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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의 사상이 꽃핀 불교聖地 갈항마을 입구...鳳凰의 알을 품은 400살 느티나무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두 번째 여행 [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2]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2.03.1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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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항마을 400살 느티나무(2021.가을)

지난해 가을 오봉지의 반짝이는 물빛과 흩날리는 낙엽을 뒤로하고 갈항(葛項)마을을 찾은적이 있다.

갈항은 금오산 서쪽에 자리 잡은 마을로 갈항사(葛項寺)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변에 칡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금오산 뒤쪽의 깍아지른 절벽과 수려한 산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을이 깊어가는 논에서는 벼 수확이 한창이었다.

갈항사로 들어가기 전 마을 입구에 거대한 400살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금오산 노적봉

나무 뒤로는 마을이 있고, 마을 뒷편에는 우람한 금오산 노적봉(露積峰)이 보인다. 아마도 부자가 많이 나왔을 것이다.

느티나무는 큰 옹이가 있는데 마치 봉황의 알을 안고 있는 듯하다. 갈항사를 가면서 몇 번이나 지나쳤을터인데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터라  별 기억이 없다.

가을이 물들어가는 느티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올해 2월 다시 느티나무를 찾아 나섰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오봉지에 들어서니, 계절은 봄이지만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보니 아직 호수의 절반이 얼음으로 덮여 있고, 얼음이 녹는 소리가 쩍쩍 들렸다. 겨울이 봄을 맞는 소리였다.

조금씩 얼음보다 물이 더 많아지고 물빛이 맑아질 것이다.

오봉지의 가을

오봉지가 끝나고 갈항마을로 들어섰다.

느티님은 앙상하면서도 기품있는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裸身에 가을의 화려함은 없지만 마치 여인이 아이를 잉태한 순수한 모습 그대로였다.

갈항마을 400살 느티나무

오래된 느티나무의 옹이는 다양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나무는 마치 큰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동네 노인장에게 들으니 이 나무를 누가 심었는지는 알 수 없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배를 만들려고 베어가려고 했으나 해방이 되어 실패했다고 한다.

잎이 무성해지면  원앙이 날아와 새끼를 까고 살다 간다는 얘기도 들었다.

갈항마을은 김씨,이씨,손씨가 400년 이상 오손도손 살던 마을이다.

갈항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의 이름이 유래한 갈항사 터(葛項寺)가 남아 있다.

갈항마을  400살 느티나무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현재의 김천과 구미를 경계짓는 거룩한 금오산 서쪽 노적봉 밑 칡넝쿨 우거진 산기슭에 한 승려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승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말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학의 3대조인 법장에게서 배우고 의상에게 전하는 편지를 가지고 온 유학파 고급 두뇌의 소유자다.

신라로 귀국한 후 의상대사에 문하에 들어갔지만 그는 푸대접을 받았다. 요즘말로 비주류였던 것이다.

의상의 10대 제자에도 끼지 못하고 참담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한탄하던 승전은 수도 서라벌을 떠나 시골 변두리인 개령군(현재의 김천시)에 절을 짓고 돌을 깍아 사람의 형상을 만든 해골을 앞에 두고 설법을 시작했다.

갈항마을 느티나무

고려 후기까지 돌 해골 80개가 갈항사 주지에게 전해져 왔다. 돌 해골을 제자로 삼아 화엄경을 강의한 갈항사!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의 요지를 배워왔으나 주류에서 소외되었던 한 남자가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금오산 서쪽 기슭에 칡넝쿨로 얼기설기 지어 만든 절이 갈항사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화엄의 교리를 배워 귀국했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시름과 울분을 달래며 돌을 중생으로 삼아 설법하던 승전과 갈항사의 흔적은 지금 풀 속에 잠들어 있다.

지난 2000년 갈항사에서 중창불사를 위해 땅파기 공사를 하던 중 대형 석물 18점이 발견되어 대구박물관에 보관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승전이 화엄경을 설한 ‘돌 해골’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승전은 700년대 초에 법장의 통합불교를 지향하는 화엄종을 처음으로 신라에 들여온 승려였고, 갈항사는 신라 중대 말, 신라의 불교사상과 진골귀족 및 왕실과의 관계에 있어 주목할 만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학계는 말한다.

국보 99호 갈항사 3층 석탑( 이전되기 전 모습)

초라한 절이 세워진 50년 후에 통일신라 원성왕 외가에 의해 두 탑이 세워지며 중창되고, 다시 30년 뒤 원성왕대에 탑에 명문이 새겨지며 새롭게 중창되어 갈항사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29 ‘불우(佛宇)’에 갈항사에 대한 기록이 있어 조선 중기까지는 사찰이 유지되었고, 조선 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갈항사는 8세기 중엽에 이르러 가문의 일원이 왕위에 오를 정도의 최고 귀족 집안 원찰(願刹)로 대단한 규모와 위용을 자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풀밭으로 변한 절터에 보물 제245호 갈항사지석불좌상과 비로자나석불좌상 1구 신장상이 부조된 석재가 남아 있으며, 3층 석탑 2기(국보 제99호)는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갈항마을 400살 느티나무

1916년에 유물을 탐낸 도굴꾼들이 두 탑을 무너뜨리자 일제가 두 탑을 경복궁으로 옮겼다. 국보 제99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으로 옮겨져 있다.

1916년 탑을 해체할 때 기단부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동ㆍ서탑에서 각각 청동제 항아리와 금동제 병이 1점씩 출토되었다. 이 사리장치는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중이다.

갈항사 삼층석탑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두 탑은 천보17년 무술년에 세웠다. 남매 3인이 업으로써 이루었는데 남자는 영묘사의 언적법사이며 매자는 조문황태후이고 매자는 경신대왕의 이모이시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천보17년은 경덕왕 17년(758)으로 원성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이다.

조문황태후는 원성왕의 어머니로 박씨인데 계조부인 혹은 지조부인이라 한다. 언적법사는 원성왕의 외삼촌이다. 이 탑은 원성왕의 외가인 박씨 일가들이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갈항사 중창은 삼층석탑을 세운 시기와 탑에 명문은 총 2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탑의 글씨는 탑이 건립되고 30~40년이 흐른 뒤 원성왕이 왕으로 즉위하고 나서 새긴 것이다.

통일신라 원성왕과 그 직계 후손이 왕위를 이어가는 동안 갈항사는 최고의 융성기를 누리며 대사찰로 번성했고, 조선 중기까지는 절의 세력이 이어졌지만 숭유억불과 각종 전란을 거치며 폐허가 되어 황량한 잡초속에 모든 것이 잠들어 있다.

예로부터 김천에서 금오산을 바라보면 그 형국이 나락을 쌓아 놓은 형상이라 해 노적봉(露積峰)이라 불렀다.

지금은 개인소유인 갈항사는 초라하기만 하다. 이름만 예전의 갈항사일 뿐 예전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알 모양의 옹이를 안고 있는 갈항마을 느티나무

갈항마을에서 내려와 김천 최대의 인공 담수호인 오봉지 중간에 놓인 다리를 건너 갈손(葛孫)마을이 있다. 이곳에도 노거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갈손은 운남산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로 마을에 칡넝쿨이 많아 붙인 이름이다. 밀양 박씨 박기성(朴基成)이 영조 때 아포에서 이주해 정착한 이래 밀양 박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먼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먼저 客을 맞는다. 갈항마을의 느티보다는 작지만 비스듬히 누운 모습이 자뭇 거만하다.뿌리가 튼실하게 뻗어나와 신비롭다. 대각선 뒤쪽에 한그루가 더 있다.

동네 주민은 물 건너 깊은 산골에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단다. 가구수가 60여가구라고 하니 아주 작은 마을이 아니다. 살기에 참 좋은 곳이다.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앞은 물이니 背山臨水가 아니든가? 김천의 자연부락은 다녀보면 볼수록 복 받은 동네와 아름다운 곳이 넘친다.

느티나무 옆 造山

아마도 갈항마을의 400살 느티나무는 갈항사를 찾는 이들을 위한 이정표로 절집에서 심었거나,마을을 개창한 주민들의 조상이 심었을 것이다.

나무 옆에는 돌로 쌓은 造山이 있다. 비보(裨補)의 역할보다는  성황당의 흔적이다.  이 나무가  마을의 안위를 빌던 당산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젠가 김천시 남면  갈항마을 입구에 봉황의 알을 품고 있는 400살 당산목의 기운을 받으러 와 보시라!

영험한 기운을 가진 신령한 느티나무가 예전부터 그랬듯이  간절한 所願을 들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갈항사 #400살 느티 #김천의 나무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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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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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윤 2022-03-30 16:48:58

    징할때 김천에 가서 친구들과 이골짝 저골짝 전설을 들으면서
    유유자적 할때를 기다리며
    멀리서나마 황악신문사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삭제

    • 드래곤드림 2022-03-11 18:02:47

      반갑다!
      김산벌 지역신문에서
      수~세길 넘나든
      이런 역작을 대한다는 건
      藍谷기자가 낳은 불세출
      황악의 글로벌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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