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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 비로자나불...“연화부수형 명당에서 삼매에 들어 연꽃을 바라보네 ”김천의 문화재 [17]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3.10.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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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수도암을 찾아가는 길은 역사와 자연을 즐기는 여행이다. 대덕에서 가파른 고개를 넘으면 벚나무 터널이 반기는 증산이다.

증산면 사무소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우측에 청암사와 수도암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무흘구곡 7곡 만월담

#만월담.와룡암.용추폭포

수도암 가는 길에 무흘구곡 중 7곡인 만월담을 가장 만나게 된다. 만월담(滿月潭)은 달빛이 가득 찬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의미다.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한 호젓한 계곡에는 아지매 몇 사람이 절경을 구경하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무흘구곡 중 8곡인 와룡암이 나온다. 바위의 형상이 누운 한 마리의 용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한강 정구는 시 한 수를 남겼다.

여덟 굽이 오르니 시야 한층 트이는데/ 멀리 갈 듯 흐르는 물 다시금 돌아든다/ 안개구름 꽃과 새들 저마다 낙을 누려/ 노는 사람 오든 말든 나 몰라라 하누나(八曲披襟眼益開 川流如去復如廻 煙雲花鳥渾成趣 不管遊人來不來)

한참 더 올라가면 무흘구곡의 마지막 9곡인 용추폭포가 반긴다. 출렁다리가 놓여져 있고 너무나 깨끗한 화장실도 있다. 시원한 폭포를 뒤로하고 좀 더 오르면 국립 김천치유의 숲이 있다. 52ha에 자작나무,잣나무,낙엽송,전나무 등 수종이 다양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자작나무 숲이다.

근처에 있는 8.2km 인현왕후길도 걷기에 좋다.

한강 무흘강도지

#한강무흘강도지(寒岡武屹講道址)

수도암으로 올라가다 무흘구곡 7곡을 지나면 우측에 한강 무흘강도지란 표지가 있다. 맑은 개울 건너 산속 우측에 건물이 남아 있다.

‘한강 무흘강도지’는 무흘구곡(武屹九曲) 중 제7곡 만월담(滿月潭)과 제8곡 와룡암(臥龍巖) 사이에 있는 무흘정사의 옛 터다.

무흘정사는 한강 정구가 무흘정사는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처음 건립해 강학을 하던 곳이다. 1604년 건립당시 초가3간이었다. 정구가 죽은 후 무흘정사는 위치를 옮겨 36간의 무흘정사와 3동의 장서각으로 규모가 커졌다.

무흘강도지는 지난 2011년 12월 22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됐다.

수도암의 역사를 증명하는 전나무 등 노거수들

#수도암

산속 마을 수도리를 지나 좁은 산길을 7~8분 차로 오르면 오래된 전나무들이 반긴다.聖俗(성속)을 가르는 경계이자 관문이자 이곳이 바로 절집임을 나타낸다.

수도암은 859년 (신라 헌안왕 3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농민군에 으해 전소되었다가 1900년 중수됐다. 김천의 고지대인 수도산 1080m에 자리 잡고 있다.

수도암에서 바라본 가야산 연화봉

사자 세 마리가 버티고 선 돌계단을 올라 저 멀리 가야산을 바라보면 연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가야산이 물위에 뜬 연꽃처럼 보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명당이라고 전해진다.

이 연꽃이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 황련(黃連), 여름엔 청련(靑蓮),가을엔 홍련(紅蓮),겨울에는 눈이 덮여 백련(白蓮)이 된다.

이 절에서 조계종 11.12대 종정을 지낸 대종사 법전스님이 1969년부터 15년간 수도암에서 가람을 중수하고 선원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쳤다.

김생의 유일한 현존 글씨가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도암 도선국사비

#수도암비(도선국사비)

수도암 대적광전 앞에는 도선국사비라고 글이 새겨진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은 높이 177cm,너비 60-61cm,두께 42-44cm다.

최근 학자들은 비석에 신라 명필 김생이 원화삼년(元和三年 808) 쓴 글씨를 새겼다는 판독 결과를 내놨다.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수도암비가 현존하는 유일한 김생 친필이자 태자사비 원본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육안으로는 마모가 심해 보이지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창주도선국사비라는 큰 글자만 보인다. 1200년 세월의 풍파를 뛰어 넘어 우리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롭다.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 (보물 307호)

 

#석조비로자나불 (보물 307호)

수도암은 동학농민 전쟁때 방화로 전소된 후 1900년 포옹화상에 의해 중건됐다. 6.25때 북한군 패잔병들의 근거지로 이용되다 일부 전각이 훼손됐다. 1969년 주지 법전 스님이 본당인 대적광전,약광전,나한전,관음전을 중수하고 1975년 선원을 열었다.

대적광전 내부에 석조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신라 하대 9세기경 불상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로자나불상은 불국사 국보 26호인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인데 왼손과 오른손을 바꿔 이를 바로잡아 다시 만든 것이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이라고 전해진다.

조성시기는 여러 설이 있지만 화엄종 순응조사(順應祖師)가 해인사를 창건할 때 조성했다고 한다.

우담 성신한[산중일기]의 수도암 답사에서 “절 들어가는 입구에 석불이 앉았는데 소박하고 진실히 절을 지키고 있으며 또한 교묘하기만 하다. 이보다 더 큰 석불을 보지 못했고 그 모습도 엄연하고 비범하다. 대석에 새긴 조각도 역시 기묘하기만 하다”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수도암 입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높이는 2.5미터,무릎 폭 2.1미터,어깨 폭이 1.4미터로 규모자체가 압도적이다.이 거대한 불상을 어떻게 전각에 앉혔는지도 불가사의하다. 불상을 먼저 앉히고 목조건물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수도암의 비로자나불은 영험하기로 유명하다.

대적광전 비로자나불께 삼배(三拜) 올리고,뜨락으로 나서면 저 멀리 가야산 연꽃이 붉게 물들고 겹겹이 쌓인 산속 풍경이 바로 비로자나불의 위신력으로 보살들이 說한 화엄세계(華嚴世界)인 듯 하다.

 

#김천의 문화재 #수도암 비로자나불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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