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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영남선비, 성산이씨 정언공파 낙동문중(洛東門中)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7.09.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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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택용/한주이진상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조선시대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사헌부(司憲府)는 종2품, 사간원(司諫院)은 정3품 관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간(臺諫)이라고 불린 두 기관의 위세는 1품 다섯 명이 포진한 의정부(議政府)에 뒤지지 않았다. 백관(百官)에 대한 탄핵권과 수사권이 있는 사법기관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의 공통 특징은 가난이었다.

연려실기술 관직전고는 사헌부에 대해 ‘심히 맑아서 물력(物力)이 없다.’ 고 했고, 사간원은 ‘제일 청한(淸寒)하다.’ 고 적었다. 사간원표피(司諫院豹皮)라는 것이 있었다. 표피 한 장을 여러 아문(衙門)에 돌려가면서 뀌어주어서 사간원의 운영자금으로 썼기 때문에 나온 말로서 그만큼 청렴했다는 뜻이다.

경상도 성주목(星州牧)을 본관으로 하는 이씨 중에 성산이씨(星山李氏)가 있다. 시조 이능일(李能一)은 고려개국공신으로 신라말엽 성산(星山, 성주군)일대를 통치해온 호족이었다. 그는 12년 동안 왕건(王建)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수훈을 세웠다. 그의 원래의 이름은 능(能) 또는 능필(能弼)이었는데 고려 태조가 삼국통일에 크게 기여했다는 뜻으로 통일을 상징하는 일(一)자를 내려 능일로 부르게 했다고 한다.

고려건국 후 태조 왕건의 딸인 정순궁주와 결혼해 부마(駙馬)가 되고 벼슬은 사공(司空, 정1품)에 이르고 성산백(星山伯)에 봉해 지자 후손들이 성산을 본관으로 한 문중이다. 그 문중에는 정언공파(正言公派)가 있으며, 소문중(小門中)인 낙동문중(洛東門中)이 있다. 조선 전기 성 · 중종조에 부자분(父子分)이 대사간과 대사헌을 역임했다. 김종직(金宗直)선생의 문인 이세인(李世仁, 1452∼1516)은 대사간, 아들 이항(李沆, 1474∼1533)은 대사헌을 대간 중에도 수장(首長)을 역임했으니 가문의 영광이다.

김천시 감문면 봉남리[鳳南里의 황새골<大鳥洞>,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서 태어나서 양분(兩分)은 사마시에 입격 후 문과급제를 하고,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아들은 경상도관찰사로 방백(方伯)도 역임한 걸출한 관료였으며 부자분의 묘소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있다. 조선시대는 대간은 피혐(避嫌)과 상피(相避)를 엄격하게 적용했다. 본인에게 털끝만한 하자라도 있을 경우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피혐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선생은 ‘대간을 논하다.’ 에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직과 녹봉을 사양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지만, 대간만은 한번 사단이 일어나면 죽기를 무릅쓰고 물러난다.” 라고 말했다. 상피는 유관 부서에 친족이 근무할 수 없게 한 것을 말한다.

1479년(성종 10) 대사헌 어세겸(魚世謙)은 동생 어세공(魚世恭)이 병조판서가 되자 ‘사헌부는 병조의 분경(奔競)을 살피고 정사의 잘못을 탄핵해야 한다.’ 면서 스스로 면직을 요청했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국가 중대사에 대해 합동상소로 정국을 주도하는 것으로 협조했다. 하지만 두 기관은 또 치열하게 서로를 견제했다. 두 기관이 결탁할 경우 홍문관이 즉각 개입했기에 결탁할 수도 없었다.

대사간은 간쟁 · 논박을 맡았던 사간원의 으뜸벼슬이며, 대사헌은 시정에 대한 탄핵, 백관에 대한 규찰, 풍속을 바로잡는 사헌부의 장(長)으로, 그 밑에 있는 집의 1명, 장령 · 지평 각 2명, 감찰 24명의 관원을 감독하고 통솔하였다. 필자는 그의 후손이기에 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속칭 문중의 자랑으로 삼정승 배출문중, 양관대제학 배출문중, 서원에 배향된 선조가 있는 문중, 징사를 배출한 문중, 삼대대제학을 역임한 문중 등으로 자기문중을 자랑하고 있으나 필자는 대사간 · 대사헌 즉 대간의 수장을 역임한 우리문중을 더 자랑하고 싶다.

공직생활 36년, 정년퇴직하고 영남학파와 성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재직 중에도 선조의 청렴정신을 거울삼아 열심히 일했고 보람되게 근무했다. 퇴직 후에는 신목민심서(新牧民心書) 라는 책도 출간했다. 청렴을 목표로 저술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의 목민심서를 현 세태와 비교하여 글을 쓴 것들이다.

필자는 문중을 자랑하며 또 훌륭한 선조(先祖)를 둔 것을 보람으로 알고, 요즈음 한주이진상선생기념사업회(寒洲李震相先生記念事業會)에서 이사로 일하고 있다.

 

#만농이택용#김천황악신문#한주이진상선생기념사업회#성산이씨정언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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