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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혼이 구름이 되어 버린 白雲山과 속문산성“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첫 번째 여행 ” [감문국 이야기 7]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1.05.2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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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문국의 고성으로 전해지는 속문산성

 “석축의 둘레는 2455척이고 높이는 7척인데, 성내에 우물 두 개와 못 두 개 ,군창이 있다(石築周圍二千四百五十五尺 高七尺 內有二泉二池 有軍倉)”,-『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군의 북쪽 40리에 있는데 석축의 둘레가 2540자이고 안에는 두 개의 샘과 두 개의 못이 있다.(在郡北四十里石築周二千四百五十尺內有二千二池-『조선환여승람』

멀리서 바라본 백운산과 구름

#백운산 가는 길

사람은 가도 山과 傳說은 남는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이번에는 감문인들의 원한이 구름이 되었다는 백운산과 속문산성을 찾기로 했다.

백운산을 찾아 가는 날은 한참 봄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감문면 사무소를 지나 좌측으로 돌아 송북리로 가다 보면 오른쪽 산비탈 논 가운데 감문국 금효왕릉이 있다.

금효왕릉을 지나 송북2리 마을회관 주차장을 찾아 차를 몰았다.

저 멀리 흰 구름 아래 백운산이 보인다. 1800여 년 전 감문국이 멸망할 때는 저런 뭉게 구름이 없었으리라.

수백의 군사와 백성들이 처절히 사로국(신라)에 맞서다 목숨이 끊어질 때마다 하나씩 생긴 구름은 지금도 여전히 백운산을 덮고 있다

백운산의 진달래

송북2리 성북마을회관에 차를 세우고 백운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야생화는 들꽃치곤 꽤나 예쁘다. 오래된 추자(호두)나무가 역사를 증언하는 듯하다.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백운산의 등산로가 나타난다.

산의 초입부터 온통 진달래다. 봄의 전령인 분홍색의 진달래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저 산위에는 수백의 혼령들이 구름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온 산의 진달래가 원혼의 짙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산 전체가 진달래가 많은 것을 보니 감문국 백성들의 피가 떨어져 진달래로 환생했을지도 모르겠다.

산을 오르며 정상을 보아도 여전히 구름이 산을 덮고 있다. 구름은 희고 포근해 보이지만 감문국 백성들의 원한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인가?

백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쉽지 않다. 온통 바위로 된 절벽과 요새다. 송북마을 방면으로 신라(사로)군이 쳐 들어오기는 쉽지 않을 듯 싶다. 왜 이 산에 산성을 쌓고 최후 결전의 장소로 선택했는지 이해가 된다.

길가에 알뜰히 핀 봄꽃은 시선을 잠시 멈추게 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 아름다움이다.

백운산 정상 표지석

#백운산 정상

맘대로 되지 않는 몸뚱이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쉬기를 수 차례 드디어 정상이다.

 나이가 100년은 족히 넘을 듯한 싱싱한 소나무와 저 멀리 펼쳐진 선산읍의 풍경, 여기가 주변에선 가장 높다. 얼마전 618.3m에서 631.3m로 산의 높이가 정정됐다.

미처 다 피지 못한 古木 생강나무가 한창 꽃잎을 내밀고 있다.

깨진 기와 파편들

#산성의 흔적들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3-4분을 걸어가자 깨진 기와 파편들이 즐비했다. 군창(軍倉)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2018년 기록을 보면 건물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는 대형 주춧돌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찾지는 못했다.

좀 더 산을 헤메자 드디어 산성의 성곽이 완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감격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인위적으로 가공한 네모난 돌의 모양이 정확하다. 2천년 전 감문국의 선조들이 쌓은 성이다.

기록에 따르면 감문국 시대의 산성 유적인 속문산성(俗門山城)은 감문면 문무리와 송북리 사이 속문산 600m 지점에 축조된 산성이다.

石城의 흔적

능선을 따라 동북으로 석성(石城)과 토성(土城)이 혼용되어 축조되었고, 송북마을이 있는 동북쪽으로는 자연 절벽을 그대로 활용했다.

성곽은 먼저 석축을 70㎝ 정도 하단에 쌓고 그 위에 토성을 쌓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높이는 2.5m이고 길이는 800m에 달하는데, 석성은 대부분 무너지고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내 북서쪽 끝부분에는 둘레30미터, 지름10미터, 높이 5미터의 봉수대터가 남아있는데 지금은 무연고 묘지가 정상부에 들어서 있다.

군창지(軍倉址)로 추정되는 정상부 하단 평탄지에서는 지금도 무수한 와편(瓦片)이 산 곳곳에 흩어져 있다.

건물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

건물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는 대형 주춧돌이 남아있다는 기록이 있지만 찾지는 못했다.

속문산은 다른 이름으로 백운산(白雲山)이라고도 하는데 구전에 의하면  감문국이 신라에 망하게 되자 백성들이 속문산으로 들어가 끝까지 항전하다가  몰살을 당했고, 그 원혼이 구름으로 변해 산을 덮으니 이후 백운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석성은 많이 무너졌지만 온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곳이 군데군데 보인다. 2000여년 전 감문국의 선조들이 쌓은 산성의 흔적이다.

작은 읍락국가가 농사철을 제외하고 이 정도의 산성을 쌓으려면 인구의 대부분을 동원해야 했으리라. 그 노고에 가슴이 찡하다.

30여 년 전까지 우물과 물이 고인 큰 규모의 웅덩이를 목격했다는 주민의 증언을 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기우제의 전설

개령현 수령과 송북리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백운산 기우제단이 있다고 전해져 오는데 눈에 띄지 않는다.

높이 110㎝ 정도의 화강암 바위가 땅에 박혀 있는데 이 돌 위에 제물을 진설하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물준비는 제단으로부터 70m 아래에 위치한 우물에서 준비했다는데 지금은 우물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물은 나오지 않는다

1960년대 이후 단 한 차례도 기우제가 행해지지 않은 관계로 기우제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주민조차 찾기 힘들다.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선산

#감문국의 영역

정상으로 돌아와 저 산 너머 보이는 선산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곳까지 감문국의 영토였을지도 모른다.

빗내 농악의 탄생지인 수다사가 감문과 가까운 선산 무을에 있으니 그 당시 선산 무을까지는 최소한 감문국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산 정상에 거의 왔을 무렵 좀처럼 보기 힘든 독수리 한 마리가 머리위를 돌기 시작했다. 날개를 펴고 참으로 당당하고 멋있는 비행이었다.

촌부가 감문국에 조그만 관심이라도 가지고 백운산을 찾아준 것에 대한 반가움의 표시라 생각했다.

하산하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 손 모아 염원했다.

서기 231년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1789년 전 나약한 국력이지만 나라의 자존을 지키며 끝까지 저항하다 한꺼번에 몰살당해 하늘의 구름이 되어 지금도 편안히 쉬지 못한 수백의 원혼들이 이제는 긴 恨을 풀 수 있기를...

원하는 이들은 다시 金泉人으로 태어나 강한 김천을 만드는 인재가 되고, 좀 더 휴식이 필요한 이는 도솔천에 올라 평안하기를 기원했다.

阿彌陀佛께서 절절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었음이 틀림없다.

마음의 눈으로 나는 백성들의 영혼이 무리지어 손잡고 춤추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으니...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감문국의 금효왕은 밀려오는 사로국의 군사들을 보며 불면의 밤을 보내며 깊은 번민에 빠졌다.

이제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곧 감문이라는 나라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나라는 곧 망할테지만 순박한 백성들은 어이할꼬?”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장부인과 군사들은 항복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했다. 나라의 自存을 지키다 죽자는 것이다.

금효왕도 나라가 망하면 왕이 죽는 것은 당연한 것,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순박한 백성들의 희생은 어찌할지가 고민이었다.

감천 너머 사로국 수천의 군사들은 곧 강을 건널 태세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항복이냐? 아니면 끝까지 항전하다 죽을 것인가?

며칠을 뜬눈으로 지샌 금효왕은 신하들을 불러모았다.

수 백년을 이어온 나라가 없어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항복을 결정했으니 따라 달라고 설득했다.

장부인과 신하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했다.

다음날 사자를 보내 사로의 진영에 항복을 통보했다. 사로의 대장군 석우로는 감문의 수도인 개령으로 건너와 사로국에 무혈 입성해 나라를 접수했다.

금효왕과 신하들은 신라를 상국으로 모시고  신하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금효왕은 사로의 석우로 대장군에게 항복하는 대신 백성들의 평안을 약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석우로는 이를 받아 들였다.

감문국은 이제 나라에서 郡으로 강등되고 사로국의 영토로 편입됐다.

사로국이 감문국을 접수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석우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로의 군사들은 감문국의 백성들을 노비처럼 대하고 구박했다.

심지어 죄없이 목숨을 잃는 백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왕위에서 물러난 금효왕은 석우로에게 따졌다. “감문국의 백성들을 지켜주기로 한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는가?”

사로의 대장군 석우로는 웃으며 말했다.“ 패망한 나라의 백성이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그 정도는 있을 수 밖에 없는 일 아닌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였다.

금효왕은 탄식과 후회속에 병이 들어 얼마후에 죽었다.

장부인과 감문의 백성들은 금효왕의 시신을  궁궐에서 20리 떨어진 양지바른 산기슭에  장사지냈다.

장례가 끝나고 장부인과 신하들은 군사들과 사로(신라)에 항복을 거부한 백성들을 이끌고  속문산으로 들어가 끝까지 장렬히 싸우다 몰살당했다.

그 원혼이 구름으로 변해 산을 덮어 산의 이름이 속문산에서 백운산으로 바뀌었다.

그날 이후 백운산 꼭대기는 항상 구름에 덮여 있다.


글.사진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자문 >

문재원 (향토사학자,前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조상의 얼찾아(문재원)

금릉빗내농악 (민속원)

대구.경북 청동기시대 문화(삼한문화재연구원)

김천의 마을과 전설(김천문화원)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옛 상주를 담다(상주박물관)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감문국개령지(우준식)

경상북도 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

김천역사의 뿌리 감문국 등

#김천황악신문 #감문국#백운산 #속문산성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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