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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연당과 감문국 궁궐의 흔적을 찾아서...“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첫 번째 여행 ” [감문국 이야기 6]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1.05.0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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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문국 시대 조성된 궁궐의 연못으로 전해지는 동부연당(東部蓮堂)

“유산의 북쪽 동원 옆에 감문국시대의 궁궐터가 남아있다”(柳山北東院傍甘文國時宮闕遺基猶存)-『동국여지승람』,『교남지』(嶠南誌)

 “궁궐터는 개령면 동부동에 있는데 감문국시대의 궁궐터와 초석이 남아 있다”(“在開寧面東部洞甘文國時代宮闕基址礎石常存)-『조선환여승람』

“지금부터 約二千年前에 甘文國時節의 宮闕은 距今 一千七百三年前에 新羅國에 亡하였으나 오늘날까지 그 宮闕의 자최는 今日까지에 亘하여 礎石이 尙存하고 今人으로 하여곰 感古之懷를 자아내게 하는구나 卽 그 遺址는 只今 柳東山北東院傍이였고 蓮塘의 附近一帶이였으니 愁久한 歲月에 눈물의 자최가 癧癧하고나” -『감문국개령지』(甘文國開寧誌) -고적(古蹟) 궁궐유지(宮闕遺址)편

김천의 길가에 핀 아카시아 꽃

#동부연당 가는 길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찌른다. 이팝도 함께 피어 옛 감문국의 땅은  온통 흰 꽃세상이다.

코로나라는 역병이 세상을 흔들어도 여전히 꽃은 피고 여름을 재촉한다. 

감천을 가로질러 아포와 개령을 잇는 대동교/오른쪽에 유동산이 보인다.

김천에서 구미로 가는 국도의 중간쯤에서 대신으로 차를 몰아 대신역에서 좌회전 하면 아포와 개령을 연결하는 큰 다리가 나온다.

감문국은 甘川의 나라다. 즉 물의 나라다. 계절따라 변하는 감천의 물빛은 이제 푸르름과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다.봄이 깊어가니 곧 여름이 시작될 것이고 두어달 후면  감천의 물은 황톳빛으로 변할 것이다.

감천을 경계로 아포와 개령이 나뉘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 앞을 보면 감문국의 수도였던 개령면 동부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김천의 젖줄인 甘川의 봄
감천의 봄풍경

감천 건너 속문산과 호두산,개령향교가 보이고  오른쪽 바로 앞에 굼벵이를 닮은 작은 산 아래 푸른 잎새를 자랑하는 왕버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감문국 시대 조성되었다고 전해지는  궁궐연못인 동부연당(東部蓮堂)이다.

나라의 힘이 커지자 감문국은 관학산에 산성을 쌓아 적을 방비하고, 관학산과 유동산 사이 좋은 터에 궁궐을 지었다. 감천과 가까워 물의 수급이 원활한 곳에 궁의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어 연당(蓮堂)이라 불렀다.

2000년 전의 감문국 궁궐의 연못인 동부연당의 모습은 알 수 없다. 감문국이야기 나라 조성을 위해 발굴조사를 거쳐 정비된 현재의 동부연당에서 옛모습을 찾긴 힘들다.

너무나 깔끔하게 정비되어 인공미가 가득하다. 예전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거나 그냥 그대로 놔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져 든다

예전 연꽃과 풀이 무성한 동부연지를 걷노라면 연못의 정령들과 주변의 버들이 귓가에 감문국의 오랜 역사와 숨겨진 전설들을 속삭여 줄 것 같았는데 지금 그런 정취는 사라지고 없다.

정비공사 중인 동부연당의 모습 {2020)
동부연당의 현재모습(2021)

<동부연당의  어제와 오늘 >

# 동부연당 발굴

김천시는 감문국 이야기나라 조성사업을 위해 예정부지인 동부리 일대에 대해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했다 . 

 2017.5.31~2018.12.14까지 금효왕릉과 동부리 역사체험지구내의 전시관 사업부지,동부연당부지에 대해 시굴.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시관사업부지에서는 동서 방향의 석축열과 집석유구 등이 확인됐다. 북측에서 구상유구를 비롯한 생활유구와 남측에서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조성된 동,서 방향으로 연결된 길이 108m,폭 4.8m 1조2열의 석축유구가 확인됐다.

동부연당 발굴조사 사진

동부연당부지에서는 기와무지,석축열,집석등이 발견되었는데  상층에세서 고려시대,하층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기단건물지와 적심등이 확인됐다.

동부연당은 감문국이야기나라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새로이 정비되어 옛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김천과 개령을 연결하는 국도변에 김종직 부자가  심었다는 물버들이 동부연당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감천의 물이 동부연당과 연결되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선착장이 발견됨으로써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배들이 甘川으로 들어와 동부연당과 개령면 동부리에 드나들었음이 증명되었다. 신라시대에 배가 드나들었다면 당연히 감문국시대에도 배들이 왕래했음은 틀림없다.

김종직 부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동부연당의 왕버들

#왕버들의 전설

개령면 동부리 동부연당에서 지방도 59호선을 따라 서 있는 버드나무들은 1449년 7월 개령현감 김숙자가 아들 김종직과 함께 감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식재했다고 전한다

개령 면민들에게는 학창 시절 소풍과 야유회의 추억이 서린 향수어린 공간으로 사랑받아 온 곳이다. 1940년대 사진에는 긴 제방을 따라 수많은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동부리 마을 앞에 숲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970년대 김천에서 선산으로 연결되는 지방도 59호선이 새로 나면서 대부분 베어져 사라졌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인 80년도 초반에도 동부연당 앞 감천변에는 버드나무 숲이 울창해서 소풍을 가곤했다.

1757년(영조 33)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개령현 편에는, 남수(南藪)라고 하여 “관아 남쪽 2리에 있는데 현감 김숙자가 김종직(金宗直)과 함께 숲을 조성한 덕분으로 읍 터에 홍수 걱정을 덜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종직은 조선시대 초기 조의제문을 썼다가 부관참시를 당했다. 밀양 출신으로 1490년 벼슬을 사양한 후 김천의 경렴당으로 돌아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감문국 궁궐터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개령면 동부리와 양천리를 연결하는 역마고개

#감문국 궁궐의 흔적을 찾아서

감문국 궁궐터에 대해서는 개령면 동부리와 양천리를 연결하는 역마고개 근처라고 추정하기도 하고 지역향토사학계에서는 개령면 사무소 근처로 비정하기도 한다. 역마고개는 조선시대에는 역이 설치되어 있었고, 이 길을 따라 선산 무을을 거쳐 한양으로 선비들은 과거를 보러 다닌 길이기도 하다.

감문국 궁궐의 초석이 있었다는 역마고개의 민가
1960년대말까지 역마고개 민가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감문국 궁궐 초석

개령면 양천리와 동부리 경계에 있는 민가에 1960년대 말까지 감문국 궁궐의 주춧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서너 번을  찾아 갔지만 그 돌은 없었다. 마당에 궁궐이 초석이 있다고 전해지던 집주인도 처음듣는 말이라 했다.

그 옆집의 주인에게서 자기집에 있던 오래된 돌 몇 개를 막걸리를 사려고 싼 값에 팔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이 수확의 전부다.

낙파(洛波) 류후조(柳厚祚)의 무덤

동네 주민에게서 대단한 무덤이 있다는 안내를 받아 가보니 감문국의 무덤은 아니고 ,낙파(洛波) 류후조(柳厚祚)의 무덤이었다. 그는 고종때 좌의정을 지낸 낙동대감이라는 별호를 가진 인물이다. 

61세에 과거에 급제해 흥선대원군 석파(石破) 이하응에게 발탁되어 좌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다. 상주 출신인 그가 낙향하여 낙동강가에 살았다고 알고 있는데 그의 무덤이 개령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이명박 정부시절 대통령 비서실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류우익이 직계 후손이라 들은 기억이 있다.

낙파 류후조 대감이 고향 상주를 버리고 김천의 개령에 무덤을 쓴 것이 우연이 아님을 무덤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무릎을 쳤다. 카메라가 좋다면 풍광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텐데 아쉽다.

바로 앞에는 감문국이야기나라가 만들어지고 있는 감문국의 궁궐터요. 그 뒤에 감천이 흐르고 있다. 저 멀리는 금오산이 보이니 더 이상 明堂이 어디 있겠는가? 전형적인 背山臨水다.

청빈하게 살았다더니 무덤은 옹골차게 잡았다.

류휴조의 무덤이 자리한 곳은 원래 1610부터 1866년까지 개령향교가 있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대법관을 지낸 허진의 생가에 있는 소나무
기품있는 소나무는 허진과 감문국의 얘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1954년부터 1959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허진의 생가가 있다. 1790년 관학산 자락 약 5,950㎡의 대지에 자리 잡은 대저택으로 안채, 사랑채, 곳간, 행랑채, 문간채로 이루어진 ㅁ자형 가옥이다. 지금은 정원수 몇 그루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보기에 최소한 200~300살은 될 것 같다.  김천의 보호수로 지정해야 할 듯하다. 천연기념물인 증산면 사무소의 소나무보다 더 우람하다.

허진의 생가터에 있는 저택의 쌓여있는 부자재

일설에 의하면 저택의 주요 목재와 자재들은 모 재벌가로 다 실려나가고 남은 자재들이 한켠에 쌓여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 저택의 규모가 엄청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교한 무뉘의 돌이 아직도 가득하다. 많이 훔쳐갔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또 이웃에 자리한 우상학(禹象學)[1864~1942]의 대저택도 이제는 집터만 남아 있다.

개령의 관학산 아래가 명당터라 예전부터 대 부호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여전히 감문국의 주춧돌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 알리오? 길가에 보잘것 없이 나뒹구는 돌들이 궁궐에 쓰였던 돌의 흔적일지...

감문국의 땅에서 나온 못난 돌과 모래 한톨에는 모두 감문인의 숨결과 영혼이 스며있으니 궁궐의 주춧돌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라!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감문국의 마지막 왕 금효왕은 왕비이자 사랑하는 여인, 정치적 동지인 장부인과  연꽃이 가득한 이 연못을 즐겨 걸었다.여름이면  연못 주위에는 왕버들이 햇볕을 가리고 시원함을 더했다.  멀찍이 신하들을 물리고 둘은 달콤한 밀어(蜜語)를 속삭였다. 

연꽃은 봉우리를 터뜨리고 큰 연잎에는 청개구리들이 놀고 있었다. 평화로 가득한 세상의 싱그러움은 영원히 푸르게 이어질 듯 보였다.

금효왕과 장부인의 딸 창랑공주는 얼마 전 사로(신라)에서 온 훤칠한 귀족 총각인 아달과 이곳에서  몰래 만나곤 했다. 향기로운 연꽃도 고개를 떨굴만큼 아름다운 공주였다. 아달과 공주는 서로 사랑했지만 사로의 기운은 불길했다. 힘이 커져가는 사벌국과  남하하는 백제를 막기 위해선 감문국을 토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로국 내부에서 커져가고 있었다.

동부연당의 왕버들에 깃든 水神들, 즉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지상의 적합한 땅을 찾아 개령에 와 물의나라 감문국을 만든 물의 정령들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사로국 침략의 위험을 감지하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柱(창랑공주와 아달의 이름은 창작임)

P.S  오늘이 어버이날이다. 인간의 부모는 天地自然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원인 없이 생겨 난 것은 없다. 金泉人이 현재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조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천의 자연속에서 甘川의 물을 먹고 사는 우리들에게 육체적 DNA든 아니면 정신적인 교감이든 김천 최초의 국가이자 뿌리인 감문국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의 사슬에 매여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자문 >

문재원 (향토사학자,前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조상의 얼찾아(문재원)

금릉빗내농악 (민속원)

대구.경북 청동기시대 문화(삼한문화재연구원)

김천의 마을과 전설(김천문화원)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옛 상주를 담다(상주박물관)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감문국개령지(우준식)

경상북도 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

김천역사의 뿌리 감문국 등

 

#김천황악신문 #감문국#동부연당 #감문국 궁궐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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