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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리(新安里) 석불입상(石佛立像)... 흙속에 묻혀 천년을 잠들었던 목 없는 슬픈 부처”(6)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3.06.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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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 신안리 석불입상

속세의 소마구(牛舍)를 지나면 신성한 佛身을 만날 수 있어

佛頭를 찾아 끼우는 날 김천에 찬란히 빛나는 幸運이 오지 않을까!

조마면 신안리에 목이 없는 거대한 石佛이 있다고 들었다. 그는 내게 불상의 높이가 7m라고 했다. 김천에 살면서 처음 듣는 얘기다. 흥분된 마음에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조마로 향했다.

의외로 표지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신안리가 끝날 즈음 있었다. 1km에 있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찾았다고 좋아했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입구를 찾지 못해 돌고 돌아 다시 큰 牛舍를 가로질러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드디어 전각이 보인다. 찾던 석불입상이다.

후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2014년에 외지인도 똑 같은 행로를 거친 기록이 있었다. 이 불상을 찾아온 외지인이 김천시에 안내판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천시의 협조를 받아  지금은 새로운 안내판이 입구에 서 있어 헤매지 않고 부처를 만날 수 있다.

신안리 석불입상

이곳은 예전에 “탑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거대한 불상은 농부가 밭을 일구다 발견되었고, 하나의 돌에 광배(光背)와 불상을 조각한 형태로 불상 목 부분에 큰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머리 부분을 따로 조각해 조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왼손은 가슴에 올리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물병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제작 연대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로 감로수 병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로 학계는 보고 있다.

불상의 높이는 2m70cm이며, 대좌의 높이는 37cm이다. 1996년에 불상각(佛像閣)을 신축했다.

전각을 세운 것까지는 좋은데 갈라진 송판과 불상을 올려 놓은 좌대의 질과 시멘트로 접착해 보기에 아쉽다.

귀한 보물 앞은 牛舍요. 주차장 하나 없이 초라하다. 설명 간판은 실제 불상과 좌우의 손이 바뀌어 있다. 거창의 고려석조관음입상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地勢를 둘러보았다. 나지막한 북현무가 바람을 감싸고 있다. 藏風이 된 것이다. 앞을 보니 전주작과 안산이 괜찮다. 사람이 서서 보이진 않지만 불상의 눈으로 보면 가까운 곳에 감천이 흘러가니 장풍과 得水를 다 얻은 명당인 것이다. 산의 형태로 봐서는 조금 더 위에 절터가 자리했으리라.

찬찬히 불상을 살펴보았다. 목이 없다. 목을 끼울 수 있게 만들어진 불상인데 기록들을 찾아보니 두 번이나 목이 사라졌다고 한다.

佛頭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외형과 형식에는 돈을 쏟아 붓는 불교계는 이 귀중한 불두를 찾아볼 생각은 한번이라도 해 봤을까?

쇠똥 냄새를 맡으며 한참동안 풍경을 감상하고 돌부처를 만지며 천년이 넘은 그의 음성과 새들의 울음소리, 나직이 속삭이는 바람소리를 즐겼다.

몇 년전에는 입구에 핀 아름다운 복사꽃들이 많았는데 오늘 가보니 전각 앞에 죽은 두더지와 흔들리는 전각의 장식들!

불두가 꽂혔던 자리에는 새똥들로 얼룩덜룩하다.

다른 것이 힘들다면 물 한차 가지고 와서 고압분사기로 오물들을 세척이라도 한 번 시켜드리면 좋으련만...

전남 화순에 가면 “千佛千塔”으로 유명한 운주사가 있다. 그곳에 거대한 臥佛이 있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우리나라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신안리 석불입상의 佛頭를 찾아 끼우는 날 김천이 동방의 찬란히 빛나는 도시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신안리 석불입상

#storytelling

1000년을 버티던 신라라는 古木은 밑둥이 썩어 곧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각지에서는 세력을 키운 자들이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를 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가슴 졸이던 민초들의 삶도 風前燈火로 몰리기 시작했다. 개령군과 조마의 사람들은 탑골에 모여 자신들을 지켜줄 부처를 조각하기로 결정했다.

집집마다 곡식을 내어 보시하고 부처를 새길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을 찾아 옮겨와 최고의 장인을 구해 돌을 쪼기 시작했다.

광배(光背)를 새기고 부처의 두상(머리)은 다른 돌로 만들어 끼웠다.

여러 차례의 피바람 부는 싸움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나라의 이름은 고려로 바뀌었다.

다시 천년이 지나 절은 파괴되고 돌부처는 흙속에 묻혀 다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지냈다.

왜놈들이 나라를 빼았고 불상을 반출하려다 몇 번을 실패하고, 해방 이후 돈에 욕심난 이들이 부처의 頭像만 빼가고 몸통은 버려져 다시 땅속에 묻혀 풋잠을 자다 1980년 농부에 괭이질에 걸려 다시 속세로 나왔다.

사유지에 전각이 들어서고 그 주인은 卒한지 오래다. 새로 땅을 산 주인은 땅을 사든지 아니면 임대료라도 내라고 한다. 얘기가 되지 않으면 곧 진입로를 막을 태세다.

유명사찰에는 수 백억을 들여 번쩍이는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변방의 문화재는 제대로 된 안내판과 진입로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신안리 석불입상

목 없는 불상은 오늘도 되뇌인다.

머리를 잃어 버린지 이미 오래...

아무도 관심조차 없네.

누가 나의 머리를 찾아 주리오.

머리가 돌아와 제자리를 찾는 날 금릉의 하늘에는 꽃비가 내리리라!

 

#황악신문 #신안리 석불입상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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