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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7.09.0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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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박노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김천황악신문  webmaster@hwang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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