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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압실마을 500살 느티나무와 사랑나무,...“가지 하나 떼어주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榮辱의 삶”뿌리를 찾아 떠나는 두 번째 여행 [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15]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2.08.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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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하압실 느티나무(사랑나무)의 겨울
구성 상압실 500살 느티나무의 겨울

立秋가 지났다. 가을 바람이 분다.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부쩍 자란 대추와 색이 물들어가는 석류,빨간 고추가 가을이 코앞에 왔음을 알린다.

시끄러운 세상은 바람불고 소나기 한 번 내리면 다시 또 자연의 위력 앞에 조용하다. 항상 세상의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관심을 가진 만큼 보여준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나무도 그렇다

차를 타고 스쳐지나 가던 길에 어느날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틴 나무가 있었나? 새삼 놀라곤 한다. 나무를 보기엔 겨울이 제격이다. 모든 잎새를 다 떨군채  대지에 온 몸을 드러내고 팔 벌려 우뚝 선 노거수를  문득 발견했을 때의 희열(喜悅)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압실마을 입구의 비석

구성 하압실 마을의 사랑나무가 그랬다. 지난 겨울 마산리로 노거수를 찾아 가는 길에 무심코 바라본 언덕에 영화에서나 봄직한 나무 한 그루가 나를 손짓했다. 동네 입구엔 두꺼비를 닮은 색바랜 이정표가 길을 안내했다.

하압실 느티나무(사랑나무)의 겨울
하압실 느티나무의 여름

 조금 들어가니 언덕위에 너무나 익숙한 듯한 나무가 마치 부채를 펼친 듯 서 있었다. 세상 그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名木이었다. 차를 하압실 마을 입구에 세워놓고 바람부는 언덕을 올라가니 풍경도 좋았다. TV드라마에 한 번 출연하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팽나무에 못지 않은 유명세를 탈 수 있으리라 아직도 믿고 있다.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구성 골짜기에 있는 압실이란 마을을 잘 모를수 있다. 나무가 아니었으면 한 번 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압실 느티나무(사랑나무)의 겨울
하압실 느티나무(사랑나무)의 여름

나무는 훌륭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듯 했다.  나무를 둘러싼 시멘트는 느티 뿌리의 강한 생명력에 다 들떠 있다. 빨리 시멘트를 들어내고 나무가 숨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한 수분이 공급될 수 있도록 나무 둘레의 정비가 필요하다.

여름에 다시 찾은 하압실의 사랑나무(느티나무)는 푸른 잎이 아름다운 가지를 감싸서 겨울의 균형있는 裸身을 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이 사랑나무는 겨울이 훨씬 더 아름답다.

하압실 느티나무(사랑나무)의 겨울
하압실 느티나무(사랑나무)의 여름

구성면 월계리는 하압실,윗압실,골마,북동,사점 등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북동과 사점은 한 가구만이 살고 있어 마을이라 이름하기 힘들 정도다.

월계(月溪)라는 지명은 깊은 산 맑은 냇물에 달이 비친 모습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압실은 임계라 불리던 하압실과 윗압실이 풍수의 지세가 포란압형(抱卵鴨形),오리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상압실 500살 느티나무

하압시리과 가까이 붙어 있는 상압실의 500살 느티나무는 규모가 엄청나다. 성인 서너명이 팔을 벌려야만 이 나무를 안을 수 있을 만큼 굵다.

이번에 찾아가니 느티나무 아래에 가족이 오순도순 깨를 손질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구성 농협 조합장의 가족이었다. 외지에서 살다 고향의 느티나무 바로 앞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가족의 우애가 참 보기 좋다.

상압실 500살 느티나무의 겨울
상압실 500살 느티나무의 여름

구성 조합장이 소개한 이 나무를 잘 안다는 어른들을 찾아 나섰다. 79세의 여흥구 翁은 “어릴 적 듣기에 500년이 넘은 나무인데 일제 강점기 둑에 6~7 그루의 나무가 더 있었고, 팽나무가 가장 컷는데  목재상이 나무를 다 베어가고 사정사정해 한 나무만 남았는데 가지를 하나 떼어 가고 남은 것이 이만큼 자랐다”고 말했다. “ 약 50년 전만 해도 산신제를 지낸 후 이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상압실 500살 느티나무의 겨울
상압실 500살 느티나무의 여름

83세의 이용수(이중화)翁도 “일제시대에 목재상이 이 동네에 살고 있었고, 본인의 할아버지가 목재상이 둑에 나무를 다 베어가려고 하기에 한 그루만 꼭 살려달라고 사정해 가지 하나만 베어가고 살아 남았다”고 증언했다.

“이후에 이 나무를 숭배해 제사도 지내고, 본인이 직접 구성면에 요청해 보호수로 지정됐다. 어릴적 기억에 느티나무 옆에도 밀식된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는데 논 임자가 그늘이 진다고 목재상에게 베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베어진 팽나무는 뿌리가 대단했고 지금의 느티나무 보다 더 컷다.

상압실 500살 느티나무의 겨울

이 동네는 한창 때 60가구 정도 살았고 나무에 제사를 지낸 덕분인지 대령과 서안교 변호사,교통부 차관 등 출세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됐다.

이 느티나무에는 큰 흉터가 하나 있는데 예전에 농사를 지을 때 거름을 나무 아래에 가져다 놓았는데 불이 붙어서 큰 구멍이 생겼는데 보호수로 지정되고 난 후 관리해 이 구멍이 다 메꿔졌다.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가 흔들릴 때 가장 힘든 이들은 서민들이다. 삶이 노곤해지고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어떤 방법으로든 머리를 비우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 종교의 힘을 빌릴 수도 있고, 친구와 상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세상사로 머리기 지끈할 때나 인간관계로 힘겨울때 혹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근처의 노거수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상압실 500살 느티나무의 여름

현대인들에게 나무의 신령한 기운과 치유의 능력을 말하면 별나라 사람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짧게는 50년,길게는 100년 전만 해도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 들은 나무에 자식과 후손의 안녕,동네의 평안,나라의 태평을 빌었고 나무가 베푸는 혜택을 삶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받아 들였다.

한국인의 DNA속에는 삼한시대 신성한 소도(蘇塗)로부터 당산에 이르기까지 나무를 숭배해온 사상이 녹아 숨쉬고 있다. 환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온 곳도 신단수 아래다, 즉 신성한 神木과 관련이 있다.

거창한 옛날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삶이 힘겨울 때 가까운 곳에 있는 수 백살의 나무를 찾아가 보라. 가서 눈으로만 보지 말고 나무를 안아보고 ,쓰다듬으며 손으로 전해지는 나무의 심장소리와 마음의 대화를 나눠보면 노거수는 우리가 그냥 대하던 그냥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무들은 우리의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 그 위 20~30대 할아버지 때부터 인간의 모든 애환과 고민을 들어주던 그런 친구이자 의사였고 神이자 해결사였다.

인간은 항상 작은 이익에 매달리지만 나무는 아낌없이 내어주고 들어준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비웃거나 귀를 닫지 않는다. 설사 발로차고 톱을 들이대도 나무는 모든 것을 수용한다. 나무에게는 인간에게 익숙한 背信이란 단어의 그림자조차 없다.

하압실 500살 느티나무의 여름

원예치료도 있지만 노거수는 이 보다도  더 오랜 세월동안 훨씬 더 많은 인간들을 대한 임상사례를 가지고 맞춤 치료를 해 줄 수 있다.

여름 휴가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老木을 찾아 새로운 노거수 힐링법을 한 번 경험해 보시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회화나무와 선비문화 등

#김천의 노거수,압실의 느티나무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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