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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할아버지와의 인연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7.07.27 17:47
  • 댓글 1

  

 

고물 오토바이, 붉은 목장갑, 옛날 세이코 시계 할아버지의 첫인상이었습니다.. 11월 늦가을에.. 할아버지 홀로.. 커피집을 방문해주셨습니다. 저희 가게 외관이 통유리인데 제가 일본어로 간판 없는 커피집이라고 마킹해놓아서.. 일본어를 할 줄 아시는 할아버지께서 신기해서 방문해주셨다네요.. 자리에 앉으시더니 "고이(커피 일본어 발음) 한잔 주게"..라고 주문하시더군요.. 커피 한잔하시며서.. 일본에서 겪었던 차별과 설움.. 그리고 누님의 원폭피해.. 6.25 참전 용사셨던 과거까지 얘기해주시더라고요. 한참 재미있게 듣는 중 시간이 30분쯤 지나자 자리를 일어나시더라고요. "다음에 또 보세"

하시며 만원을 주시길래 거스름돈 칠천 원(동네 어르신은 3000원)을 드렸더니 “나머지는 팁일세 팁” 하시는 거예요.. 아무리 거절해도 주시기에 외국 생활하셔서 팁 문화를 아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바로 이날이 할아버지와 저의 인연의 시작된 날인 것 같네요.

저희 동네가 주말이 되어야 여행객이나 식사하러 오시는 분이 많지,평일에는 아주 조용한 동네예요. 그래서 저 또한 혼자 가게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매일 가게 지나가시면서 제가 안되 보였는지 재차 방문하시더니 "코히 한잔 주게" 난 쪼금만 줘하시는 겁니다.

어제 받은 거스름돈도 있으니 오늘은 내가 커피 대접해드려야지 생각하고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 집에 가야겠네.” 하시고 나가시는데 이때다 싶어 계산 안 하셔도 된다니까 또 만원 주시고 나가시는 겁니다..(어라? 또?) 귀가 어두우셔서 내 목소리를 못 들으신 건가? 싶었습니다

세 번째 방문 날은 제가 돈 받기가 너무 죄송한 마음에 가게에 손님도 없겠다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배호, 이미자, 나훈아 노래를 빵빵하게 틀어드렸습니다...(할아버지께서 귀가 많이 안 좋으셔서.. 잘못 들으세요.)

다방은 배호랑 이미자, 나훈아는 안 틀어준다네요 .귀도 안 좋으셔서 다른 트로트도 안 들리시는데요.. 하지만 저희 집 스피커가 블루투스 되는 야마하 스피커라 배호, 이미자 나훈아 히트곡 전집 풀 음향으로 틀어드리니까 나지막이 따라 부르시며.. 처음으로 한 시간 정도 있다 가셨습니다.

저도 이번만큼은 커피 값을 한 것 같더라고요

그다음 날에도 그 다음다음날에도 가게에 방문해주시고 여전히 커피값 만원.. 거스름돈 노,

저도 보답해야 할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매일 식사하시는 우동집(시골 어르신들은 중국집을 우동집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음) 가서 할아버지 식비 제가 대신 결제하고 거스름돈도 모아서 장갑도 사드렸지만.. 결국은.. 다음날도 커피집 오시더니 “자네 내가 밥 잘 얻어먹었네” 하시며 또 제게 만원 주시는 겁니다.. 이쯤 되면.... 머릿속에 왜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어느 날은 시골에서 저에게 사과를 보내줘서 커피 값 만원 받자마자 고물 오토바이 짐칸에 사과 한 박스를 억지로 실어서.. 제가 등 떠밀어 할아버지 집에 보내고 했던 날도 있었네요.

그러던 중 할아버지가 “자네 나 한 번만 도와주게 내가 쌀농사를 지은 게 있는데 늙어서 힘이 없어서 정미소까지 자네 차로 실어줄 수 있겠나?” 하시는 겁니다..

와 너무 기뻤습니다.. 매일 도움만 받는데 내가 할아버지께 해드릴게 생기다니 가게고 뭐고 세시에 잠시 문 닫고 할아버지 집 처음 가서 쌀 싣고 정미소에 맡겨드렸습니다.. 이날은 정말 하루 종일 뿌듯하고 보람되더라고요.. 하지만 여기서 또.. 할아버지 가게 방문하시더니.. “자네 쌀은 있는가?” 하시더니.. 도정하신 쌀.. 10킬로를.. 제게 주시며.. “쌀 부족하면 말하게” 하시더라고요..

뻥진다는말이 이럴 때 쓰는 표현 맞죠?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던가? 저번 주 일주일 동안.. 저희 가게를 안 오시는 거예요.. 첨에 이틀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 했는데.. 삼일 지나니까 오만 걱정이 되더군요.. 또 가게 3시에 스톱 당장 할아버지 집에 달려갔습니다

제발 제발.. 아무 일 없길 빌고 또 빌며 도착했는데.... 할아버지 너무도 태연히.. 티브이 보시며 담배 한대 피우고 게시더라고요....

내심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밀려오니 다리가 후들후들하더라고요 ㅋㅋ

할아버지 왈.."자네 가게 춥네"..... 아시죠 저번 주 얼마나 추웠는지.. “제 커피집은 그늘에 있어서 더 춥습니다.”

결국 할아버지 집에서 땅콩 캐러멜 두 개 얻어먹고 왔더이다 ㅎㅎ

어느 날 가게 방문하셨는데.. 제가 바빠 보이니까.. 오후에 오겠네 하시며.. 커피도 안 드시고 만원 주시는 거어요..(한두 번이 아님)..

그리고 세시쯤에 다시 오셔서 "코히 한잔 주게 쪼금만" 하시더니.. 또 만원 주시는 거예요.... 이쯤 되면.. 사람 된 도리로 죽어도 돈 못 받겠어서

"할아버지 아까 낮에 주셨는데 또 주시면 제가 이 돈 못 받아요.. 제가 죄짓는 거 같아서 못 받겠어요.. 차라리 내일 주세요ㅠㅠ" 간곡히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이

.

.

.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뭘 허허".... 자네 돈 주러 왔네

...

..

여러분..이라면 이 돈 안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가슴에서 맴돕니다.. 이 말이...

.

.

가슴이 먹먹해져서.. 도저히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날 이후로 양심도 없다고 저를 손가락질하셔도.. 이 돈..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오토바이 타고 가락국수 집 가셨다가 저희 집에서 트로트 듣고 코히 한잔, 얘기 잠시 나누다가 가시는 게.. 노년의 낙인 할아버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할아버지는

그동안 지켜만 보시는 게 아니라

사실은 지켜주시고 계셨던 거 아닐까요?

 

그저.. 얘기 상대가 되어준.. 손자뻘의 저를요...

 

.. 여러분 가끔 제 커피집에서 이미자, 배호, 나훈아 트로트가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나온다면 그건 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를 위한 작은 배려라고 생각하세요.

 

 -글쓴이  이름없는 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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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담 2017-07-29 00:32:11

    할아버지는
    간판없는커피집이 안식처이자 사랑인거죠
    돈으로환산할수없는..
    참아름다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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