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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문국의 石城...고소산성(姑蘇山城)을 찾아서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첫 번째 여행 [감문국 이야기 18]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1.11.17 14:06
  • 댓글 2
감문국의 유일한 石城으로 전해지는 고소산성

김천 지역에 현존하는 성터의 흔적이 여러군데 남아있다. 축조연대도 삼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다양하다. 학계에서는 감문산의 취적봉 성터는 삼한 시대, 고성산 , 고소산 , 속문산 ,주치, 어전령 , 부항령 ,구산 성터 등 8개의 성은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덕대산성, 금오산성(金烏山城) 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된 성이다. 김천 시내에는 양천동 고성산 성터, 감문면에는 고소산성과 속문산성, 개령면에는 감문산성, 남면에는 금오산성, 대덕면에는 여산 성터와 주치 성터 등이 있다. 부항면에는 어전령 성터와 부항령 성터,지례면에는 교리산 성터와 구산 성터 등이 있다.

#감문국의 山城들

지역사학계가 감문국과 관련된 성으로 보고있는 산성은 세 개다. 먼저 개령면 동부리 소재 해발 239미터의 감문산 취적봉에 있는 감문산성이다.감문산 정상부에는 능선을 따라 인위적으로 축조된 흔적이 토성(土城)이다. 취적봉(吹笛峰) 정상은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의 평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봉수지(烽燧址)로 추정되는 돌을 쌓은 구조물이 남북으로 일직선으로 5개가 있다.

두 번째는 감문면 문무리와 송북리 사이 속문산(俗門山) 해발 600미터지점에 산정 능선을 따라 동북으로 석성(石城)과 토성(土城)을 혼용해 축조한 속문산성(俗門山城)이다.백운산 정상에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산성은 동북으로 길쭉한 말각 삼각형으로 북서에서 시계 바늘의 반대 방향으로 동쪽까지는 석축과 토축을 혼용했다. 동에서 북쪽까지, 즉 성북마을이 있는 쪽은 자연 절벽을 이용하였고 성의 둘레는 800m다. 성벽은 아래쪽의 석축이 350㎝, 위쪽의 토축이 250㎝이지만, 축성된 부분은 500m 정도 된다. 성내에 봉수대와 샘 2개, 망루 추정지 3개, 장대(將臺) 1개소 등이 확인됐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제인 감문면 문무리와 어모면 구례리와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365미터의 고소산(姑蘇山), 일명 성산(城山) 정상 50여미터 아래에 남북으로 길이 7백미터의 허물어진 石城인 고소산성이 있다.

고소산성 /문무리를 사이에 두고 백운산과 마주보고 있다.

#고소산성(姑蘇山城)

고소산성은 속문산성과 마주보고 있다.석성의 대부분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나 일부는 높이 5미터에 달하는 거의 완벽한 형태의 성벽이 곳곳에 남아있다. 고소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5㎞ 정도이다.

산성은 형태에 따라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으로 나눈다. 테뫼식 산성은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것으로, 발권식 산성·시루성·머리띠식 산성이라고도 한다. 대개 규모가 작은 산성이 이에 속한다. 포곡식 산성은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하나 또는 여러 개 감싸고 축성하여 그 규모가 크다

고소산성의 아랫부분에 석축한 곳은 500m고, 나머지 정상부 쪽으로는 토축을 하였다. 성 돌의 크기는 40×30×20㎝에서 80×50×30㎝ 정도로 허튼 쌓기를 하였다. 성내에는 완만한 경사의 계곡을 이루나 성 밖인 북·서쪽은 급경사를 이룬다. 토성은 폭 4m, 높이 1~1.5m이다. 정상의 북동쪽 정면으로 추정되는 장대지(將臺址)가 확인된다.지역사학계과 달리 학계에서는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고소산 전경

#고소산성(姑蘇山城) 가는 길

문무리 앞 농장으로 들어가는 한적한 길목에 차를 세웠다. 이미 고지 600미터의 백운산 정상에 있는 속문산성을 쉽게 찾은터라 365미터인 고소산성은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고소산의 石造 인공구조물

고소산을 올라가니 길이 없다. 10여분 올라가니 급경사에 낙엽이 가득 쌓여 미끄러운데다 온갖 잡풀과 가시들이 가로막았다.

돌로 쌓은 인공 구조물

산을 올라간지 10여분도 채 되지 않아 계곡을 따라 돌로 쌓은 인공구조물이 여러군데 발견됐다.깨진 기와장과 뽕나무들이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고소산의 인공 石造物

높은 곳은 높이가 2미터 정도 되는 곳도 있었다. 길이도 수십미터씩 이어졌다, 산 정상을 따라 길게 쌓았고,돌이 풍부했다. 돌에 낀 이끼가 아주 오랜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집채 만한 돌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계절을 잊은 꽃망울

날씨가 따듯해서인지 계절을 잊은 나무들은 꽃망울까지 맺고 있었다. 두꺼비를 닮은 바위도 만났다.고소산의 특징은 낮은 고도에도 불구하고 급경사에 돌이 많아 산성을 쌓는 재료를 수급하기에 적합했다. 집채만한 바위도 심심찮게 보였다.

두꺼비를 닮은 바위

 

새의 알을 닮은 바위

길이 있다면 30분도 걸리지 않을 정상을 1시간여의 악전고투 끝에 겨우 다다를 수 있었다. 울창한 나무들과 가시덤불 탓에 마치 밀림을 헤치듯 한 걸음씩 올라가는 힘겨운 산행이었다.

고소산의 낙엽들

수북이 쌓인 낙엽들로 몇 번을 넘어져야 했다. 넘어져서 보니 낙엽사이로 수많은 작은 나비(나방)들의 날개짓이 장관이다. 이렇게 많은 나비를 본 것은 평생 처음이다. 감문국을 찾으면서 많은 새들의 환영은 받았지만,나비의 향연은 새롭다. 산불은 경계대상이다. 고소산은 불이 나면 끄기 어려울 만큼 낙엽이 많이 쌓여있다.

석축 구조물
인공 石築

 하산하면서 또 여러 인공석축들을 만났다. 산성이라 하기엔 다소 낮았지만 긴 세월과 노력의 흔적이다.

결과적으로 자료사진의 고소산성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감문국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처음 맛본 실패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山城이 존재할 수 있는 충분한 여러 가지 기반을 확인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고소산에서 바라본 문무리와 백운산

#문무국과 김산

고소산에서 바라보니 눈 앞에 백운산이 보인다. 감문국의 백성들이 사로(신라)에 저항하다 몰살당해 그 원한이 구름이 된 산, 그 아래 옹기종기 문무리의 집들이 정겹다. 삼한시대 소국인 문무국이 상여를 중심으로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문무국을 증명할 수 있는 특별한 유적은 없고 마을 주변에 산재한 고분들과 성곽의 흔적들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삼한시대 김천은 감문국의 영역이었기에 문무국도 감문국의 영향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무리의 농가에 보관중인 파손된 토기

口傳으로 여산(余山)이 망해서 아산(牙山)이 되고 아산이 망해서 김산(金山)이 됐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데, 여산이 문무국의 도읍지였고, 아산은 어모국의 수도인 아천이고,김산은 현재 금산동으로 김산현의 도읍이니 여산 즉 문무국이 김천의 시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문무리에서 상주공성으로 넘어가는 빈티고개의 고인돌

#고인돌의 나라 문무국

고소산의 하산길도 험난했다. 낙엽은 여지없이 미끄러웠고, 몇 번을 엎어진 후에야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와 논바닥 길가의 고인돌에게 인사를 드렸다. 

문무리 고인돌

몇 년 전부터 무성했던 뽕나무는 더 크게 자라서 신성한 이의 무덤을 훼손하고 있다. 톱만 있으면 베었을텐데,,,

뽕나무가 덮은 고인돌

차를 몰고 상주군 공성면으로 넘어가는 빈천고개의 지석묘를 구경했다.도로변에는 지석묘로 덮개돌들이 즐비한데 나무와 덤불로 잘 보이지 않았다. 문무리 주변에는 약300여기의 고인돌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무덤을 고려장이라 부른다. 대부분 훼손되고 도굴됐다. 이곳을 탐사한 학자들이 고인돌 공원을 권유했을 정도니 대단한 숫자임에 틀림없다.

문무리 고인돌

 10여년 전만 해도 문무리의 집집마다 토기 몇 점씩은 있었다고 한다. 2년 전 방문한 한 농가에도 깨진 토기가 여러 점 있었다. 

문무리 고인돌

그 많던 고인돌의 판석들은 어디로 갔을까? 싼 값에 외지로 팔려나갔다는 말도 얼핏 들은듯하다. 

살아서 문무국과 감문국을 호령하던 君長의 무덤은 어느집 정원에 장식이 되고, 영혼들은 安息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

문재원 (향토사학자,前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조상의 얼찾아(문재원)

금릉빗내농악 (민속원)

대구.경북 청동기시대 문화(삼한문화재연구원)

김천의 마을과 전설(김천문화원)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옛 상주를 담다(상주박물관)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감문국개령지(우준식)

경상북도 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

김천역사의 뿌리 감문국

『김천의 금석문』(김천문화원, 1997) 등

#황악신문 #감문국 # 고소산성 #문무국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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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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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윤 2021-11-22 14:30:26

    고향 역사 재미있네요~
    이 많은 자료를 취합해서 정리하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은퇴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유유자적 선조들의 발자취를 다라다니고싶네요~   삭제

    • 금파 2021-11-17 17:21:03

      고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이
      상당수 있습니다..할미고라는 글자는
      마고할미와 관련이 있고,
      전통의 무도 마고할미와
      관련된 흔적이 있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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