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스토리교육원 배기성 역사전문강사

1월 31일 가야금의 명인이자, 우리 국악계의 전설이셨던 황병기 선생님이 작고하셨다. ‘국악은 모두 조선시대 옛 곡을 연주한다’ 는 고정관념에 젖어있던 우리 대중들에게, ‘국악 작곡’이라는 새로운 장르와 인식을 깊이 심어주신 분이 82세를 일기로 이 추운 겨울에 돌아가셨다니 애잔한 마음이 앞선다. 과거 고인의 연주회에 참석해서 그 연주곡들을 집중하며 들었던 것이 벌써 13여 년 전 일이라니,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감성적인 충동을 제대로 느껴본 지가 참으로 오래되었구나! 싶어서 음원사이트에 있는 고인의 『비단길(The Silk Road)』를 계속 틀어놓고 감상할 뿐이다. 아무리 음향재생기술이 발달한다 해도 어찌 고인의 살아생전 그 음률에 비하겠는가! 그의 가야금 소리(솔직히 가얏고 소리라고 적고 싶다.)의 달려감과 멈춤 그리고 흔들림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자유로운 창작세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런 작곡을 해내기 위해서는 외로움이란 필수적인가. 인간의 위대한 예술은 예로부터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즐거움”의 바탕위에서보다, “외로움”과 “괴로움”의 바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외국음악에 비해 너무도 열악한 국악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 역사강사의 말이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고인과 같은 위대한 작곡가는 가야금이라는 우리 민족 최고의 악기로, 『비단길』의 감동적인 선율과 『침향무』의 현대적인 선율까지 미학적으로 담아내는 경지에 이른다. 그의 국악공연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이 모이진 않았다. 아무리 작곡가가 유명해도, 국악이라는 장르의 한계점이 있으므로,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는 ‘느림’의 세계이리라. 그러나 적어도 그의 가야금 선율은 이 배기성 역사강사에게는 항상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강연전체의 흐름이나, 특히 강연 중의 신바람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처럼 예술은 단순히 작품 몇 개로 끝나지 않는다. 음악 하나, 미술 하나, 문학 하나, 연극 하나가 따지고 보면 각각의 종합예술로 존재하기에 우리가 걸작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그 예술인에게 존경을 바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 문화예술창작분야에서 소위 블랙리스트라는 참 거론하기도 부끄러운 짓을 정부차원에서 주도해 저질러 왔음도 사실이다. 소위 정권에 비판적인 특정예술인들을 청와대 비서실과 문체부가 주도적으로 선정해서, 금전적인 지원이나, 공연장 대관, 출판허가, 상표등록 등을 배제시키고 혹은 홀대해온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명명백백해진 것이다. 비록 고 황병기 선생도 그 리스트에 포함되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러한 행정조치 자체가 얼마나 자유로운 창작혼을 말살시키고, 우리 민족의 ‘신바람’을 꺼트렸는지에 관해 깨어있는 시민들이 나서서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할 때이다.

얼마 전 ‘발해’와 ‘대조영’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 강의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230년을 지속한 발해에서 어떤 음악, 어떤 춤, 어떤 종교의식, 어떤 미술이 행해졌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채로, 정치적 군사적 요소에만 치중해 강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애석했다. 우리는 지금 팝 아이돌 그룹의 한류에 열광한다. 그들의 음악, 그들의 댄스, 그들의 외모, 그들의 패션, 그 음악 가사의 시대적상징성에 호응하는 것이다.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은 이러한 팝아이돌음악의 범람속에서도 국악으로써는 드물게 대중적 인기와 미학적 예술성을 함께 담보해온 자유로운 창작예술혼의 표상이다. 발해의 예술을 지금 우리가 모른다는 것은 발해인들과 온전히 교감할 수 없다는 뜻이기에 안타깝다. 마찬가지로 우리시대에 팝아이돌의 음악도 있지만, 황병기 선생의 음악도 교감의 키워드라고 보면 된다. 그런 예술의 사회적 교감기능적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정권이 시민예술의 자율성을 탄압한 블랙리스트 사건은 용서할 수 없는 민의에 대한 반역이다. 이것이 고 황병기 선생의 풍성하고 애잔한 가야금 소리를 감상(感想)하며, 블랙리스트 사건을 단상(斷想)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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