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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의 은거지, 부항면 달이실(월곡리) 마을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 [8]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3.07.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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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과 아름드리 숲엔 백범의 향기 스며 있어"

부항 달이실 마을 김구선생 은거지 터/황악신문

김천에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흥미로운 인물이 머문 곳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선생이 머물며 경전을 집필했던 구성면 용호리이고, 다른 곳은 1896년 황해도 안악군 치하도에서 일본군을 척살하고 삼남을 숨어 다니던 백범 김구선생이 한 달간 은거하던 달이실 마을이다.

지례에서 부항으로 꺽어 들어 부항댐의 경치를 만끽하고 한참을 직진하면 월곡리(달이실)가 나온다.

맑은 냇물은 싱그러움을 더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 가슴이 확 트인다.

달이실 600살 수풍정 느티나무/황악신문

김구는 1895년 동학농민전쟁에 패한 후 황해도 청계동의 안중근 집과 1898년 인천감옥 탈옥 후 충청도 공주 마곡사에서 원종이란 이름의 스님으로 생활했는가 하면, 평양 영천암에서의 승려생활, 그 이후 환속 해 1900년대 무주와 김천에서 숨어 다닌다.

1898년 음력 5월 전남 보성 득량면 쇠실마을에 숨기도 했다. 김구선생이 머물던 곳에는 기념비와 기념관이 설립되어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

달이실 마을은 한자로 월곡이라 하는데 마을을 관통하는 하천변에 달을 쳐다보는 두꺼비 형상의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달이실 두꺼비상/황악신문

두꺼비상 아래 안내문에는 ‘두꺼비’라 부르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거북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은 새 도로를 만들면서 머리의 일부분만 남고 묻혀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김구는 동학농민 전쟁이후 무주 무풍면 지동에 내려와 있던 독립운동가 유완무(본명 유인무)를 만나 충청도 연산에 사는 이천경에게 보내지고,다시 이천경의 소개로 김천 달이실의 성태영에게로 보내진다.

성태영은 자는 능하고, 호는 일주다. 조부는 원주 목사를 지냈다. 백범일지에 의하면 성태영의 집에서 한 달간 생활하던 어느 날 유완무가 성태영의 집을 찾아와 3자가 만나게 된다.

이때 김창수란 이름을 김구(金龜)로 바꾸로 호를 연하(蓮下)로 지어준다. 김구는 상민 출신으로 호가 없었다. 김구의 이름은 1914년 서대문 감옥에서 다시 김구(金九),호는 백범 (白凡)으로 개명한다.

이후 유완무는 무장투쟁을 위한 전국적 비밀결사를 만드는데 주력한다.

달이실 거북바위,도로공사로 머리만 남아있다/황악신문

탈옥한 김창수를 찾아 훈련시키는 작업을 한 이가 무주의 유완무다. 김구와 유완무는 1903-1904년 사이 김구 부친 탈상 이후 다시 만난다. 유완무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아들과 부인을 데리고 북간도로 망명한다.

1906년 경성에서 이회영,이상설,이동녕 등과 모여 간도에서의 독립운동을 논의했고, 1906년 간동 용정천에 서전서숙을 설립하는데 참여했다. 이후 1909년 2월 24일 암살되었다. 배후는 북간도 관리사인 이범윤으로 알려졌다.

김구를 숨겨준 성태영은 족보에 의하면 자는 순칠(順七)이고 호는 능하다. 그는 성주군 대가면에서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한 심산 김창숙과도 교류했는데 경성의 3.1운동 과정을 편지로 전하기도 했다.

심산 김창숙은 성태영을 벽서장이라고 불렀는데 벽서(碧棲)는 푸르른 산에 산다는 의미요 장(丈은) 12살 연상이라 붙인 것이다.

성태영은 파리장서운동의 처음주터 관여하며 중추적 역할을 했다.

김구선생이 한 달간 은거했던 달이실 성태영의 집터/황악신문

김구와 성태영은 1900년대 말부터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1949년 6월26일 김구가 74세로 암살되고, 두 달이 되지 않은 8월20일 성태영도 사망했다.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성태영의 집은 헐리고 지금은 양옥집이 들어서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흐르는 내의 시원한 물소리가 일품이다. 이곳에 있는 거북바위가 龜라는 이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월곡숲 나무/황악신문

김구선생 은거 기념비가 서 있는 월곡숲은 아름드리 고목들로 가득하다. 공원 앞에서 월곡리와 무풍으로 길이 갈린다. 김구선생도 무주에서 이 길을 따라 달이실로 숨어 들어왔을 것이다.

달이실에는 김구와 관련된 세 개의 비석이 있는데 마을회관 앞 두꺼비상 아래 안내문과,월곡숲 ‘백범김구선생은거 기념비’ 성태영의 집터 앞‘백범 김구선생 은거지’다.

두 비석의 안내문에 나오는 김구가 22세 되던 1896년은 잘못된 기록으로 25세 되던 1900년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김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적한다.

독립운동사에 다른 이와 비교불가인 김구 선생이 김천에 와서 한 달간 머물며, 독립운동과들과 우정을 나누고 미래를 꿈꾸며 이름까지 바꾸었던 역사의 현장이 우리가 살고 있는 김천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긍지를 가질 만하다.

월곡숲/황악신문

아름드리 나무들과 맑은 내가 흐르는 월곡숲, 600살을 자랑하는 수풍정 느티나무와 함께 김구의 유적과 발자취를  잘 간직하고 가꾸어 그 정신을 기리고 문화관광 유산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황악신문 #달이실 마을 #백범 김구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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