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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허(菑虛) 노규헌, 유학공부(儒學工夫)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15)問題 14 치지(致知)와 경의(敬義)
  • 강창우 편집고문
  • 승인 2020.06.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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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敬)은 외물(外物)과 정념(情念)을 잊고 성(性)을 반지(反之)하는 것이며, 의(義)는 반지(反之)가 익어 드러나는 대용(大用)인 것이다. 여기서의 의(義)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의(義)가 아니다. 반지(反之)가 익으면 치지(致知)를 이룬다. 치지(致知)의 내용이 지견(知見)이다. 지견(知見)이 열린 이를 지자(知者)라 한다.

물(物)에 나아가 치지(致知)하는 것은 오사(誤思)요, 초학이 존심공부(存心工夫)한다는 것은 오학(汚學)이다. 존심(存心)은 개오(開悟) 이후의 공부이다. 경의(敬義)란 경(敬)을 세우고 의(義)를 단속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반지(反之)에 정일(精一)하는 것이다. 정일(精一)에 순숙하면 마침내 개오(開悟)하는 것이다. 개오(開悟)하면 성의정심(誠意正心)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대저 주희(朱熹)는 칠정(七情)의 생각으로 도(道)를 헤아릴 뿐, 공자(孔子)의 정위설(情僞說) 즉 칠정(七情) 없는 도설(道說)을 알지 못한다. 위(問題 12)에 주희의 동파악평(東坡惡評)을 봄으로써 주희 졸렬(拙劣)의 일단을 보았다고 하겠다. 동파의 도설(道說)은 주희의 독설(毒舌)이 묻지 않아서 초연(超然)하다.

소동파가 주희의 조종(祖宗)인 정이(程頤)를 무시(無視)했다고 생각한 주희가 천박(淺薄)하게 동파를 공격했던 것이다. 소동파는 정이(程頤)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정이(程頤)의 견해가 이치에 닿지 않으므로 다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을 뿐이다.

공자의 도(道)는 명덕(明德) 즉 성(性)을 밝혀 온갖 이치에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나의 도(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니라’하였던 것이다. 도설(道說)은 여러 가지의 이론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성(性)을 밝혀 일이관지(一以貫之)할 따름이다.

#김천황악신문 #치허 노규헌

 

 

 

 

 

강창우 편집고문  1s3ssf@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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