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用 강창우 (다물上古史硏究會 회장)

바람이 차다. 은행잎이 꽃비처럼 날린다. 내복을 챙기고 목도리를 찾는다. 옷깃을 올리고 장갑을 낀다. 칼럼의 주제를 잠시 ‘시월(十月)’에 세운다.

11월이 다 가는데 웬 시월(十月) 타령이냐 하겠지만, 필자는 음력 시월을 말한다. 올해에는 윤달이 들어 음력 시월이 양력으로는 11월 중간쯤에 걸렸다. 그래서 겨울과 함께 음력 시월이 시작되는 거다.

연말에 새해의 달력이 준비되면, 잊지 말아야 할 날들을 붉은 동그라미로 챙긴다. 생일과 기념일들, 그리고 기제(忌祭)와 집안 묘사(墓祀) 등의 날자를 기억으로 더듬고 손으로 꼽으면서 표시해둔다.

어릴 때 일이다. 해마다 묘사 때가 되면, 정해진 날에 아버님을 따라 네 차례에 걸쳐 묘사를 다녔다. 특히 올해처럼 윤달이 들면 눈 위에서 절을 올릴 때도 있었다. 당시에는 자가용이 없을 때라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전날에 준비해둔 축문(祝文)을 안주머니에 꼭꼭 챙기고, 두터운 옷과 목도리로 몸을 감싸고, 첫 버스에 올랐다.

얼음길을 밟으며 묘사 제물이 준비된 집으로 향한다. 당시에는 묘사답(墓祀畓)을 경영하는 대가로 제물을 마련하도록 하는 일이 흔했다. 뜨듯한 아랫목에 앉아 국물이 있는 안주거리와 약주를 드시면서 햇살이 퍼지기를 기다린다. 그런 사이에 다른 어른들도 오신다.

때가 되면 제물을 지게에 지고 산을 오른다. 먼저 그 달에 궂은일을 겪지 않은 분이 산제(山祭)를 모신 후, 모두 함께 묘사를 올린다. 산소가 흩어져 있으면 제물을 옮기며 모시거나, 서로 나뉘어서 모시기도 한다.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기다렸다가 떡을 얻어가기도 한다. 간략한 음복(飮福) 후 하산하여 식사를 한다. 그리고는 모든 제물을 모아놓고 공평하게 봉개를 탄 후 집으로 향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에 살다보니, 필자도 어느듯 이런 일들을 앞장서서 주관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당시에는 변치 않을 것만 같았던 세태(世態)가 변하였고, 필자 또한 많은 것을 정리하였다.

문중(門中)과 함께 상의하여 묘사 날짜를 음력 시월 첫째, 둘째 일요일, 이틀로 정하였고, 윗대의 가능한 조상들은 모두 화장하여 납골당을 지어 모시고, 사연을 적은 비석을 세웠다.

필자 개인의 경우, 우리 갈래의 족보(族譜)를 재정리하였고, 우선 정리 가능한 직계 조상들은 한 곳에 모아 평장(平葬)하여 와비(臥碑)를 얹은 묘자리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 화장하기로 하였다. 또한 내년부터 모든 기제(忌祭)를 일년 일회(一回)로 모아 모시기로 하였고, 시간은 평소 저녁 시간에 맞추기로 하였다. 다만 실제 기일(忌日)에는 저녁상에 가족끼리 돌아가신 분을 추모(追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축문과 제문, 족보와 비문 등은 모두 한글로 풀어 재정리하되 현대적인 의미를 담아 더욱 풍성하게 지었으며, 절차와 제물 등은 대폭 간소화하였다.

어찌 우여곡절이 없었으랴. 하지만 오랜 기간 논의되어왔던 일이고, 문중과 직계 후손들의 허락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필자로서는 도반(道伴)들과의 오랜 수행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가 영가(靈駕)를 천도할 수 있게 되었고, 올바른 천도가 이루어지면 산소나 제사 등은 단지 기념의 표식일 뿐임을 알았기에, 망설임 없이 정리할 수 있었다.

누구나 겪었음직한 일들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읊어보는 것은 ‘나는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줄여보고자, 그리고 마음의 짐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동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 세대에는 어떻게 변할까? 가늠하기 어렵다. 아마 상상 이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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