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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甘文(감문)의 슬픈 노래 10) 아포 정벌의 실패“감문국의 大兵이 건너려던 감천의 강물 위엔 현대식 다리만 우람하네”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5.0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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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연당 건너편 강가에 渡江碑 세워 감문국의 역사 복원할 가치 충분”

<역사적 사실>

1.역사서『東史』에 감문국과 아포국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아포가 배반을 해서 대군 30명을 일으켜 밤에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불어나 되돌아왔다[牙浦叛大發三十夜渡甘川水見漲而退].”는 기록이 있다.

2.. 김천시 아포읍 제석봉 아래 제석리 일대에는 아포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고,주변에 수기의 고분과 성곽의 흔적이 발견되고, 왕비봉(王妃峰)·관리봉(官吏峰)·삼태봉(三胎峰) 등과 같은 지명이 있다.

3.金泉市史1권 437페이지를 보면 아포읍에는 대신리 고분군이 있는데 서원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의 능선 북쪽 일대에 30기의 석곽고분이 능선을 따라 분포한다.

             동부연당

< Storytelling>

신록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5월 금효왕은 연당을 거닐며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연당의 蓮들도 제법 물 밖으로 둥근 이파리를  내밀었다. 주위의 물버들도 한창 잎사귀를 키워가는 중이다.

장부인은 왕의 시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벌써 며칠 밤을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왕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고심의 나날을 보내던 금효왕을 점심을 물리자 장부인과 무개(無盖)장군을 은밀히 불렀다.

두 사람은 왕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했다.

드디어 왕이 입을 열었다.

“부인,이제 아포를 그대로 둘 수 없을 것 같구려”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부인과 무개(無盖)장군은 그 말뜻을 이해하고 그날 밤 군사들을 불러 보았다.

정예병을 30명을 뽑아 야밤에 아포국을 기습해 왕을 생포해 오거나 여의치 않으면

죽이기로 했다.

주위의 어모국과 배산국 문무국 주조마국은 감문의 뜻에 따르며 평화를 지켜오고 있었지만 유독 아포만은 달랐다. 침투한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수상한 기운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요즘은 사로(신라)와의 내통이 부쩍 늘고 사로의 배와 사람들의 움직임이 강 건너에서 목격되곤 했다.

혹여나 아포국이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감문국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기에 그 불안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날 밤 무개(無盖)장군은 정예 30명을 거느리고 야음을 틈타 몰래 아포국으로 잠입하기 위해

강가로 모였다.

하지만 조금씩 내리던 봄비가 더욱 강해지고 조마로부터의 물과  직지천의 물도 더해져 강의 범람을 걱정할 정도였다.

장부인의 보고를 들은 금효왕은 군사들의 안위를 위해 철수를 명했다.

5월의 봄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서원마을에서 본 감천과 개령

남면 초곡2리 서원마을을 찾았다. 몇 년 전 서원마을 좌측 야산에 있는 삼한시대의 무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도굴된 고분이 즐비한 서원마을 언덕 좌측 산

많은 무덤들이 도굴된 채로 뒹굴고 있었다. 깨진 토기의 파편들이 산과 개간된 과수원에 가득했다. 

             서원마을 고분이 산재한  산

혹시 아포국의 무덤은 아닐까?

            대신에서 바라본 개령 유등산

대신에서 감천을 가로질러 개령농협 앞으로 연결되는 현대식 다리가 우람하게 나 있다.

     대신에서 바라본 감천

예전에는 감문국과 아포의 경계를 감천이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대신에서 감천을 건너면 바로 감문국의 궁궐에 딸린 연못 동부연당이 자리잡고 있다.

               개령에서 바라본 감천 (渡江碑 건설 추천 장소)

현재 건설되고 있는 감문이야기나라와 정비중인 동부연당 건너 감천변에 渡江碑를 하나 세운다면 감문국의 역사는 책에서가 아니라 현실에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도강비가 세워지면  감문국과 연계해  관광지로 만들 수도 있다. 감천변 강가에서 2,000여년 전 고대국가 중 하나인 김천의 역사적 始原인  감문국의 역사를 귀 쫑긋하게 세우고 듣는  많은 관광객들을 상상해 보라 . 가슴 뿌듯하지 않은가?

비석의 한 면에는 東史의 역사적 기록을 적고, 다른 면에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1749~?]이 우리 민족이 세운 전국의 21개 고대국가의 도읍지를 답사하면서 노래한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서 사라져 간 감문국을 회고하며 노래한 아래의  詩 한편을 새기는 것도 좋으리라.

장비일거야화향(獐妃一去野花香) 장부인은 간 지 오래인데 들꽃은 향기롭다

매몰잔비거효왕(埋沒殘碑去孝王) 땅에 묻힌 낡은 비는 금효왕의 흔적

삼십웅병추대발(三十雄兵酋對發) 크게 일으킨 군사 삼십 명

와우각상투천장(蝸牛角上鬪千場) 달팽이 뿔 위에서 천 번은 싸웠으리

 

달팽이 뿔 같은 좁은 땅에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천 번을 싸운 우리 조상들의 흔적!

하지만 치열했던 그 역사의 현장에 사라져가는 김천인의 魂을 일깨우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되살리는 것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후손에게 해 줘야 할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

 

#김천황악신문 #감문국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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