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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득남의 전설을 간직한 김천 태화리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 10)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89호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6.0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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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여름을 향해서 직진하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이 따갑기까지 하다.
太和는 크게 화평하다는 뜻이 아닌가? 한의학에서 완벽한 건강체를 음양화평지인이라 부른다. 음양이 골고루 조화를 이루었다는 말이다, 태화리는 음양이 크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때는 황간군 황남면에 속한 땅이었다.

아침에 해가 뜨는 양지마(양지뜸)와 해가 지는 음지마(음지뜸)도 음양이다. 결국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의미리라.

길가에 있는 표지판을 지나쳐 다시 돌아 태화1리로 들어섰다. 입구는 좁았지만 들어가니 길은 넓었다.

코를 찌르는 늙은 암 밤나무의 꽃향기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문화재를 찾다가 차를 돌리지 못한 고생의 경험 때문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으니 길가에 보살을 모신 전각이 보인다.

                      예전에 석조보살이 있던 자리

가까이 다가가니 손과 입술은 조금 깨어졌지만 비교적 온전한 보살입상이 반긴다. 보호각의 문을 열고 들어가 1,000년이 넘은 그를 살펴봤다.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로 추정하나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다.

한 바퀴 돌아본 후 한 번 쓰다듬어 봤다. 까칠한 돌의 감각과 천년의 세월이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하반신이 땅속에 오래 묻혀 있던 까닭에 색깔이 다소 변했다.

                    보호각으로 옮기기 전 모습

신작로가 생기기 전 건너편 양지마와 음지마는 한동네였다. 음지마에는 가막사라는 절이 있었고 5층 석탑이 있다. 다시 찾아가 볼 요량이다.

양지마 보살상 앞도  절터였던 모양이다. 동네 주민에게 들으니 지금은 밭으로 변해버린 그 절터에서 예전에 그릇 등이 춭토 되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가막사지 5층석탑 (봉명 -음지마 마을)

30여호의 충주박씨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예전에 마을전체가 절터였다는 말이 있다. 가막사라는 절이 상당히 컷을 것이다. 탑을 쌓고 석조보살입상을 만들 정도면 寺勢가 작지는 않았겠지만 세월속에 이제는 묻히고 사라져  희미한 이름만이 전한다.

석조보살입상은 득남의 소원을 이뤄준다는 소문이 있어 지금도 사람들이 찾는다. 보살상 전각의  대각선으로  가까이 아주 멋진 벽돌집이 한 채 있는데 김천시의회 미인 시의원의 집이다.

 

#김천황악신문 #태화리 석조보살입상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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