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만농(晩濃)살롱
남에게 보이지 말라, 범하는 자는 나의 자손이 아니다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7.08.09 15:27
  • 댓글 0

                                     이택용/경상북도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종보(宗甫), 호는 관아재(觀我齋)이다. 아버지는 순창군수를 지낸 조해(趙楷)이며, 이희조(李喜朝)의 문인이다. 그는 1713년(숙종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8년(숙종 44) 천거로 등용되어 연기군수, 적성현감(積城縣監), 의령군수, 안음현감, 배천군수을 거쳐 1756년(영조 32)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며, 다음해 돈녕부도정에 이르렀다. 그 후에 이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1735년(영조 11) 세조어진(世祖御眞) 모사에 불응하여 투옥된 바 있으며, 1748년(영조 24) 숙종어진 모사에도 감동(監董)으로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기술로 임금을 섬기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라 하여 사양했다. 그림에 대해서 우의성과 공리적 가치를 강조했으며, 인물과 산수 등에서 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조선 후기에 남종화의 정착과 풍속화의 전개에도 선구적 역할을 했다.

40세 이전까지는 화보풍을 주로 다루다가 40∼50대를 통해 사생과 풍속에 관심을 보였으며, 60대 이후에는 수묵위주의 표현적 세계와 시적인 정취에 몰두했다. 인왕산 아래에서 정선(鄭敾)과 이웃해 살면서 이병연(李秉淵)등과 어울려 시화를 논하며 각별히 지냈다. 조선시대 3원 3재(三園三齋)의 한사람으로 즉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 오원(吾園) 장승업, 겸재(謙齋) 정선, 현재(玄齋) 심사정, 관아재(觀我齋) 조영석을 말한다. 또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리어지던 인물이다.

그는 윤두서(尹斗緖)와 더불어 조선 후기 풍속화의 성행을 이끈 인물이다. 자손들이 그의 작품을 모아 엮은<사제첩(麝臍帖)>에는 바느질하는 여인, 새참을 먹는 농민들, 강아지와 병아리 등 주변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 장면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인물화뿐 아니라 산수와 영모(翎毛)에도 능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에는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과 같은 화보를 임모하거나 다소 변형시킨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대체로 윤두서의 경우처럼 조선 중기의 전통 화법을 계승하면서 남종화법을 가미한 화풍을 특징으로 한다. 말년의 작품은 더욱 문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러한 그의 회화세계는 이인상(李麟祥) 등에게 얼마간 영향을 미치는 등 조선 후기 문인화의 전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표작품으로는<강상조어도>ㆍ<방당인필어선도>ㆍ<장기도>ㆍ<설중방우도>등이 있고, 문집으로<관아재고>가 있다.

<사제첩>이란 첩은 종이 바탕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으며 크기는 39×29.6센티미터이다. 이첩은 생활주변의 일상적 풍경을 직접 사생한 15점을 모은 화첩으로 풍속화(風俗畵)ㆍ영모화ㆍ초충도(草蟲圖)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15점의 작품은 종이의 재질이나 크기가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초고(草稿), 그리다 만 것, 완성작 등이 뒤섞여 있으며 매우 뛰어난 수작이 있는가하면 다소 떨어지는 것도 보이는 등 작품의 수준도 일정치 않다. 표지는 왼쪽에 그가 사향노루의 배꼽이라는 뜻의 ‘사제(麝臍)’라는 표제를 달고, 오른쪽에 “남에게 보이지 말라, 범하는 자는 나의 자손이 아니다.(勿示人犯者非吾子孫)”라는 경고문을 적어 놓았다.

15점의 작품에는 그의 관서(款書)나 도장이 전혀 없어 작품편년에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첩의 첫 장에 쓰인 이병연의 발문에 의하면 그가 세조어진 중모사(重模事)로 파직된 1735년(영조 11) 이후에 그려서 간직하고 있었던 작품들을 아들들이 모아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진을 그릴 정도로 그림 실력을 높이 평가된 그는 자신은 선비인데 천한 그림재주로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명을 거부하다 결국 파직을 당했다.

그림 재주로 인해 욕을 당한 후회의 마음을 화첩제목에 담았을 것이다. 남에게 보이지 말라, 범하는 자는 나의 자손이 아니다. 조선의 선비로서 관아재의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에 정주학(程朱學)을 공부하고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는 필자는 머리가 숙여진다.

김천황악신문  webmaster@hwangaknews.com

<저작권자 © 김천황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천황악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율곡동 유턴구역 불법주차 날로 심각
율곡동 유턴구역 불법주차 날로 심각
성주참외 2년 연속 매출 5000억원 달성
성주참외 2년 연속 매출 5000억원 달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