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옥상에 올라서면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쪽빛 가을 하늘이 눈 가득히 쏟아져 내렸다. 아! 가을인가... 그렇게도 수다스럽던 여름, 이글거리던 태양, 정말 징글맞도록 끈질겼던 여름도 이제 한 발 물러서는가. 입추(立秋)와 말복(末伏), 처서(處暑)를 지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듯, 밤낮으로 기승을 부리더니만... 이제 백로(白露)를 지나면서 슬그머니 가을에 자리를 양보하는가.

잠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담긴 옛사람들의 슬기를 들여다본다. 대기중의 수증기가 풀잎에 이슬처럼 맺힌다 하여 백로(白露)라 하였단다. 그리고 백로로부터 추분(秋分)까지의 시기를 5일씩 3등분하여,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하였다는 말씀도 있다. 옛 사람들이 자연을 보는 안목이 남다르다. 또한 백로 무렵이면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라고도 한다.

이달 말께 추분을 지나면 다음날이 한가위다. 그래서 주말마다 사람들은 고향으로 달리고, 벌초와 성묘객으로 산과 들이 북적이나보다. 그렇지만 국내외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에는 사실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 여름 더위로 과일과 식재료들의 값은 오르고, 집값은 뛰고, 직장을 찾는 청장년들의 발걸음은 지쳐가고 있다. 결혼도 늦어지고 인구마저 줄어간다는데... 나라 안이나 밖이나, 언제 어디서 무슨 사건이 예기치 않게 터질까 서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하루하루 벌이도 예년에 비해 영 시원찮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과연 희망을 물려줄 수 있을까. 미안하고 안쓰럽다.

다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쪽빛 하늘에 잠긴다.

모두들 고향을 향해 달려가건만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인가.

공기 중에 습기가 차츰 적어지고, 낮과 밤의 온도차가 커지면서 과일들은 익어간다. 이제 소매가 길어지고, 잠자리에서 홑이불을 끌어 덮는다. 잠 못 이루는 밤도 점점 길어진다.

‘쪽빛’이란 ‘하늘 닮은 푸른빛’이란다. 시인 박두진의 ‘하늘’에서 시(詩) 한 구절을 빌려 초가을을 노래한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초가을

따가운 햇볕에

목을 씻고

내가 하늘을 마신다.

목말라 자꾸 마신다.

마신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강창우 (김천황악신문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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