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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 4)월명 미륵암 석조미륵불 입상 (金泉彌勒庵石造彌勒佛立像)"당나라 장군이 세운 절집의 옆집 아저씨 같은 얼굴"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4.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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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했다. 그 당시 당나라 장군 가운데 시씨 성을 가진 장군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철위(柴哲威)로 당태종의 외척이다. 백제를 멸망시킬 때 그의 벼슬은 가림도행군총관으로 김천근처에 주둔하고 있었고, 고구려 정벌에 나설 때 벼슬은 함자도행군총관이었다.

그는 당황제에 대한 감사와 싸움의 승리를 위한 부처의 가피를 위해 출병의 통로이자 요충지인 성주에 절을 세웠다. 절의 이름은 미륵원 지금의 미륵암이다. 현재는 성주와 김천 남면의 경계지역인 월명이 바로 그곳이다. 그는 비석에 “마음을 기울여 예경하니 한량없는 복을 받는다”고 적기도 했다.

고구려의 멸망으로 삼국이 통일되고 난 후 신라와 당나라는 한반도에서의 영토와 주도권을 잡기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7년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서기 676년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를 거두고 당나라는 물러갔다. 평화가 찾아오자 민중들은 나라의 태평과 산적떼와 맹수로부터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미륵불을 미륵암에 세웠다.

세월이 흘러 난세가 시작되자 험준한 산세에 쌓인 절집근처는 산적과 도적이 출몰하는 위험지역으로 바뀌었다. 김천에서 소를 훔쳐 달아나던 도둑 하나는 성주로 아무리 도망쳐도 미륵불 근처에서 맴돌자 화가 나 도끼로  미륵불의 손을 내리쳐 동강을 내버렸다. 도둑은 즉사했고 그 도둑의 무덤은 근처 어딘가에 도둑묘라는 이름으로  봉분이 최근까지 전해 내려왔다.

더 많은 세월이 흘러 절집도 무너지고 미륵불도 부서져 좌대는 땅에 묻히고 몸통은 시멘트로 갇혀 지내다 1999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2002년 4월 1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0호로 지정되었다.

절집 앞에는 온통 桃花밭이다. 사람의 혼을 빼는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치명적인 아름도움을 도화살이라 하지 않던가? 

 새로 만든 대웅전의 뒷산은 풍수에서 말하는 신령한 거북이가 내려오는 형상을 (靈龜下山形)닮았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다소 약해 바람을 다 막진 못하지만 크게 나쁘진 않다. 봄이면 도화가 만발해 부처의 은혜를 칭송하니 흡족하실 것이다.

절집을 찾기는 너무나 쉽다. 남면에서 성주로 너머가는 길 옆에 위치해 있다. 월명 성모의 집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천주교와 불교가 친근하게 마주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여러 번 다닌 길이지만 그동안 전혀 눈에 뜨이지 않던 곳이다,

석조미륵입상 부처님은 돌로 만든 둥근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관까지의 총 높이는 약 177㎝다. 좌대와 원래 그대로이고 손은 부서진 손은 새로 만들었다. 몸통아래 하단부도 새로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복원된 불상은 원래의 위치에서 후방으로 약 2m 정도 이동되었고 연화문 좌대는 지하 약 2m 지점에서 발견되어 복원되었다.

머리 높이는 약 53㎝, 어깨 폭 84㎝, 허리 폭 65㎝, 허리 두께 52㎝, 보관의 폭은 97㎝이다. 연화문 좌대는 중석 받침이 생략된 채 상대와 하대가 같은 돌로, 꽃잎의 끝이 위로 향한 연꽃과 꽃잎의 끝이 아래로 향한 연꽃을 새겼는데 상대에 비하여 하대의 연꽃이 더욱 뚜렷한 8엽이다. 대좌의 크기는 직경 93㎝, 높이 약 37.5㎝이고 같은 돌로 조성된 하부 지대석은 약 30㎝가 매몰되었다.

보관의 아래에는 주연부(周緣部)에 물끊기가 있어 빗물이 석불로 묻어드는 것을 방지한 것으로 보이며 상부의 중앙에는 갓처럼 높이 솟은 모습을 하고 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민머리 형태이며 머리 중앙부에 높이 솟은 육계로 보관을 받치고 있다. 얼굴은 풍만하나 백호는 불상을 보수할 때 보충한 것으로 보이고 귀 부위에도 보수한 흔적이 있으며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뚜렷하다.

양손도 보수한 것인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복부에 붙이고 있다. 법의(法衣)는 불상의 양어깨를 모두 덮은 양식으로 앞가슴에 완만한 U자의 옷 주름을 여러 겹으로 나타내었고, 두 팔에 드리워진 옷 주름도 사실적 수법으로 표현했다.

김천 미륵암 석조미륵불입상은 통일신라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과도기적 양식을 띠고 있는 고려전기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팔 부위와 하반부를 보수하였으나 석불의 규모나 형태, 완전한 보관이나 연화 대좌는 원상을 지니고 있어 당시의 석불 양식을 파악할 수 있다.

절집의 기원을 알려주는 함자도총관시장군정사도당비편含資道摠管柴將軍精舍草堂碑片(줄여서 ‘시장군비’라고 함)은 1997년 봄에 발견되어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눈망울이 툭 튀어나와 못생겨 보이기까지 하는 월명리 미륵불은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모습으로 오늘도 중생을 기다리며 용화(龍華)세계를 준비하고 있다.

 

#김천황악신문 #월명리 석조미륵입상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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