색깔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가을 햇살이 제법 따갑다. 만물을 익히는 肅殺之氣의 계절이다.  ‘감문국이야기나라’가 건설중인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주변 감문국 시대 궁궐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

지역사학계는 현재 개령면사무소를 중심으로 감문국 궁궐의 중심건물이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궁궐의 부속 연못인 동부연당을 비롯해 호두산 아래 세자궁터와 동고산 근처 내황실 등 개령면 사무소를 중심으로 역마고개를 거쳐 양천리 일대까지 상당히 광범위하게 분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개령면 호두산 아래 세자궁터,뒷편에 개령향교가 보인다/황악신문

#세자궁터

감문국의 진산은 감문산이다. 성황산이라고도 불린다. 개령초등학교를 우측으로 돌아 개령향교쪽으로 올라가면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태의 산이 있다. 그 산의 정상이 취적봉이다.감문국의 진산인 감문산의 다른말은 취적봉(吹笛峰)이다.

감문국 시대에 나라에 변고가 있거나 군사를 동원할 때 산에서 피리나 소라를 불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토성인 감문산성과 봉수대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취적봉 아래 계림사는 호랑이의 심장에 위치하고 있다.

세자궁터는 현재 개령향교 아래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호두산 오른쪽 일대 지역으로 감문국 시대 세자의 별궁이 있었다.

1934년에 우준식(禹雋植)이 편찬한 '감문국개령지(甘文國開寧誌)'에 세자궁터와 관련해 “이 세자궁도 감문국 시절의 이야기니 사록(史錄)이 없음으로 미상(未詳)하나 오늘날 동부동(구 교동) 호두산 좌측 하이니 그 터에 지금 패구나무 오파(五把)나 되는 것이 옛말을 일러 주는 듯하며 세칭(世稱)이 터를 세자궁터라 하나니라”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몇 채의 집들과 농사짓는 밭으로 변해 발굴을 하지 않는 한 외형으로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내황골 전경(감문국의 왕비와 여인들이 거주하는 내황실이 있었다)/황악신문

#내황골

세자궁터에서 좌측으로 자그마한 산을 돌면 양천리가 나온다.

내황골(內皇谷)에는 감문국 왕비가 거처하는 내황실(內皇室)이 있었다고 한다. 內자를 쓴 것은 여인들이 거주하거나 은밀한 공간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내황실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가지로 의견이 갈린다. 개령면 양천리 당고산 뒤쪽 골짜기에 있었다는 설과 현재 양천리 고분과 가까운  양천리 마을에  있었다는 것이다.

 당고산 뒤쪽은 고개를 넘어야 하고, 개령면 소재지에 있던  궁궐과 거리가 너무 멀어 양천리 마을로 보는 설이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조선시대 양천역이 있던 마을회관 전경/황악신문

내황실과 가까운 현재 양천리 마을회관 자리에는 조선시대 양천역(楊川驛)이 있었다. 양천역은 남면 부상역,구성면 작내역,삼락동 문산역,대덕면 장곡역과 함께 김천의 5개 역 중 하나다

당시 양천역의 규모는 말 5필(중마2,소마3),역리33명,전답이 33결이었다. 조선초기부터 역으로 인해 마을이 형성되고,세습되는 역리의 후손들이 마을에 자리잡았다. 역은 1895년에 폐지되어 흔적을 찾기 힘들다.

감문국시대 북을 걸고 군사훈련을 시켰던 동고산 전경/황악신문

#동고산과 진대골

개령면 양천리 마을 뒤 우측편으로  높이 140m 야산이 동고산(㨂鼓山)이다.  감문국 시대 나라에 변란이 생길 때 이 산에 걸어 놓은 북을 쳐서 알렸다고 전한다. 실제로 보면 야트막한 산이 빗내마을까지 연결된다. 평상시에는  동고산에 걸어놓고 치는 북소리에 맞춰 앞쪽 넓은 들판인 진대골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감문국시대 병사들이 훈련하던 진대골 전경/황악신문

진대골(陣大谷)은 양천리 동고산 앞쪽 들판을 말한다. 감문국 시대 군사들이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들판이지만 당시에는 산이 이어진 골짜기였기에 골(谷)자를 붙였다. 지금은 논으로 변했다.

성안골(城內谷)은 양천마을 뒤 감문산 골짜기로 감문국 존재할 당시 전쟁이 일어나면 입구에 성을 쌓고 일반 백성들과 군사들이 항전했다고 전한다.

골짜기가 깊고 못까지 있어 수백명이 충분히 은거할 수 있다.

동고산과 진대골 사이에 서면 시공을 너머 2000년 전 둥~~둥, 북소리와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사달산 전경(사달산 기슭에 원룡장군 샘이 있다)/황악신문

#진동과 원룡장군,바위백이 전설

빗내마을 뒷산의 이름은 사달산이다. 사달산에 유명한 샘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원룡장군샘이다. 원룡장군샘(元龍將軍샘)은 개령면 광천리 빗내마을의 사달산(四達山) 너른골 기슭에 있는 데 다른 이름은 원룡장군수(元龍將軍水)로도 불린다.

삼한시대 감문국에서 전해지던 천제가 산신제의 형태로 최근까지  전해져 빗내마을에서는 원룡장군 샘 근처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제물로 바치던 소가 돼지로 변하고 규모는 줄어들기는 했지만 전승되다 시대의 변화속에서 명맥이 끊어졌다.

원룡장군샘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진동(陳童)이란 아이가 이 물을 먹고 힘이 세어져 감문국에 큰 공을 세우고 원룡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우물을 먹고 힘이 세어진 진동은 사달산 용천바위를 깨어 한 조각은 마을 앞 개울에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빗내들(진동이 다리를 놓은 냇가가 있었지만 경지정리로 사라졌다)/황악신문

현재 빗내농악 전수관 앞쪽에 냇가가 있었는데 이곳에 다리를 놓았는데 지금은 경지정리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른 한 조각은  지고 내려오던 바위가 굴러 떨어져 땅에 박혀 지명이 바위백이로 불리게 됐다. 그 바위는 최근까지 남아 있었지만 마찬 가지로 경지 정리 과정에서 사라졌다.

양천리에 존재하는 양천리고분이 바로 진동 즉 원룡장군 무덤이라는 얘기가 전해온다. 지역사학계에서는 양천리 고분의 이름에 원룡장군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자문

문재원 (향토사학자,前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조상의 얼찾아(문재원)

금릉빗내농악 (민속원)

대구.경북 청동기시대 문화(삼한문화재연구원)

김천의 마을과 전설(김천문화원)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옛 상주를 담다(상주박물관)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감문국개령지(우준식)

경상북도 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

김천역사의 뿌리 감문국

『김천의 금석문』(김천문화원, 1997) 등

#김천시 #감문국 # 감문국 궁궐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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