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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속에 그려진 감문국(甘文國)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첫 번째 여행 ” [감문국 이야기 14]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1.09.24 12:54
  • 댓글 1
김천의 젖줄이자 고대 감문국의 발원인 甘川

#문학작품으로 남은 감문국

현재 김천의 뿌리인 고대 삼한의 소국 감문국은 김천의 젖줄인 감천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감천(甘川, 甘泉)은 한자의 차용으로 우리말로는 '감내'다.

'감’은 신(神)을 이르는 것으로, 단군왕검이란 말처럼 ‘검’의 모음이 바뀌어 ‘감’이 되고, 또 ‘중심’의 의미도 있다. 따라서 감천은 신처럼 귀하고 중앙을 흐르는 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감문국은 3세기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의 감로국(甘路)국이라 학자들은 보고 있다.

‘감천’의 ‘천’은 ‘내’로도 읽혀지므로 ‘감천’은 ‘감내’로도 불렸고, ‘감로국’의 ‘로(路)’는 ‘노(奴)’와 같이 ‘내’로도 표기되므로 결국 ‘감로’와 ‘감내’는 같은 표기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2000여 년 전 감천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감문국의 흔적은 지명과 전설,문학작품으로 남아 감문국의 실존과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김천에 산재한 문화재와 유물 고분 등은 많이 훼손됐지만 선인들이 노래한 주옥같은 詩들은 감문국의 존재를 世世孫孫 전할 것이다.

금효왕릉/2021년 가을

#금효왕릉을 노래한 작품

감문국의 왕릉으로 전해지는 금효왕릉은 개령면 동부리 궁궐지로부터 북쪽으로 8km떨어진 현재의 감문면 삼성리 930번지 밭 가운데에 있다.  봉분높이 6m, 지름15m 크기로 김천지역 최대의 고분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말무덤이라고 전해왔다. 말무덤은 “큰 무덤”이라는 의미다.

감문국 시조왕의 무덤이라는 설과 김천의 별호인 금릉(金陵)이 이 무덤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금효왕릉에 관해 동국여지승람과 교남지에는 “현의 북쪽20리에 큰 무덤이 있는데 전하기를 감문국 금효왕릉이라 한다.[在縣北二十里有大塚俗傳甘文金孝王陵]고 적고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곡송면 삼성동에 큰 무덤이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감문국 金孝王陵이라 한다[在谷松面三盛洞有大塚俗傳甘文國金孝王陵]고 전한다.

금효왕릉/황악신문

조선 헌종때 진사에 합격한 박영무(朴永武)는 무민루서(撫民樓序)에서

금효왕릉에 봄풀이 돋고 [金孝王陵春草生]

홍평장리엔 저녁연기 걸리네[洪平章里暮煙橫]

관인은 익숙하게 산화곡을 부르는데[官人慣唱山花曲]

적월루에 오르니 더욱 또렷이 들리네[笛月樓頭耳晢明]

라고 노래했다.

우준식이 펴낸 감문국개령지/황악신문

우준식이 1934년 발행한 감문국개령지에도 금효왕릉에 대해 “이 陵은 甘文國금효왕릉이니 現 甘文面 三盛洞(舊 午盛洞下)에 있으니 只今은 雜草松木이 奔生하야 보는 사람의 안타가운 가삼을 鎭定할 수 없을만치 거치러웠도다” 라고 평하고 지은 시 한수가 전해진다.

옛무덤 거치러지고

거치러진 풀이 요란하니

아마도 금효왕 넋이

편치 않은가 하노라

금효왕릉/황악신문

개령현감 장진환(張震渙 재임1708-1712)도 금효왕릉에 들러

옛 잣나무 푸른솔은 아직도 홀로 남았는데 [古栢蒼松今獨留]

번성했던 자취는 모랫벌 갈매기에게 부쳤네 [繁華遺躅付沙鷗]

무성한 초목은 빈 산을 지키는데[離離草樹空山裡]

초목동이 올라앉아 노래나 부르네[樵牧攀登動野謳] 라고 읊었다.

1917년 일제시대 찍은 장부인릉/황악신문

#장부인(獐婦人)을 노래한 시

장릉 또는 장부인릉으로 불리는 이 고분은 개령면 서부리 웅현(熊峴)도로변의 옛 사자사(獅子寺)터 옆에 있다.

1905년에 펴낸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라는 지리용 교과서에는 “고 금효왕릉이 유하고,군서웅현리에 감문왕비 장부인릉이 유하며...”라고 장부인릉이 실존했음을 명기하고 있다.

1917년까지 릉이 존재했던 것은 국립박물관의 자료로 확인이 가능하다.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봉분의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장릉은 현의 서쪽 웅현리에 있는데 세상에서 말하길 감문국 시대 장부인의 능이라고 한다(獐陵在縣西熊峴里俗稱甘文國時獐婦人陵)- 『동국여지승람』

장릉은 개령면 서부동에 있는데 세상에서 전해오기를 감문국시대 장부인릉이라고 한다.(獐陵在開寧面西部洞俗傳甘文國時獐婦人陵)- 『조선환여승람』

장릉은 군서부 웅현리에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감문국시대 장부인릉이라 한다(獐陵在郡西熊縣里俗傳甘文國時獐婦人陵)- 『교남지』

일명 장부인릉이라고 하고 일명은 장희릉(獐姬陵)이라고 하나니 현재 서부동 서편 웅현에 있으니 감문국 때의 어너 임금님의 총희(寵姬)였든 것이다- 『감문국개령지』

장부인릉은 포도밭으로 변해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황악신문

감문국개령지에 우준식이 지은 장부인릉에 대한 시가 전한다.

사랑하는 獐姬가 어이가단 말가

한번가면 몯올 길을 어이 가단말가

宮闕에 계옵신 임금님의 옷깃에

구슬같은 눈물 떠러트리고

千百年 잘있으라 祝願 드리였거든

어인일가 오날의 메여진 무덤우에

無心한 까마귀 앉었다 날너더라

장부인릉이 있던 자리에 돌멩이 하나가 놓여있다/황악신문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이 우리 민족이 세운 전국의 21개 고대국가의 도읍지를 답사하면서 지은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서 감문국을 회고하는 시에서 장부인을 언급했다.

장부인은 간 지 오래인데 들꽃은 향기롭다[獐妃一去野花香]

땅에 묻힌 낡은 비는 금효왕의 흔적[埋沒殘碑去孝王]

크게 일으킨 군사 삼십 [三十雄兵酋對發]

달팽이 뿔 위에서 천 번은 싸웠으리[蝸牛角上鬪千場]

장부인릉이 있던 포도밭은 시설물설치로 접근조차 불가능하다/황악신문


#감문국을 영역을 노래한 시

감문국 궁궐의 연못으로 전해지는 동부연당/황악신문

감문국의 옛 영화를 회고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한 작품들이 전해오고 있다.

조선전기의 문신인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은 무릉잡고(武陵雜稿)에서 감문국의 수도인 개령땅을 지나며 다음 시를 남겼다.

감문국 옛 터에 초가을 비 내리는데[甘文故國新秋雨]

백발의 풍기군수 이곳을 지나네 [白髮豊基太守行]

동루에서 진중히 술잔 나누니 [珍重東樓雙榼酒]

한 생애 친한 벗 사군의 정일세 [百年靑眼使君情]

 

조선 전기 매계 조위(曺偉)의 서제(庶弟)인 김천출신 적암(適庵) 조신(曺伸 1454-1528)도 군지제영(䐃誌題詠)에서 감문국을 노래했다.

일찍이 감문국의 한 고을이더니 [曾屬疳文一附庸]

비로소 도첩을 나누어 현이 되었네[始分圖牒作雷封]

오늘날 군민이 극히 번성함은[于今劇郡民繁庶]

선왕의 태실봉을 두어서였네 [爲有先王胎室峰]

김종직이 개령현감을 지낸 아버지 김숙자와 감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물버들/황악신문

#감문국의 榮華를 회고한 시

개령현감을 1755년부터 1757년까지 역임한 이민보(李敏輔)는 감문국에 대한 回顧의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한조각 거친산에 패업의 흔적이 남아 [一片荒山覇業留]

두견새 흐느끼며 갈매기를 조상하네 [杜鵑啼罷弔沙鷗]

몇 그루 나무가 쓸쓸한 왕릉지키고 [數株肅瑟陵墟植]

물가의 송백숲에서 나 또한 노래하네 [松柏臨溜共短謳]

 

개령현감을 1862년부터 2년간 역임한 이종상(李鍾祥)도 감문국의 영화와 신라에 의해 망한 비운의 감문왕조를 회고했다.

오래묵은 잣나무 황량한 곳에 능묘만 남았고 [古栢荒凉仙寢留]

동풍에 두견새 울어 백구를 조상하네 [東風鵑哭弔沙鷗]

여산 만세에 영황의 무덤이요 [驪山萬世瀛皇塚]

무덤위엔 오늘 목동의 노래만 남았네 [塚上如今但牧謳]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궁궐의 연못으로 전해지는 동부연당은  연꽃이 아름다운 작은 연못이었다.

감천 변에 남아 있는 고목 버드나무는 김숙자(金叔滋)와 김종직(金宗直) 부자가 심은 것이라 전하는데 김숙자가 개령현감으로 재임할 때 감천이 범람하여 개령면 동부리와 양천리 일대 곡창지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제방을 축조하고 둑을 보강하기 위해 부자가 함께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감문국을 찾은 많은 시인과 묵객들은 동부연당과 우람한 버드나무를 둘러보며 2000년 전 감문국을 마음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자문

문재원 (향토사학자,前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조상의 얼찾아(문재원)

금릉빗내농악 (민속원)

대구.경북 청동기시대 문화(삼한문화재연구원)

김천의 마을과 전설(김천문화원)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옛 상주를 담다(상주박물관)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감문국개령지(우준식)

경상북도 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

김천역사의 뿌리 감문국

『김천의 금석문』(김천문화원, 1997) 등

 

#김천시 #감문국 #문학작품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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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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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윤 2021-10-20 16:22:34

    고향 옛 이야기 재미있네요
    세월은 흘러 벌써 인생을 되돌아 볼 나이가되니
    옛 사람들의 발자취가 나를 다시금 되돌아 보게하네요~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고 족적하나 못남기고가는것 같아 맘이 씁쓸하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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