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샘 (프리랜서 기자.워싱턴 D.C거주)

내가 잠시 리프트에서 내리고 운전 기사가 내려와 발로 쾅쾅 밟아 보았지만 허사다. 그러기를 20여분 운전 기사는 마침내 고치는 것을 포기하고 카폰으로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는 내려와서 내게 곧 다른 버스가 올 테니 그 버스를 타고 가라고 친절하게 말을 한다.

나는 무척 미안했다. 이제 버스는 내려온 리프트 때문에 내가 타지 않더라도 움직이지를 못한다. 나만 아니었으면 벌써 목적지에 당도했을 사람들이 나 때문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다.

운전 기사는 물론이거니와 버스 안에 타고 있는 10여 명의 승객에게도 무척 미안했다. 나 때문에 적잖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 사람도 불평하지 않는 것을 보며 나는 적잖이 놀랬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운전 기사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게 왜 네 잘못이냐 이 것은 모두 우리 버스 잘못이라고 오히려 사과하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서너 명 아이들만 차에서 내려 총총히 걸어가고 나머지는 모두 태연하다. 운전 기사나 승객 모두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내가 놀래고 있는 것이다.

아침 시간, 한참 조급한 마음들일 텐데도 아무도 마음 상하지 않고 넉넉하게 기다리고 있다. 운전기사는 다른 버스를 기다리며 나와 한가롭게 사담을 나누었다.

자기는 딸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열 일곱 살이고 또 하나는 열 다섯 살이라고 말했다. 아들을 하나 양자로 두었는데 술과 마약으로 어지간히 속 썩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제는 마음을 바로잡고 가을 학기부터 공부를 하게 된다는 얘기 등등, 한참을 얘기를 나누는데도 차안의 승객은 차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 보는 사람도 없다. 그저 때가 되면 고쳐지고 고쳐지면 떠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냥 여유 있게 들 앉아 있다.

잠시 후에 다른 버스가 왔다. 그는 카폰으로 연락을 받아서 인지 다소 조급한 동작으로 리프트를 이용해 나를 차에 태웠다. 고장난 버스의 운전기사도 따라 올라와 휠체어 고정시키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가 다시 버스에서 내려가며 상냥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고장난 버스와 운전기사를 뒤로하고 내가 탄 버스는 웨스턴 길을 북쪽으로 향해 달려갔다. 나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미국은 장애인에게 정말 좋은 나라이다. 만약에 이런 일이 서울에서 일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일반 버스에 장애인이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없기 때문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설령 버스에 그런 시설이 있다 치고 오늘 아침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사람들은 무척 짜증을 부렸을 것 같다.

운전 기사는 왜 하필 이 시간에 장애인이 차를 타려고 해서 버스를 부숴먹게 만들었느냐고 신경질을 냈을 것 같고, 승객들도 그런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그랬으면 나는 또한 얼마나 무안했을까. 상상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한국인들은 왜 미국인들 같은 여유를 갖지 못하는 걸까.

미국은 정말 여유 있는 나라다. 우리 나라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때로 무척 답답함을 느낄 만큼 이곳 사람들은 급한 것이 없다. 느린 대신에 이곳 사람들은 실수가 적다. 어떤 일이건 조급함이 없이 천천히 해나가고 그 대신 더 철저하게 하려고 애쓴다. 그런 문화가 아무래도 동작이 신속치 못한 장애인들에게는 그렇게 편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한국인의 의식에 자리한 그 조급함 때문에 장애인들은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는지 모른다. 휠체어로 맞춰지지 않는 보행 속도, 빠른 것만을 요구하는 일의 한국적 속성, 그런 문화 속에서 우리 장애인들은 얼마나 주눅이 들어서 살아가야하는지 모른다. 천천히, 대신 철저하게, 이런 문화가 한국의 것이었다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미국이 장애인에게 편리한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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