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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면 작내리 느티나무...“소박한 驛과 함께한 500여년의 삶”[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17]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2.09.15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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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내리 450살 느티나무의 여름

김천에도 멋진 느티나무 노거수가 많이 있다. 그중에 작내리의 450살 느티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역사성과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멋진 나무다.

김천시 구성면에서 지례로 15리쯤 달리다 구미교에서 우측으로 꺽어들면 새터와 양지마, 평지마,울안으로 이루어진 작내리가 있다. 한참 더 올라가면 용호리가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지례현 하북면에 속한 장천,관평마을이었다가 1914년 작내라 부르며 석현면에 속했다. 1934년 구성면 작내리가 되었다.

울안마을은 조선중종때 의성김씨 10세손이 이거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한울타리 안에 집을 짓고 살아 마을이름을 울안이라 하고 한자로 담장(墻)을 써 장내(墻內)라 했다.

새터는 넓은 들판을 보고 모여 이룬 마을이라 관평(觀坪)이라고도 불렸는데 1800년대 달서 서씨가 이거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새터 위쪽에는 역마,역촌,평지마로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고려시대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김천역에 딸린 작내역(作乃驛)이 있었다.

작내리 450살 느티나무의 겨울
450살 작내리 느티나무의 여름

 1890년대에는 역은 사라지고 역 앞에 있던 장승은 남아 있었다.  창고 2칸 ,말4필,역리 25명이 있었다고 김천도역지(金泉道驛誌)에 전한다.참고로 김천에는 작내역(作乃驛) 외에도 여러 개의 역이 있었다.

고려사병지역참조(高麗史兵志驛站條)에는 경산부도(京山府道 현 성주군) 속한 25개의 속역(屬驛)으로 김산현의 김천역, 지례현의 작내역, 어모현의 추풍역, 개령현의 부상역, 지례현의 장곡역 등 5개 역이 나온다.

조선 세종때도 44역도, 538속역 체제로 개편되면서 김천도(金泉道)가 신설되고 관할에 17개 속역을 거느리게 된다. 이때 김천도는 본 역인 김천역을 비롯해 김산군의 추풍역·문산역, 개령현의 부상역·양천역, 지례현의 작내역·장곡역 등 김천 지역에  7개 역이 있었다.

양천역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 양천리 마을회관 일대에 있었던 역으로 조선 세종 때 개설되었으며, 부상역과 함께 개령현에 딸린 두 개의 역 중 하나다.

‘김천도역지’에 따르면 양천역은 김천역에서 20리 거리에 관사는 없고, 창고 1칸, 역리 144명, 역노 10명, 역비 2명, 일수 10명, 역보 22명 등 188명이며, 중말 2필, 작은말 3필, 사창 1칸, 역전(驛田) 33결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 앞에는 동부리와 경계를 이루는 고개가 있는데, 지금도 역마고개라 불린다.

역마고개는 김천의 고대국가인 감문국의 궁궐터로 알려져 있다.

‘김천도역지(金泉道驛誌)’에 김천역은 역리 358명, 역노 51명, 역비 18명, 아전 15명, 통인(通人) 4명, 장교 3명, 총장교(銃將校) 10명으로 상당히 큰 역이었다.

450살 작내리 느티나무의 겨울
구성면 작내리 450살 느티나무의 여름

 지난해 따스한 어느 겨울날 작내리 마을 입구에서 시골 아지매를 만나 오래된 나무를 물었다. 그 여인은 친절이 가르쳐 주었다. 용호리를 드나들어도 보이지 않던 느티님은 비교적 쉽게 귀한 몸을 보여 줬다. 작내리 마을회관 옆 에 우람하게 서 있었다.옆구리에 외과수술의 흔적을 가지고 있지만 450살의 긴 세월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영광의 상처로 보였다.

여름이 한참인 8월 싱그러운 느티나무를 다시 만났다. 마을 회관에서 만난 정성균(94세)翁은 나무에 얽힌 얘기들을 자세히 들려줬다.

13~14년 전까지 산제를 지낸 후 마을에 유사를 정해 1년에 한 번씩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 지금은 제사를 지낼 사람이 없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나무가 훨씬 컷다. 나뭇가지에 그네도 매고 마을회관을 다 덮을 정도로 무성했는데 20여년 전 태풍에 큰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가 반으로 찢어졌다.

후에 시에서 복원을 했고 남은 가지가 자라서 현재의 수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훨씬 더 우람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나무의 나이가 500살 정도 됐다고 했다.

예전에는 동제를 지내지 않으면 동네에 해를 입는다고 해서 산신제와 동제를 지냈다. 동네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에게는 봉답을 주었다.

현재 마을회관이 바로 작내역이 있던 곳이다. 병을 막기위해 나무장승도 세워 놓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450살 작내리 느티나무의  겨울
450살 작내리 느티나무의 여름

나무의 높이는 17미터에 허리둘레가 820cm다. 살랑이는 미풍에 흔들리는 싱그러움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무 옆구리에는 마을 노인들의 말처럼 찢어진 가지를 보수한 흔적이 있다.

나무의 반이 날아갔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찢어지지 않았다면 이 나무는 정말 대단한 몸통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뒤로 돌아보면 마치 화장실에 앉은 사람의 엉덩이나 한 마리의 두꺼비와도 흡사하다.

나무의 울룰불룩한 옹이와 거친 피부는 작내역의 역사를 오롯이 다 품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창고 2칸 ,말4필,역리 25명의 아담한 작내역이 지금의 마을회관자리에 있어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손들이 휴식과 말을 바꿔 타기도 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의 시멘트 마을회관은 외관상으로도 생뚱맞고 나무의 생육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

작내리 450살 느티나

언젠가는 마을회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이 자리에 예전 작내역을 복원해 조랑말 몇 마리를 비치해 김천 제일의 명당인 臥龍과 伏虎가 자들어 있는 龍虎里까지 말을 타고 힐링 투어를 하는 관광벨트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오염되지 않은 호젓한 산길을 오르며 가족과 연인이 오붓하게 힐링을 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더구나 용호리는 외세에 맞선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일제를 피해 한 달간 숨어 지내며 내칙(內則)과 내수도문(內修道文)이라는 경전을 지어 반포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용호리로 가는 길을 걷다보면 100여년전 동학교도들이  마음속에 하늘의 천주님을 모시고, 외세에 싸우며 외우던  '侍天主'의 주문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듯 하다.

해월 최시형이 그  당시 숨어 지내던 곳에는 퇴락해가는 교당이 있고, 용호리 마을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뒷산에 하늘을 향해  벌렁 배를  뒤집은 거대한 龍한마리가  보인다.

왜 마을이름이 臥龍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 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회화나무와 선비문화

창원시 노거수 생태와 문화

#황악신문 #김천의 나무 #작내리 느티나무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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