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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앞 바람이 머무는 언덕에 나무가 있었네”....월명리 470살 느티나무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3.11.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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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리 470살 느티나무

묵밥과 두부로 유명한 김천시 남면 부상리에서 우측으로 길을 잡아 산길을 따라 15분 정도 가면 남면과 성주 소성리의 경계지점인 월명리가 나온다.

월명리는 조선말까지 개령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섶밭·운봉(雲峰)·동릉(東陵)이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월명동이 되고, 1949년 금릉군 남면 월명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월명리가 되고 1995년 김천시 남면 월명리가 되었다.

월명리에는 고려 초기 만든 미륵암 석조미륵불입상이 있다. 1999년 미륵암에서 나당연합군으로 백제 정벌에 참여했던 당나라 시(柴) 장군의 비가 출토되어 미륵암의 창건연대가 확실해 밝혀졌다,

월명리 470살 느티나무

미륵암은 한칸의 작은 암자로 석불의 아랫부분이 묻힌채 불전내에 있었는데, 하반부를 노출시키기 위해 불전을 철거하고 주변을 발굴하던 중 시장군 비편 세 개를 수습했다.

시장군(柴將軍)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나오는 당나라 장군 시철위(柴哲威)로 추정된다. 당 태종의 외척인 시소(柴紹)의 아들이다.

백제를 멸망시키고 가림도행군총관(加林道行軍摠管)으로 김천에 주둔하고 있을 때 고구려 정벌 명령을 받고 함자도행군총관(含資道行軍摠管)에 임명됐다.

월명리 470살 느티나무

시장군 비는 그가 함자도행군총관에 제수되자 정사초당(精舍草堂)을 짓고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것인데 그 정사초당이 현재의 미륵암으로 추정된다.

전설에는 옛날 한 도둑이 김천에서 소를 훔쳐 고개를 넘어가는데 밤새도록 걸어도 미륵불 주위만 맴돌았다. 화가 난 도둑이 도끼로 미륵불을 내리쳐 왼팔이 떨어지고 도둑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 도둑을 묻은 도둑묘가 최근까지 있었다고 한다.

월명리 470살 느티나무

월명리는 섶밭·운봉·상릉·하릉이라는 자연부락이 있다. 섶밭은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드는 밭이 있어 숯밭으로 부르던 것이 변했다. 임진왜란 당시 칠곡군에서 이주해 온 김홍일(金洪一)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운봉은 지대가 높아 항상 산에 구름이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영조 때 어모면 남산리 상남에서 이주한 영월 엄씨 집성촌이다.

운봉을 지나 서낭대이를 넘어서면 상릉과 하릉이 있다. 상릉·하릉은 통칭하여 동릉이라고 한다. 마을 동쪽에 큰 무덤이 있어 동릉이라 하고 무덤 위쪽 마을을 상릉, 아래쪽 마을을 하릉이라 했다.

의령 여씨 여종록(余宗綠)이 영조 때 선산에서 상릉으로 이거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풍수상 상릉·하릉이 떠나는 배의 형국이라 도사가 마을의 상중하에 돛대를 상징하는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라고 했다.

그 세 나무 가운데 최근 두 그루가 잘리고 하릉의 나무가 2002년 태풍으로 가지가 부러지자 마을 주민들이 부러진 나뭇가지로 장승을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웠다.

월명리 470살 느티나무

하릉의 느티나무는 약간 높은 언덕에 서 있다. 나이는 470살이 넘었다. 둘레가 6.2미터에 달한다.

거대한 몸통은 썩어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당분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나이를 증명하는 옹이는 마치 거북이 머리를 닮았다. 살아서 곧 나무에서 걸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무가 기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튼튼한 쇠기둥 두 개가 몸통을 받치고 있다.

위에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서 균형이 다소 아쉽다.

하나의 줄기지만 멀리서 보면 매우 아름답다. 한 줄기에서 뻗어나온 가지들이 수형을 만들어서 굽은 몸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월명리 470살 느티나무

월명리 느티나무는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냈으나 1970년대 말부터 없어졌다.

이 마을은 성주가 지척이다. 마을 사람들이 나물을 캐며 집처럼 드나들던 달마산에 싸드가 배치됐다

지금은 전자파의 불안감에서 벗어났지만 마을 사람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수시로 뜨는 헬기의 소음과 전쟁의 공포가 한동안 마을을 뒤덮었다.

귀농해서 소를 키우던 주민들도 싸드 반대 데모에 참석하느라 지친 일상을 보냈었다.

500살 느티나무는 오랫동안 살아 후손들에게 이 시대에 겪은 주민들의 고통과 분단의 역사를 들려줄 것이다.

월명리 470살 느티나무

부디 한반도가 다시는 참화에 휩싸이지 않고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大同의 시대가 열릴 수 있기를 나무이자 神인 느티나무님께 빌었다.

#황악신문 #월명리 느티나무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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