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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입구 400살 향천리 소나무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두 번째 여행 [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3]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2.03.27 16:15
  • 댓글 1
향천리 400살 소나무

김천 직지사( 直指寺) 입구 향천리에 가면 평생 한 번 보지 못하면 후회할 만큼 수려한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국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최고의 소나무다.

사람의 만남도 인연이지만 나무와의 만남도 알 수 없는 힘의 이끌림이 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이번 삶에서 한 번은 만나야 하는 하늘의 뜻인지도 모를 그런 조우(遭遇)말이다.

향천리 400살 소나무

김천에서 5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직지사 입구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드나들면서도 이 나무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살았다.

처음엔 이 나무를 만나러 간 길이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인 김영석이 1922년 55세 되던 해 직지사 길목의 옹기골 (지금의 향천리 합천)동네인 지대골 양지마을로 대구에서 이주해 출가한 맏딸 김명례, 사위 김기출과 함께 옹기전을 차리고 아내인 서중하(마르띠나)가 41세에 지대골에서 임신해 대구 남산동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낳았다는 기록을 근거로 옹기전의 흔적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향천리 400살 소나무

기날못을 지나 향천3리에 갔다가 주민들에게 옹기전을 물었으나 잘 몰라 다시 돌아 직지사 방향으로 향하다 대항면 사무소 뒤쪽에 차를 세웠다.

오래되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낡은 이발관 주인에게 옹기골을 확인 후 차를 돌리다 우연히 소나무 안내판을 보게 되었다.

큰길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니 언덕에 우뚝 선 소나무를 보고 숨이 멎을 뻔 했다.

향천리 400살 소나무

반백년 가까이 김천에서 살아왔지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다는 것을 여지껏 모르고 살았다니,,,,

소나무는 曲,形,皮를 보는데 아름다운 외피는 무엇이라 형언하기 어려웠다.

땅 가까이에서 둘로 갈라진 줄기는 11미터에 이르고 넓게 펴진 가지는 15미터다.

인간이라면 엄두도 못낼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너무나 싱싱하다.

우람한 몸체와 촘촘한 비늘로 덮힌 줄기, 자연스러운 가지들!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미인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향천리 400살 소나무

야트막한 언덕위에서 마을을 내려다 본지 어언 400여년! 이 나무는 직지사를 오르내리는 수 많은 사람들과 미래 한국의 천주교를 이끌어갈 김수환 추기경의 잉태를 다 지켜봤을 것이다.

人傑은 地靈이라는데 김천을 빛낸 세 사람의 시인을 비롯한 문인들과 천주교의 巨木인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에 황악산과 이 신령한 나무의 기운이 깃들었다고 하면 혹자들은 불경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리 믿고 싶다.

또 소나무는 신작로가 생기고 철로가 놓이고, 철마가 달리는 시대의 변천사를 아주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향천리 400살 소나무

조선시대 이 땅은 황간군 황남면에 속하다 1906년에야 김천땅이 되었으니 이 아름다운 소마무가 김천의 나무가 아닐 뻔 했다.

향천리 지천마을은 1760년대 해주 정씨 선비가 살기 시작해 마을이 형성됐고, 소나무의 별칭인 직지문인송의 안내판에도 옛날에 해주 정씨가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대항면사무소 일대는 직지천과 방하천이 합류한다고 해서 合川이라 한다. 1930년대 처음 보통학교가 설립된 마을이라 학교동이라고도 한다.

무너진 옹기가마의 흔적

이 마을에는 조선시대부터 옹기를 굽는 옹기굴이 있었는데 6.25전까지도 송씨성을 가진 형제가 옹기를 구워팔면서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 옹기전은 무너져 폐허로 변했지만 여전히 그 흔적은 확인 할 수 있었다.

1914년 지천,합천,묘내,방하치를 합해 아름다운 마을이란 의미로 향기香자를 써서 향천리로 고쳤다.

황녀의 마을

인근에 소설가 유주현이 1975년 발간한 역사소설 ‘皇女’의 배경이 된 방아치 마을이 있다. 고종황제의 숨겨진 옹주 이문용이 엄비의 질투에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유모와 황악산 기슭 방앗골에 숨어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내용인데 지금은 “황녀의 마을”이 조성되어 서울에서 은퇴해 낙향한 화가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향천리 400살 소나무

향천리 소나무는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당시 나이가 338세이니 이후 30년을 더하면 370세 정도 되었고, 실제 나이는 알 수 없다.

나무는 스스로 생겨나거나 심기는 쉬워도 수 백년의 노거수로 성장하기는 힘들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는 많은 地氣와 사람들의 정성을 받으며 더욱 神靈해진다.

이 소나무에도 아들을 낳기를 희망하는 여인들과 장원급제를 비는 발길이 끊임이 없었다.

원래 이 소나무는 향천리 주민들이 정월에 날을 잡아 동제를 지내던 당산 나무로 알려져 있다. 소원을 잘 들어주어 외지에서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주민들을 금줄을 항시 둘러 신성하게 모시고 관리해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위에 神社가 있어 일제의 감시에 목숨을 걸고 치성을 드리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이 소나무 인근에서 최근 유명한 시인과 소설가 등 문인이 세 사람이나 탄생해 文人松이라 불리기도 한다.

소나무의 나이가 400살에 달하고 이름을 날린 유명 문인들의 탄생은 채 100여년도 되지 않았는데 문인송이라 부르고 그렇게 굳어져 가는 것이 맞는지는 조금의 의문이 있다.

인위적인 이름의 문인송이 아니라 향천리 소나무란 이름으로 살아가도 좋을 것 같다.

향천리 400살 소나무

문인송이던 神木이든 관상용이든 400여년의 기나긴 세월을 이렇게 아름답게 홀로 서 있는 소나무!

混濁한 세상속에  獨也靑靑 그대가 부럽다.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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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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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윤 2022-03-30 16:29:29

    밑에서보니 줄기가 거북등처럼 선명하고, 조금 멀리서 찍은 사진의 자태가 괜찮네요~
    좋은 작품 잘보고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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