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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 대휴사 목조보살좌상...“복장(腹藏)에 보물 가득 품고 300년을 지켜온 미륵불”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 14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3.09.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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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면 대휴사

김천시 지례면은 동쪽으로 조마면.성주군 금수면, 서쪽으로 부항면.대덕면,남쪽으로 증산면,북쪽으로 구성면과 이웃하고 있다.

충북 영동군, 경북 상주, 전남 무주로 통하는 교통 요충지로 흑돼지가 유명하다.

문화 유적으로 지례향교 대성전, 상부리 구산 봉수 터가 있고,임진왜란 때 고바야가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왜군 제6진 1만 5000명을 데리고 퇴각하다 지례향교에서 1500여 명의 병사를 잃은 곳이다.

지례 공단 좁은 길을 따라 산 속 규석 광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가파른 길가에 아담한 절집이 있는데 이름은 대휴사다.

대휴사의 원래 이름은 은적암(隱寂菴)이다. 신라 헌강왕(憲康王)때 도선국사가 비보풍수(祕報風水)에 의거해 봉곡사에 세운 네 개의 암자 가운데 하나다.

암자 동북으로 김천,남으로 거창,서쪽에 무주구천동이 있는 심산유곡이다.

은적암에 대한 기록은 1834년 문필석이 쓴 『지례현읍지』 ,1871년과 1895년에 간행된 『영남현읍지』,1937년 정원호가 저술한 『영남지』에 언급되어 있다.

1942년경 은적암 자리에 규석광산이 개발되고 1945년에 상봉스님이 부임해 암자명을 대휴사(大休寺)로 개명했다.1955년경 지례규석광업소가 개광하고 활성화되면서 잦은 발파로 집과 불상이 흔들려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1956년경 지례초등학교에 있는 지례현청 객사 건물을 뜯어 보광전을 지었다. 1959년 9월 태풍 사라호때 산사태로 보광전이 유실되고 요사채만 남았다. 

1963년 신중달거사가 8평의 시멘트 기와를 얹은 목조 보광전을 지었고,1990년 30평 목조 토기와 대웅전을 신축해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을 조성해 모셨다.

대휴사 맑은 물

절집 계단을 올라서면 우측에 맑은 물과 정면 탑 위로 맑은 가을 하늘이 반긴다.

대웅전 앞으로 멀리 부항댐이 보인다.  수정 스님은 풍수가들이 최고의 명당이라 찾아온다며 뒷산에 있는 거북 바위를 가리켰다.

대휴사의 가장 큰 보물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92호인 목조보살 좌상 및 복장유물이다.

사찰 중심 전각인 대웅전에는 목조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본존불과 지장보살좌상은 최근에 제작되었고 우측 목조보살좌상은 조선후기 전형적인 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은 원래 김천 봉곡사 영산전에 봉안되었던 삼세불(제화갈라,석가,미륵)의 한 존상으로 추정된다.

보관(寶冠)을 새로 조성된 것 외에는 양호한 상태다.

대휴사 목조보살좌상 복장유물

지난 2013년11월과 12월 2차에 걸쳐 복장물 유물조사가 있었다. 부처님의 배안에서 유물이 쏟아졌다. 주요 유물로는 육조대사법보단경,묘법연화경,예념미타도량참법,염불작법 등이다.

복장물에서 조성발원문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후령통과 경전에 적힌 묵서를 통해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게 됐다.

불상양식과 단확기, 후령통 등 관계기록을 통해 볼 때 조각승 색난의 제자인 하천에 의해 1730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목조보살좌상은 원래 1730년 음력 4월 김천 봉곡사 영산전에 봉안된 석가삼존불좌상 가운데 1구로 하천,석준,성찬,종혜 네 명의 조각승이 제작했다.

당시 영안전에 봉안한 불상의 주불은 석가모니불이고 ,협시보살은 제화갈라 보살과 미륵보살이다.

대휴사 목조보살상은 양손의 위치로 보아 석가모니불의 좌협시보살인 미륵보살로 조성된 것이다.

조각승 및 제작연대를 알 수 있어 복장유물(전적 28책, 고문서 4매, 유물 1점)과 함께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2016년 4월 28일 경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92호로 지정되었다.

대휴사 삼존불/가장 우측이 목조보살좌상(미륵불)이다.

목조보살좌상은 높이가 76㎝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접목식 중형보살상이다. 상반신을 앞으로 조금 내밀어 보기에 약간 구부정하다. 타원형 얼굴에 살짝 뜬 눈은 일자형으로 눈꼬리가 위로 약간 올라갔다. 삼각형의 코는 콧등이 평평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

하반신에 걸친 대의 처리는 17세기 후반에 호남에서 활동한 조각승 색난이 제작한 목조보살좌상에서 볼 수 있는 특색으로 조각승 하천은 색난(色難), 일기(一機)⇒하천(夏天), 필영(弼英), 석준(碩俊)⇒성찬(成澯), 종혜(宗慧), 굉척(宏陟) 등으로 이어지는 18세기 대표적인 조각승 계보에 속하는 스님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대휴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 중 입구에서 우측에 보관(寶冠)을 쓰고 나뭇가지를 든 보살이 오늘의 주인공인 미륵보살이다. 자칫하면 중앙의 석가모니불이 문화재로 가장 중요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

옛 은적암 시절인 1929년 11월29일에는 청동불상이 도난당했다. 당시 매일신보에 범인 체포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불상은 아직도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절에서는 30여명의 가정이 어려운 아이들과 고아들을 길러서 공부시키고 유학까지 보냈는데 그 중 한 스님은 유명한 사찰 음식 전도사가 되었다. 주지 제철스님의 장학사업으로 박사2명과 석사 4명이 배출됐다.

절집에 얽힌 얘기들도 전해온다. 지례주민 박광연씨는 자신의 어머니가 은적암 칠성각을 짓고 10컬레의 버선코가 닳도록 불공을 들여 자신을 낳았다고 한다.

작고한 문현곤씨는 은적암 금당 철불이 나라에 큰 재난과 경사가 있을 때 신비한 소리를 냈다고 생전에 구술했다.

절집 옆으로는 감천이 흐르고, 탁 트인 시야와 맑은 공기는 세속의 번뇌를 씻기에 좋다.

지례 주민 문홍연씨에 의하면 근대 한국불교의 비구니 3대 강백인 혜옥 스님이 주석했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1969년 5월26일 열반한 기록이 있다.

사찰 뒤 규석광산의 돌은 질이 좋아 일본으로 전량 수출했는데 지금은 도리어 역수입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조성된 석조 산신

절집에는 새로 조성된 석조 산신이 볼만하다. 지례출신 독지가의 후원으로 수억원을 들여 지은 설법당은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의민정(義玟亭)이라 이름 했는데  수정 스님이 화엄경을 강설(講說)하고 있다.

평생의 공부로 ‘경전중의 꽃’이라 불리는 화엄경을 꼽고 있었는데, 수정 스님이  직접 번역해 출간한 화엄경 37권과 관련 책을 주어서 받아 왔다.

지례 독지가의 후원으로 지어진 강설당인 義玟亭

因緣의 법은 妙하고 불보살의 깊은 뜻을 인간은 알기 어렵다.

귀한 책을 받고 그냥 오기가 미안해 취업 면접을 보고 있는 딸의 합격을 기원하는 燈하나 달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작은 정성을 보시했다.

다행히 1차 면접은 통과하고 2차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자식앞에는 어쩔 수 없는 부모인지라 부처의 가피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가을 단풍이 들면 다시 오리라 되뇌며 절집과 작별했다.

#지례 대휴사 목조보살좌상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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