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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면, 삼선생유허비...삼강행실도에 기록된 장반곡(張盤谷) 윤절효(尹節孝) 서남계(徐南溪)의 효행(5)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3.04.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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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면 삼선생유허비

#지례면의 역사를 찾기 위한 노력

지례면의 역사를 찾기 위한 노력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모금하고 김천시의 지원 등을 합쳐 1억6천만을 마련해 향토사학자 문재원 선생이 주축이 되어 집필한 지례면지가 5월에 출간된다.

200년 전 홍수로 큰 수해를 당해 교리 상부 제방이 무너졌는데 당시 지례현감 이채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제방을 새로 쌓았다. 주민들은 이 제방을 이공제(李公堤)라 부르고 공덕비를 세웠다. 세월이 흘러 다시 큰 수해로 소실된 비석을 최근 복원했다.

또 지역출신인 이명기 김천시의장의 많은 관심에 힘입어 곧 시비 2억5천만원을 들여 지례 입구에 있는 장반곡,윤절효,서남계 세 선생 유허비 주변도 정비한다.

지례면은 김천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향이다. 지례면은 신라 시대 지품천현(知品川縣) 지역으로, ‘지품(知品)’은 ‘깊다·짚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골짜기와 물이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한 시대 변한에 속했고, 신라 진흥왕 때는 사벌주 지품천현이었다. 757년(경덕왕 16) 개령군 지례현이 되었고, 고려 시대 1018년(현종 9) 경산부(星州)에 속했다.1896년(고종 33) 지례군으로 개칭되었고, 1906년(고종 43) 성주군 내증산면이 지례군에 편입됐다.

지례면 교리 삼효정려각

# 삼선생 유허비

지례면 교리 마을 입구에는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정려각이 있다. 김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정려각으로 조선초 낙향해 후학을 양성한 장지도와 제자인 윤은보, 서즐 세 사람의 효행을 기려 세종때인 1432년 정려각이 하사됐고, 절효지문이 걸려 있다.

정려각 옆에는 張盤谷尹節孝徐南溪三先生遺墟碑(장반곡윤절효서남계삼선생유허비)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명나라 태종이 하사한 시 (明太宗所賜孝順事實詩)가 새겨져 있고, 비석의 좌면과 후면에는 장지도와 윤은보 서즐에 대한 이야기와 비석을 세운 이유,비석을 세우는데 공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내용에 따르면 지례현은 주악산 (主嶽山) 아래에 있는데 그 관사(館舍) 곁에 예부터 삼현이 사셨다는 말이 전한다. 현(縣)의 동쪽 가장자리에 반곡(盤谷)이 있고, 아울러 바위와 폭포의 경치 좋은 곳이 있는데 장지도가 그곳에서 노닐면서 반곡이라는 이름을 따와 자신의 호로 삼았다. 그가 죽고 난 뒤 고을 뒤쪽 정성고개[精誠峴]에 그의 묘를 썼다. 현(縣)으로부터 남쪽으로 수 십리 되는 감호(鑑湖) 가의 섬계서원(剡溪書院)에는 백촌(白村) 김공(金公)의 편액을 건 곳인데, 이곳에 삼현(三賢)을 배향하고 있다.

장지도(張志道)는 본관이 옥산(玉山)으로 그의 아버지는 윤원(允元)이며, 할아버지는 을포(乙浦)인데 수원부원군(水原府院君)에 봉하여 졌다. 공은 홍무(洪武: 명 태조) 신해년(1371)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기거주 지의주사(起居注知宜州事)를 지냈다. 형제의 난이 일어났을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날마다 학생들에 나아가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곧은 지조(志操)와 향기로운 자취는 게으른 사람을 일깨우고 욕심 많은 사람을 규율하였다. 다시는 본조(조선)에 들어 벼슬살이한 자취가 없으니, 생각하건대 망한 나라의 신하된 의리를 위해서인가? 라고 적혀 있다.

지례면 삼선생유허비와 정려각

# 반곡(盤谷 장지도 

장지도는 옥산 장씨로 수원부원군 장을포(張乙浦)의 손자로 1371년(고려 공민왕 20년) 지례 거물리에서 태어났다. 문과에 급제한 후 고려조정에서 기거주지의주사(起居注知宜州事), 조선 건국 초에 종4품의 소감(少監)직에 올랐으나 태종조에 이르러 골육상잔의 참극을 목격한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낙향 후 자신의 심경을 노래했다는 시가 전한다.

“천년 반곡은 평평한 방안 같고 깎아지른 앞산은 석성을 이루었네.

예부터 몇 집이나 대를 이어 살아 왔던가? 오늘에 이르러 열 집이나 관직을 얻었네.

처마 밑 드리운 감과 밤은 산중의 진미요, 문에 걸린 구름은 세상의 인정을 잊게 하네.

출세하다 버림받음을 원망하지 마라.

편안하고 한가한 손님이 자연과 친구가 되었지 않은가.”

장지도는 거물리 반곡(바람실)에 서당을 열고 제자들을 기르며 지례현의 문풍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례면 주민들이 최근 복원한 李公堤 비석

#윤은보와 서즐

세 사람의 효행을 실은 삼강행실도에 따르면 윤은보의 호는 절효(節孝)이고,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고려 때 파평부원군(坡平府院君)에 봉해진 윤호(尹虎)의 현손(玄孫)이다.

서즐은 호가 남계(南溪)이고 본관이 이천(利川)이다. 그의 아버지는 휘(諱)가 강(强)이며 목사(牧使)를 지냈고, 할아버지는 휘가 윤(玧)인데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그의 묘가 현(縣)의 북쪽. 문당(文堂)에 있다.

장지도가 지례 거물리로 낙향해 문풍을 진작할 때 윤은보(尹殷保)·서즐(徐騭)이 함께 문하에 들어 배우기를 청했다. 두 사람은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선생에게 올리고 달 밝은 밤이면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대접하기도 했다.

장지도가 죽자 두 사람이 시묘살이 하면서 밥과 술을 올렸다. 윤은보가 이상한 꿈을 꾸어 집으로 돌아가니 그의 아버지가 앓고 계셨는데, 마침내 까마귀가 향합(香盒)을 물고 오고, 눈 속에 대나무 순이 올라오는 일이 있었다.

서즐이 홀로 묘를 지키며 시묘살이를 마치니 또한 맹수(猛獸)가 돌봐 주었다.

세사람의 효행이 기록된 삼강행실도

#삼강행실도의 기록

‘삼강행실도’는 1428년(세종10년) 진주의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하자 세종은 삼강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 효자, 열녀를 각각 35명씩 가려 뽑아 모두 105명의 행적을 소개한 책이다. 당시 이름난 화가인 안견(安堅)과 최경(崔涇)에게 그림을 시켜 1436년(세종18) 편찬했다.

효행을 기록한 35편 중 31편이 중국의 사례이고 4편만이 우리나라 이야기인데 이 가운데 ‘은보감오(殷保感烏)’  ‘은보가 까마귀를 감동시키다’는 제목으로 서즐과 윤은보의 행적이 수록되어  지례가  예향(禮鄕)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스승인 장지도 선생과 제자인 윤은보, 서즐 등 세분을 기리는 삼효정려각(三孝旌閭閣)과 삼선생유허비(三先生遺墟碑)는 지례면 교동 옛 도로변에 나란히 서고, 대덕면 조룡리 섬계서원 동별묘에  함께 배향됐다.

장지도,윤은보,서즐이 함께 배향된 대덕면 조룡리 섬계서원
섬계서원 내 김천 유일의 천연기념물 제300호 은행나무

# 섬계서원,천연기념물 제300호 조룡나무와 연계... 효행 관광지로 개발할 가치 충분

지례의 삼선생 유허비의 주인공인 장지도,윤은보,서즐 세 사람은 김천의 유일한 천연기념물인 조룡리 은행나무가 있는 섬계서원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 처형된 백촌 김문기와 함께 위패가 배향되어 있다. 세종이 발간한 삼강행실도 국내 사례 4건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그 가치가 인정됐다.

삼선생유허비 인근이 정비되고 주차장이 확보되면,인근에 있는 대덕면 조룡리 섬계서원,천연기념물 제300호 노거수 은행나무와 함께 忠孝의 관광지로 김천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악신문 #지례 삼선생유허비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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