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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충신 송월당 이사경의 서당터"... 아포읍 예리 산천재(山泉齋)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 (11)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3.10.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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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경의 서당터로 전해오는 아포 예리 서당마의 재실/황악신문

“아포 마을 이름을 만든 이사경과 다섯 아들의 행적에 대한 연구 필요”

김천에 유일한 읍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아포다. 아포란 지명은 아포의 지형이 어금니(牙)처럼 생기고 감천을 끼고 있어 물가 포(浦동)를 썻다고 전한다.

동쪽으로 구미시, 서쪽으로 개령면, 남쪽으로 남면, 북쪽으로 감문면(甘文面)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아포에는 삼한시대 아포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역사서에 감문과 아포국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아포가 배반을 해서 대군 30명을 일으켜 밤에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불어나 되돌아왔다(牙浦叛大發三十夜渡甘川水見漲而退)

김천시 아포읍 제석봉 아래 제석리 일대에 여러기의 고분과 성곽의 흔적이 발견되고, 왕비봉(王妃峰)·관리봉(官吏峰)·삼태봉(三胎峰) 등과 같은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소국이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감천을 경계로 북쪽에 감문국,건너편인 남쪽에 아포국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김천을 가로지르는 감천의 폭은 중류로 내려오면서 아포와 감문국 사이는 강폭이 좁은 곳은 10~20m에 불과하다. 물이 적으면 걸어서 건너기에 충분하다.

역사서 기록을 보면 아포국은 감문국에 순응하지 않는 나라였던 것 같다.

감문국은 감천을 유역으로 하는 여러 소국의 맹주였는데 배반할 반(叛)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주종관계를 유지하던 아포국이 감문국에 반기를 들어서 정벌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정권때 서하(西河)임춘이 대신리 함골에 은거하며 국순전과 공방전을 집필해 고대 문학의 발상지가 되었다.

임춘과 친하게 지낸 이인로가 함골에 은거한 임춘을 찾아 술을 권하자 감사로 써준 시가 전한다.

그대 날 찾아 산을 나서니

길에 철창 끄는 쇳소리

많은 술 한골에 내려

한 잔 술이 험한 산길 바꾸네

오래도록 좋은 일 없이 양웅처럼 살렸더니

뜻밖에 글을 논할 이생을 만났구려

오래도록 시골에 묻혀 지내렸는데

어느 누가 도중에 도연명을 찾는가

이사경의 산천재 터 건물

이후 시간이 흘러 고려가 망하자 한 선비가 다섯 아들을 거느리고 아포로 낙향했다. 그는 고려말 서북면병마부사를 지낸 송월당(送月堂) 이사경(李思敬)이었다.

그는 아포읍 깊은 산골 마을에 서당을 열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인재를 키우기 시작했다. 고려가 망하자 공민왕의 화상을 벽에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쳐다보며 不事二君의 뜻을 접지 않았다.

이사경이 서당을 차렸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인재들이 몰려들어 300호에 달하는 집들이 들어설 정도로 마을은 커지고 아포는 학문과 예의 고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요즘으로 치면 명문 사립대학이 하나 생긴 것이다.

마을 이름도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붙였다.

송월당의 후손들이 선생의 공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1781년(정조5년) 일신서원(一新書院)을 세웠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허물어져 사라졌다.

김천시에서 조사한 비지정문화재 목록에 아포읍 예리에 산천재(山泉齋)라는 이름이 있었다. 들어보지 못한 건물이라 예리를 찾았다.

초행길에 조금 헤매긴 했지만 산천재 터를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았다.

아포 서당마의 300살 왕버들

동네에서 길을 잃은 덕에 300살이 다 된 왕버들 한 그루를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서당마라는 마을의 역사를 증명하는 이 나무가 없었다면 좀 허전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만 해도 나무 밑에는 약병들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깔끔히 정리되고 울타리까지 쳐진걸 보니 흐뭇하다.

아포 서당마의 300살 왕버들

산천재 터는 대나무 밭에 남아 있지만 건물은 사라지고 제실(祭室)로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다.

몇 번 찾아가도 철문은 자물통으로 잠겨있고, 늙고 비쩍 마른 향나무 한 그루만이 오는 이를 맞는다.

경남 산청에 있는 남명 조식이 세운 산천재

산천재는 남명 조식이 61세에 지어  경남 산청에서 후학을 양성한 서당 이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남명 조식의 제자이거나 그와 관련이 있는 선비의 유적이려니 생각했다. 산천재라는 이름이 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 자리는 송월당 이사경의 집터라는 기록이 있었다. 이사경의 후손들이 세운 일신서원의 터는 대나무 밭으로 변했다는 기사도 있다.

동네 주민에게 들으니 예전에 서당이 있어서 서당마라는 마을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걸 보니 이사경과 연관이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남명 조식이 세운 산천재(山天齋)는 지리산을 너무나 사랑한 남명이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명당에 세운 서당인데, 아포의 산천재도 멀리 보이는 국사봉과 제석봉이 간단치는 않다.

이사경 사당터 앞  향나무

뒤돌아 나오는 길에 잠시 뒤돌아보니 산천재의 배산(背山)도 한 마리의 꿈틀거리는 짐승의 형상인데 다시 살펴봐야 할 듯하다.

건너편의 못 이름도 서당못이다.

이 마을과 못의 이름을 봐도 이사경에 세운 서당과는 깊은 관련이 있음은 확실하다.

남명 조식의 산천재(山天齋)는 주역의 괘인 산천대축(山川大畜)에서 따왔는데 이사경의 산천재(山泉齋)는 김천의 성스러운 강 감천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황악신문 #아포 산천재 #이사경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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