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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유감(有感) (1)
  • 강창우 편집고문
  • 승인 2018.10.0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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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用 강창우 (다물上古史硏究會 회장)

올해(2018년) 10월 9일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 572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년)에 완성되어, 3년 동안의 실험 기간을 거쳐 세종 28년(1446년)에 반포되었다. 늦었지만 1940년대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의 제작원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1997년 국보 제70호로 지정, 10월에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록되었다.

훈민정음을 ‘크다’, ‘바르다’라는 뜻이 담긴 ‘한글’로 부르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주시경(周時經)선생으로부터라고 한다. 1894년 갑오개혁이후 ‘국어’, ‘국문’, ‘조선어’라는 명칭이 등장하였고,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이 되는 1926년 11월 4일 기념식을 거행하고, 이날을 ‘가갸날’로 삼았었다. 그 후 1927년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한글>이라는 잡지를 매달 발간하였고, 1928년 11월 11일 조선어연구회에서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쳐 부른 때부터 비로소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한글이 없는 대한민국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문맹률이 매우 높았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입학 전에 아버지께서 문종이에 ‘가갸 거겨...’를 붓글씨로 적어주어 하루에 20회 이상 읽으면서 외던 기억이 새롭고, 고교 시절에 훈민정음 서문을 읽고 배우면서, 세종대왕의 애민(愛民), 자주(自主)정신에 감동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글이 창제, 반포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572년이 지나는 동안, 한글은 언문(諺文), 언서(諺書), 반절(反切), 암클, 가갸글 등으로 비하되어 불리기도 하면서 사실 아픈 세월을 겪었다. 올해 한글날을 맞이하면서 필자는 박대종 소장(대종언어연구소)이 발표한 글(‘세종대왕, 자주·애민뿐 아니다.. 훈민정음 '부국정신' 최초규명’)을 읽으면서 느낌 점이 많았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으면서 한글에 얽힌 질곡의 세월들을 다시 정리할 기회를 가졌다.

한글이 창제, 반포되기까지 당시 신하들에게서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첫 위기는 한글 반포이후 60여 년이 채 안된 시기에 찾아왔다. 연산군 시절, 한글로 된, 그의 학정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들이 나돌자, ‘앞으로는 언문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며, 이미 배운 자도 쓰지 못하게 하며, 모든 언문을 아는 자를 한성의 오부(五部)로 하여금 적발하여 고하게 하되,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자는 이웃 사람을 아울러 죄주라.’(조선왕조실록 연산54권10년:1504년)고 하문하면서, 사실 공개적인 유통이 거의 불가능했던 때가 있었다. 이것은 정치권력(政權)에 의한 강압적인 통제였다.

그리고 두 번째의 위기는 중종 때, 역관이자 어문학자였던 최세진(崔世珍)이 한자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1527〉를 지으면서 한글 반포이후 최대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범례(凡例)’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그는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의 모음과 자음의 순서를 자신의 방식대로 다시 정하였고, 자음과 모음의 이름을 자신의 생각대로 한자로 짓고, 세종대왕이 창제한 초성 ㆁ과 ㆆ 및 쌍자음 등을 탈락시키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자세한 내용은 박대종 소장의 글을 참고). 현재 우리가 읽고 배우고 있는 한글 자모의 순서와 그 이름은 세종대왕이 정한 것이 아닌, 최세진이 정한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필자도 이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랐다. 박대종 소장은 이를 두고 ‘최세진의 행위는 훈민정음에 대한 왜곡이고, 창제자인 세종대왕에 대한 배신이며, 국문 교란 및 후대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하면서, ‘최세진이 지은 기역, 니은 등의 명칭들에는 혼(魂)과 의미(意味)가 없다. 훈민정음의 법칙을 무시, 왜곡하고 오직 편리성만을 추구한 것이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가르침과 훌륭한 정신’이 왜곡되고 세속화되었다고 논평하고 있다. 이는 한글의 실용성과 기능성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본래의 의미와 취지를 상실하게 된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일제에 의한 한글 탄압사건으로,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글학자들이 1921년부터 한글 보급운동을 시작하여 1931년에 조선어학회를 창설하였지만, 1938년 학교의 조선어 과목이 폐지되고 말았다. 이어 1943년 조선어학회회원 33명이 체포되고, 우리말사전 편찬 작업이 중단되었다. 이때 10여 년 동안 우리말 큰 사전의 제작을 위해 작업하고 완성한 400자 원고지 3만 2,000여 장과 어휘카드 20만 매를 압수당했다. 이것은 외세에 의한 한글 탄압사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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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황악신문 #한글날 #강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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