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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느림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9.08.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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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석 (在美 시인,소설가,수필가)

운전기사가 학교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웠다. 운전기사가 고정된 내 휠체어를 풀기 위해 다가오는데 빨간색 미니 밴 한 대가 다가와 주차장 입구에 선다. 뒤에 차들이 밀려오는 데도 들어갈 생각을 않고 서있기에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내가 탄 25인승 버스의 뒷부분이 주차장 입구를 막고 있어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힐끗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던 일을 계속 한다. 차안에 있는 예쁜 여자 대학생도 전혀 조급한 표정이 없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차에서 내리려면 삼사 분은 족히 걸린다. 네 바퀴에 걸려있는 걸쇠를 다 풀고, 리프트를 작동해 내려오고, 또 다시 리프트를 올려 접어 넣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 긴 시간을 길을 막고 있는 것에 대해 나만 미안하고 조급해하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이 아침 번잡한 주차 시간에 삼 사분 씩 차안에서 기다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처음 미국에 와서 디즈닐랜드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점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아이스크림 값을 동전 한 움큼으로 냈다. 캐시어는 그 돈은 받아들고는 이런 시간에 이런 돈을 낸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 당연할 텐데 짜증스러운 표정은 전혀 없고 하나하나 천천히 동전을 세 나갔다.

뒤에서 지켜보며 화나기보다는 차라리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서 같으면 어림없는 일일 것이다. 그처럼 바쁜 시간에 동전을 한움큼 갖다 내 놓을 만큼 철면피도 없을 테고, 또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욕 얻어 먹기 십상이고 그런 돈을 받았다고 해도 그처럼 느리게 한 닢 한 닢 세고 있는 점원도 절대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느리다고 쫒겨 날 것이 틀림없다. 돈을 낸 사람, 돈을 세고 있는 사람, 그리고 짜증 하나 없이 뒤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 모두가 내게는 이상하게만 보였다.

그 뒤로 미국에서 오래 살아가면서 그런 상황이 디즈닐랜드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한국 사람들 같으면 30분이면 해치울 일을 4시간씩이나 끄는 목수도 보았고, 창틀 하나 고치면서 한나절을 보내는 사람도 보았다. 일당백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한국사람 하나면 미국 사람 백 명은 아니더라도 열 명 정도가 하는 일은 혼자서도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이렇게 느린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나라가 이처럼 커질 수가 있는지. 그러나 그들의 느림이 여유 혹은 견고함으로 생각이 들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오래 전에 건축학을 전공한 조카가 한국에 가면 건물에 들어가기가 겁난다는 말을 했다. 도저히 그렇게 지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짓는다며...

나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하늘이 무너진다고 걱정하는 우화의 주인공의 말처럼 들린 게 사실이다. 그 튼튼한 건물이 무너지긴 왜 무너지겠는가.

그러나 그의 말이 있은 지 얼마 안되어 한강다리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주저앉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말이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말이 마치 예언처럼 느껴져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우리의 산업화는 '조급'이라는 거대한 병을 안고 성장해 왔다. 자고 일어나 보면 하늘을 찌를 듯 한 건물이 올라가 있다. 빠른 성장에 우리는 깊은 생각에 앞서 박수만 보냈다. 견실한 내면의 성장보다는 가시적 빠른 발전에 높은 점수를 매기는 풍토를 조성한 지도층의 몰아치는 허구에 우리는 우리 국민의 '은근'과 '끈기'라는 귀한 정신적 재산을 몰수당했던 것이다.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공부하는 것, 사업하고 건물 짓는 것 등등 처리하는 속도를 보면 미국보다는 한국이 훨씬 빠르다. 그러나 그 빠른 것이 과속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차량이 규정 속도보다 빠르게 달리면 화를 부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기계에도 무리가 가수면이 단축된다. 대부분 처리하는 데는 거기에 맞는 속도가 있고, 그 속도를 맞춰 줄 때 좀 더 안전하고 수명이 길고 편안하다.

멀리 볼 것 없이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빠르게 라는 말에 쇠뇌 되어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하려 애쓴다. 물건 사고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받으면 빨리 가게를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동전 지갑에 넣지 않고 그냥 가방에 던져 넣곤 했다. 영수증도 마찬가지다. 차곡차곡 정돈해서 지갑 안에 넣어 놓으면 좋으련만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그것 역시 가방에 쑤셔 넣고 나오곤 했다. 최근 들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동전이나 영수증 같은 것들을 받은 자리에서 차분히 챙겨 넣는다. 그렇게 하니까 시간이 훨씬 절약되고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다시 가방 정리를 할 필요가 거의 없고,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정이 되는 느낌이다. 제자리에 있으니까 필요할 때 찾는 것도 훨씬 용의 하다. 단지 영수증과 동전에만 국한 된 일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제 속도보다 빨리 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졸속, 우리 국민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단어인 것 같다.

 

-저서

시집『빈터』『이별 다음에』『너』『불꽃놀이』

장편소설『겨울 달이 허문 모래탑』『저울 위에 앉은 허수아비』
 

#김천황악신문 #전문필진 #강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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