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샘 (프리랜서 기자.워싱턴 D.C거주)

아는 분으로부터 소개받은 곳이 구세군 매점이다. 구세군 매점은 중고 물품들을 내 놓는 곳이지만 잘 고르면 쓸만한 물건이 꽤 있었다. 가격도 무척 싼 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간단하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은 그곳에서 구입해 입는다. 지난번에 구입한 양복이 집에 와보니까 담배 구멍이 나 있었다. 누군가 담배 피우다 구멍을 내 먹고 그것을 그냥 내다 준 모양이다. 바꾸러 갈까하다가 몇 푼 안 되는데 요란 떠는 것 같아 그냥 집에 걸어 두었었다. 밤이나 혹은 그냥 간단한 모임에 입고 가야지 싶었다. 모양도 괜찮은 편이다. 그랬는데 오늘 아침 깜빡 잊고 급한 대로 주워 입고 교회에 온 것이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아내를 기다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담배 구멍을 보고 황급하게 옷을 감춘 나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본 것이다. 스스로가 별로 믿음직한 사람이 되지 못한 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나는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담배 구멍이 난 옷을 입고 교인들 앞에 섰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담배 안 피우는 사람으로 보여질 자신은 없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주변의 몇몇 사람을 꼽아 보았다. 양복 자락에 담배 구멍에 나있어도 그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가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의 대열에 끼지를 못한다. 그런 사람들처럼 바르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오면서 내 삶 구석구석에 남긴 아름답지 못한 오점들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래, 그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견실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데 지장을 주는 것이다. 꼭 그렇게 살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사람들과 너무 가까워지고,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불성실하고 덜 진실한 모습을 연출해 간 것이다. 악의로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한 일들이 더 많다.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그런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때가 무척 많다. 몇 군데쯤은 깨끗이 지우고 다시 그려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를 아름답지 못하게 그린 부분들은 끝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아름답게 살아야지. 바르게, 진실 되게 살아야지. 될지 모르지만 담배 구멍난 양복입고 다녀도 저 사람은 절대 담배를 피울 사람이 아니야,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실상 어떤 의심 살 만한 일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을 듣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불신을 불평하곤 한다. 그러나 믿지 못할 사람을 억지로 믿는 것은 고역이다. 신뢰를 하지 못하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지만 신뢰를 하지 못하게 하는 당사자에게도 적잖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신 풍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억지로 믿게 하기보다는 불신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다. 나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우리 주변의 진실에 많은 흠집을 입힌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회의 일원인 개인 스스로가 더 진실 되려는 노력을 하므로 사회의 건강한 진실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살만한 사회가 될 것 같다.

처음 미국에 와서 화머스 마켓에 가서 겪은 일이다. 화머스 마켓은 농사 지은 물건, 혹은 농사지은 물건으로 빵이며 과자 같은 것들을 손수 만들어 파는 노천 상가다. 우리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코너에서 사과 주스와 꿀을 사며 가짜가 아니냐고 물었다. 주인은 우리가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됐다는 것을 금세 알고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가짜라는 말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어색한 말인가를 알게 됐다. 꿀이면 그냥 꿀 인줄 알고 사고, 약이면 약인 줄 알고 사면 그만이다. 물론 이사회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인 이상 가짜 같은 것들이 없을 수 없겠지만 사회 문제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거나 신문에 나는 일을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가 4년 가까이 미국에 살면서 물건을 사면서 가짜냐고 묻는 사람을 한번도 보지를 못한 것이다.

요즘 우리 한국은 얼마큼 변해 있을까? 우리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가짜라는 말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으며 살았었는데... 진실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진실이 조용히 한국 사회에 퍼져나가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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