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구(김천시 증산면 총무팀장)/황악신문

-이영구(김천시 공무원)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첫번째 인물로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를 꼽는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과 투쟁과 더불어 자서전인‘백범일지’는 꾸밈없는 표현과 정확한 사건 묘사,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민족지도자로서의 인간적인 고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백범일지’에 의하면 청년 김창수(김구, 개명전 이름)는 을미사변 후 치하포에서 일본인 스치다를 살해하고 투옥된 후 탈옥해 강화를 거쳐 무주와 김천의 심산유곡인 부항 달이실에서의 산중생활은 ‘백범일지’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 중 하나다.

인천감옥에서 탈옥한지 근 2년이 되던 1900년 2월, 청년 김창수는 유완무로 부터 편지 한통과 노자를 받고, 충청도 연산의 이천경과 만났다. 이천경은 한 달 후 편지를 주면서 전북 무주의 이시발에게 보냈다. 이시발도 편지 한 장을 주면서 경상도 김천의 성태영(成泰英)에게 김창수를 보낸다.

성태영의 집(부항면 월곡리)에서 탈옥 청년 김창수는 한 달여 기간을 머물며‘성태영과 함께 산에 올라 나물 캐고 물가에서 고기 구경을 하며 고금의 역사를 토론하면서 생활했다.

그 해 8월 어느 날, 유완무가 성태영의 집에 와서 3자가 회동해 청년 김창수의 이름을 김구(金龜)로 바꾸고, 호를 연하(蓮下), 자를 연상(蓮上로)으로 고쳐주었다. 개명 이유는 치하포 사건과 인천감옥 탈옥 등으로 범인으로 등재되어 앞으로 새로운 비밀활동을 하는데 사용하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는 김구가 ‘난세인 풍진세상에서 연꽃 밑을 잠행하지만 언젠가는 연꽃 위에 올라오는 거북이 되기를 염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말한다.

청년 김창수는 이날부터 김구(金龜)-연하(蓮下)로 호명되다가 1914년 105인 사건때 인천 옥중에서 이름을 구(九), 호를 백범(白凡)으로 바꾸게 된다.

탈옥 청년 김창수를 추적하고 동지로 훈련시키는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은 무주의 유완무이지만 김구가 최종적으로 오래 머문 곳은 김천의 성태영 집이었다. 성태영의 족보에 의하면 그의 일생을 천성활달(天性豁達), 선서유문명(善書有文名), 항일옥고(抗日獄苦), 백범교우(白凡交友) 라 하여 항일운동 및 김구와의 인연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성태영은 1900년 탈옥수 김창수를 만날 당시 이미 유완무와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후원자가 되었다. 1905년 전후 유완무가 북간도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개척할 때 자금 1만석을 쾌척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심산 ‘김창숙 문존’에 의하면 성태영은 구한말 양심적인 지주(地主)로서 젊은 인재를 보살피며 애국적인 사업에 여러 가지로 참여 했던 인물로 1919년 경성의 3.1운동 준비과정을 편지로 심산에게 알렸던 사람이 바로 성태영 이었다. 그러나 심산은 어머니 병환으로 바로 떠나지 못하고 서울에 늦게 도착해 3.1 조선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기회를 놓쳐 유림으로서 부끄러움을 씻기 위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고자 발의했다.

이에 성태영은 심산의 파리장서운동을 기획하고 처음부터 관여해 진행과정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심산은 성태영을 늘 벽서장(碧棲丈)이라고 호칭했다. 장(丈)은 성태영이 12살 연상이라 붙인 것이니 심산은 성태영의 호를 벽서(碧棲)라 부른 것이다

이후 성태영의 흔적으로 백범 김구의 상해 임정시절 길림성에서 있던 성태영과 서신을 교환하였으며, 길림에서 한인들의 흥업계(興業契)를 발기하는 등 한인촌 건설과 남만주 반석현에서 한족노동당 중앙의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부항 달이실 마을 성태영 집터(김구선생 은거지)/황악신문

구한말 대지주로서 ‘김구 지사 만들기’와 ‘파리장서운동의 중추적인 역할’, 그리고 ‘간도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일주(一舟) 성태영의 이야기는 변변한 사료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오직‘백범일지’와 ‘김창숙 문존’에만 의존하여 전해지고 있다. 김천 성태영의 집은 현재는 없어졌고, 후손들도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으며, 그의 집터에 들어선 새로운 집의 입구에는 <백범 김구선생 은거지>라는 표지석만이 서 있다

오늘날 친일파 후손들은 선대가 누렸던 부귀영화의 대물림으로 안락한 지위를 누리는데 비해 독립운동가와 자손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도진순 ≪백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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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 취재국장  apata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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