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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화상이 세운 직지사...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 등 문화유산 보물창고김천의 문화재 20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3.12.1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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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금강문

#수 백살 나무와 흙길이 어우러진 직지사

김천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 직지사가 있다. 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 인근 5개 시.군의 54개 사찰을 말사로 두고 있다.

성보박물관과 경내에는 국보와 보물이 가득하다. 직지사의 자연 자체가 살아 있는 불국토다.

직지사 입구에는 여초가 쓴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 현판의 글씨가 우렁차다.

지금은 포장되어 옛 흙길이 사라짐은 아쉽다. 기념품 가게에서 직지사로 오르는 길은 여전히 맨발로 걷고 싶은 비포장 옛 모습 그대로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길을 걸어 오르면 직지사의 첫 문인 일주문을 만난다. 고려시대 건립되어 여러 차례 고쳤다. 오른쪽 기둥은 임진왜란 때 불탄 흔적이 남아 있다 왼쪽은 천년 된 싸리나무이고 오른쪽 기둥은 천년 된 칡이라고 전해진다.

일주문은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구분하는 문이다.

좀 더 오르면 대양문(大陽門)이 있고, 금강역사를 모신 금강문(金剛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모셔진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만세루를 넘어서면 완전한 해탈의 세계인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간다.

직지사 만세루

#직지사의 유래

김천의 진산인 해발1111m 황악산(黃岳山) 자락에 위치한 직지사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전해온다.

첫째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직지’에서 왔다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욕심과 번뇌를 버리면,그 마음이 곧 부처”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직지(直指)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다른 설은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선산에 있는 태조산에 도리사를 창건한 후 김천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만한 훌륭한 터가 있다.”고 하여 ‘곧을 직(直)’과 ‘손가락 지(指)’ 자를 따서 직지사라 했다는 설이 있다.

#사명대사 출가

직지사는 사명대사 유정이 16세인 명종14년(1559)에 출가한 사찰로 유명하다.

출가 설화에는 “직지사 주지 신묵(信默)스님의 꿈에 황룡이 나타나 천왕문 앞 은행나무를 감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가보았는데, 한 아이가 돌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대사는 불교를 지킬 큰 인물로 여겨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사명대사는 명종16년(1561) 18세에 승과에 장원급제하였으며,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다. 1575년 32세에 묘향산 보현사로 서산대사를 찾아가 선의 종지(宗旨)를 이어받았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여해 승군 약 5000여 명을 지휘해 평양성을 탈환했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으로 건너가 1605년 6월 전쟁포로로 잡혀간 3500여 명의 백성을 데리고 돌아오는 등 큰 공을 세웠다. 대사의 구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 11년(1787)에 사명각을 건립했다.

직지사 경내 노거수들

#왕건과 직지사와 인연

고려 태조 왕건은 927년 견훤이 경주를 급습하자 경애왕의 요청을 받고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경주로 향하지만 이미 늦어 대구 팔공산에 진을 친다. 견훤의 기습으로 군사 8000명을 잃고 대패한 왕건은 남은 군사 2000명과 함께 구미 인동현까지 후퇴했다.

이때 휘하 장수의 권유로 직지사 주지 능여조사를 만나게 되는데, 능여는 왕건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여 급히 퇴각하는 과정에서 신발도 신지 못한 군사들에게 짚신 2000켤레를 삼아 주는 등 왕건이 불리한 전세를 만회해 개경으로 귀환하는 도움을 주었다.

936년(태조 19)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300만평에 해당하는 전답과 임야 1천결을 직지사에 내려 은혜를 갚았다.

4대 광종 때까지 매년 전답 10결과 노비를 하사했다. 이후에도 고려 왕실에서는 왕조를 개창하는 데 기여한 사찰이라 하여 계속해서 직지사를 받들었으며, 이러한 왕실의 지원 속에 직지사는 고려 후기까지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당시 승려로서 직지사를 거치지 않은 국사가 없을 만큼 직지사는 고려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직지사의 문화재들

직지사에는 국보 제208호인 도리사 금동육각사리함을 비롯해 보물 16점, 7개의 암자가 있다.천왕문의 흙으로 만든 사천왕은 1665년에 조성됐다. 앉은 형상의 사천왕 중 가장 크다.

대웅전은 보물로 중층의 건물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서 단층 건물로 새로 지었다.대웅전 외벽 공포(包)에 조각된 48마리 용이 전각 내부의 삼세불화, 보단 등 보물을 사방에서 지키고 있다.

영조20년(1744)에 조성된 삼세불화는 조선후기 삼세불화를 대표할 수작(秀作)이다.

중앙에 항마촉지인을 한 사바세계 교주 석가모니불의 영산회(靈山會),동쪽에는 약합을 든 동방만월세계 교주 약사유리광불의 약사회(藥師會), 서쪽에는 설법인의 서방극락세계 교주 아미타불의 미타회(彌陀會)를 나타냈다

보물로 지정된 직지사 보단(寶壇)은 1651년 대웅전의 중건과 함께 제작된 목조 불단으로 높이는 146cm이며, 상대ㆍ중대ㆍ하대의 3단으로 이루어졌다. 투각과 화려한 채색으로 조선후기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에서 서쪽 벽 청룡을 탄 관세음보살은 장엄하다. 용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파도를 헤치며 중생을 구제하는 백의관음보살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렵다.

비로전 내부의 千佛

비로전(毘盧殿)은 현겁천불(現劫千佛)을 모신 천불전으로 17세기 중엽 경주 옥돌로 조성됐다. 비로전의 “천불 가운데 석가모니 탄생불이 맨 먼저 눈에 띄면 아들을 얻는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자식을 원하는 불자들이 많이 찾는다.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사리기는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桃李寺)에서 출토된 사리함으로, 1982년 국보 제208호로 지정됐다.문경 김룡사 동종은 조선 현종에서 숙종 대에 유명한 주종장(鑄鐘匠) 사인(思印)이 1670년(현종 11)에 만든 동종으로 2001년 보물로 지정됐다.

‘백지금니금강’ 과 ‘보문발원’은 고려 공민왕 때인 1371년 묘지(妙智)와 묘수(妙殊) 두 비구니의 시주로 제작된 사경(寫經)으로 2000년 보물 제1303호로 지정됐다.

1405년(태종 5) 안심사(安心寺)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 판본은 귀중한 경전으로 ‘법화경’ 28품은 수세기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2001년 보물 제1306호로 지정됐다.

정종태실 중동석

#정종의 태실 수호 사찰

직지사 비로전을 지나 우측으로 돌다리를 지나 잔디밭에 아담한 돌비석이 하나 있다. 정종 태실을 일제가 파헤칠 때 무너진 파편을 복구해 놓은 비석이다.

직지사는 예부터 사두혈(蛇頭穴)의 명당 터로 알려져 왔는데, 조선 2대 왕인 정종의 태실이 1399년(정종 1) 대웅전 뒤 북봉에 안치된 것은 풍수사상에 기인했다. 북봉은 황악산의 산줄기가 뱀의 허리처럼 길게 내려 뻗다가 뱀이 머리를 치든 것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라 기운이 센 사두혈 길지로 알려졌다.

유교가 국시인 조선시대에도 직지사는 정종의 어태(御胎)를 관리하는 태실 수호 사찰로 지정되어 사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작은 현에 불과한 김산이 김산군으로 승격한 것도 정종 태실의 영향이 컷다.

왕실과 직지사의 보호를 받으며 보존되어 오던 태실은 1928년 태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조선총독부의 의해 파헤쳐졌다. 일제가 태항아리를 꺼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이전하고 현재 태봉 정상에는 석물 여러 기가 흩어져 방치되어 있다. 태실의 중앙의 중동석은 극락전 앞 잔디밭에 옮겨졌고, 여덟 개의 울타리 중 두 개는 직지성보박물관 앞에 있다.

도천사지 동.서탑

#세 개의 삼층석탑...1금당 3탑으로 추정

직지사 대웅전 앞에는 쌍둥이처럼 닮은 두 개의 탑이 서 있다. 문경시 산북면 도천사지(道川寺址)터에 산재해 있던 3기의 석탑을 1974년에 직지사로 옮겨와 세운 것이다.

1기는 비로전 앞에 세워져 았다. 탑의 양식 수법은 3기 모두 동일해 1금당 3탑 형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경 도천사지 삼층석탑의 정확한 건립 연대와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통일 신라 시대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도천사를 창건할 때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으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5.3m이고 상륜부는 소실됐다.

규모가 크며 조형미를 이루고 있다. 기단부는 원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지대석은 넓적하게 짜여져 있으며, 그 위에 여러 장의 판석으로 조성한 높은 2단의 각형 괴임을 두어 기단을 받치고 있다.

직지사 범종각

# 단풍나무길,범종각,꽃무릇

대웅전에서 사명각을 지나 비로전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단풍나무를 비롯한 가지각색의 단풍잎 아래 호젓하게 가을을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대웅전 앞 언덕에는 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의 건물의 범종각이 있다.내부에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 등의 사물(四物)이 있다.

매년 9월이면 21만본의 꽃무릇이 직지사 경내를 장식하는 꽃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직지사에는 14년차 친절하고 다식(多識)한 문화해설사가 있다. 운 좋게 그녀를 만나면 책에서 볼 수 없는 용구자설(龍九子說) 등 숨겨진 직지사의 많은 이야기를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직지사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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