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만농(晩濃)살롱
공직(公職)은 배운 다음에 해야 한다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7.07.29 14:25
  • 댓글 0

                                                이택용/경상북도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중국 서한시대의 역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은 법이 통치의 수단이나 도구가 되긴 하지만, 인간의 선악과 공직의 청탁을 가늠하거나 결정하는 근본적인 도구는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 유력한 근거로 치밀한 법망을 갖추고도 통치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던 진(秦)나라의 빠른 멸망과 가혹하고 치밀한 법망을 가지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한(漢) 무제의 통치 사례를 거론했다.

사마천은 “법령이 정치의 도구이기는 하나 백성들의 선악(善惡)과 청탁(淸濁)을 다스리는 근본적인 제도는 아니다. 과거 천하의 법망이 그 어느 때보다 치밀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백성들의 간교함과 거짓은 도리어 더 악랄해졌다. 법에 걸리는 관리들과 법망에서 빠져나가려는 백성들로 인한 혼란이 손쓸 수 없을 만큼 극에 이르자 결국 관리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백성들은 법망을 뚫어 나라를 망할 지경으로 끌고 갔다. 당시 관리들은 타는 불은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려는 방식의 정치를 했으니 준엄하고 혹독한 수단을 쓰지 않고 어찌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라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법의 기능과 이를 집행하는 관리들의 바른 자세에 대해서 말한다. “법령이란 백성을 선도하기 위함이고, 형벌이란 간교한 자를 처단하기 위함이다. 법문과 집행이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착한 백성들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잘 수양한 사람이 관직에 오르면 문란한 적이 없다. ‘직분을 다하고 이치를 따르는 것’ 또한 다스림이라 할 수 있다. 어찌 위엄만으로 되겠는가?”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가 사사로운 욕심에 물들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법을 떠받들면 법의 근본적인 기능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공평하게 법을 집행하려는 관리의 의지와 자기 수양이 전제된다면 법은 얼마든지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는 논리다.

사마천의 법 정신의 요점은 법조문 자체의 엄격함이나 치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행하는 공직자의 처신이 법조문을 가혹하게도, 너그럽게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법을 집행하는 자가 법을 지킬 의지가 없다면 법조문이 아무리 많고 지독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나라의 법전을 철저하게 정비한 개혁가 상앙(商鞅)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 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법은 강제력이지만 그것이 철두철미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집행된다면 통치와 백성들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법도 어디까지나 인간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완벽에 가까운 법체계를 갖추고도 진나라가 일찍 망한 가장 큰 원인으로 ‘막힌 언로(言路)’를 꼽았다. 요컨대 법을 집행하는 자가 백성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저 가혹하게만 굴었다는 것인데, 이는 법 집행에서 유연한 융통성의 필요성을 함께 지적한 것이다.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순자(荀子)의 군도(君道) 편에 보면 “어지럽히는 군주는 있어도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다스리는 법은 없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갖추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으면 법과 제도는 유명무실해진다는 말이 아닌가.

처음부터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못난 리더가 자리에 앉아 제도와 법을 어지럽히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법을 유린(蹂躪)하기 때문이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법을 가장 많이 어기고 악용하는 까닭도 그 사람의 법의식이 삐뚤어져 있고, 사사로운 욕심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최고 통치자에 대한 탄핵과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누구보다 법을 준엄하게 받들고 엄격하게 지켜야 할 사람이 법을 사유화하고 심지어 법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고 사익(私益)과 사욕(私慾)을 추구했던 정황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촛불을 높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백만 시민은 놀라운 준법 의식과 실천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 엄중한 혁명적 상황에서 새삼 또 하나의 중대한 역사적 원칙 하나를 확인하게 된다. ‘공직을 하려는 자는 공직에 앞서 인간이 돼야 한다.’는 너무도 상식적인 원칙 말이다.

 

 

김천황악신문  webmaster@hwangaknews.com

<저작권자 © 김천황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천황악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구미시 반려동물문화축제 비대면 개최
구미시 반려동물문화축제 비대면 개최
구미시, 반려동물 축제 비대면으로…25일 유튜브로 방영
구미시, 반려동물 축제 비대면으로…25일 유튜브로 방영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