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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國의 혼이 서린 원계서원(遠溪書院)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 12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6.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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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 사건의 중심인물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선생이 배향된 서원”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편액도 걸려 있어”

항상 느끼는 생각이지만 김천의 골짜기(谷)는 깊고 넓다. 50평생을 살면서 김천의 못 가본 골이 99%다. 황악산을 타고 내려와 고성산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원골도 마찬가지다.

김천시의 잘 닦여진 도로만 토끼처럼 다니다 보면 그것이 다인 줄 알고 살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김천의 땅은 넓고도 깊다. 그 깊은 골엔 많은 이야기들이 여전히 살아 숨쉰다.

원골은 행정동은 대곡동이지만 실제로는 완전 시골로 느껴진다. 이곳에 아주 의미있는 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영남의 성리학을 대표하는 대단한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공산 송준필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다 별세했고 그 신주를 모시고 춘향제를 올리는  원계서원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유림 세력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유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고 청원하기로 합의하고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는 서한에 김천 지역을 비롯해 명망 있는 영남 유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것이 독립사에 한 획을 그은 파리장서 사건이다.

김천 출신 유림으로서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으로는 송준필(宋浚弼)을 비롯해 최학길(崔鶴吉), 이경균(李璟均), 이명균(李明均), 이석균(李鉐均) 등이 있다. 송준필은 그의 종택인 성주 백세각에 친족과 자제들을 불러 모아 파리 장서를 제출하고 독립 시위를 독려했다.

이 중심에 원골 원계서원의 주인공인 공산 송준필 선생이 있다.

공산 송준필은 1869년 성주군 초전면 야성송씨 종택인 백세각에서 태어나 15세에 여시 부인과 성혼하고 18세에 사미헌 장복추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선생은 1910년 37세 되던 해에 을사5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동향교에서 참오적소를 올리고 이후 저술과 후진양성에 힘썻다.

1912년 44세 때 서간도로 가 독립운동을 꿈꾸었지만 노친의 병환 때문에 되돌아 오기도 했다.

1919년 파리장서사건의 중심인물로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룬 후 1933년 65세 되던 해 성주에서 원골로 옮겼다. 선생은 일제의 단발을 거부하고 사진찍는 것도 싫어해 지금 존재하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김천으로 오게 된 배경에는 연안 이씨 와의 인연이 있었다.

1938년 도산서원과 금오서원 원장에 부임하고 1942년 74되에 원계정사가 낙성되고  그 다음해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성주로 장사를 치룰 때 모인 인원이 1,000여명이었고 장례행렬만 수십리에 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 걸린 숭덕사

1968년 사후 25년 유림들에 의해서 원계서원이 낙성되고  이듬해 숭덕사가 차례로 낙성된다

                   송준필 선생의 신주

1990년 사후47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공산 선생의 문집 목판

    자신의 문중을 알리기 위해 공산선생에게 보내온 문집들과 공산선생의 문집 원본(도난의 위험속에 있다.)

           국내통고문

아!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나라가 회복되면 죽어도 오히려 사는 것이요, 나라가 회복되지 못하면 살아도 또한 죽은 것이다.(첫구절)

공산 선생의 아들인 야성(冶城수)송수근 선생도 아버지를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기도 하고, 아버지인 공산 선생이 만든 통고문을 각처로 배포하고 1919년 파리장서운동과 3.1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다. 성주읍 장날 만세시위운동으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4월30일 보안법으로 기소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7월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훈장

   백범 김구의 글씨

저술로는 문집인 은포문집이 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1930년 3월1일 시작한 김천고등학교 본관 상량문을 지은이도 야성 송수근이다. 그가 지은 상량문의 첫 구절은 “ 문명이 우리나라에 분명히 드러났으니 청년들이여 어찌 배우지 않겠는가?”로 시작된다.

공산 선생의 가족과 친척들은 대부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하지만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이 서린 원계서원의 현실은 너무나 초라하다.

            장마에 무너진 축대와 시멘트 담벼락

     좀먹은 마루바닥 ,썩어들어가고 있다.

담이 여러 차례 무너져 사비를 들여 시멘트블록으로 쌓았고, 서원의 마루바닥은 좀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다. 축대도 장마에 무너져 김천시와 시의원에게 보수를 요청했으나 사유지라고 거부되었다. 몇 백만원이면 충분히 보수가 가능할 텐데 김천의 현실은 이렇게 안타깝다.

한 나라가 골격을 세우려면 가장 먼저 사상체계를 정립한다. 삼국시대가 불교를 수용하는 것이 그렇고 왕조가 교체될 때 조선이 성리학을 지도이념으로 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한 도시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정체성이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의 정비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정신문화는 그 도시가 어디에 내놓아도 기죽지 않을 정신적 뼈대다. 아무리 물질이 세상을 뒤덮어도 그것만으로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질만 풍성하면 천박한 자본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제어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정신적 문화와 전통이다. 동물에게 품종이 있듯이 가계와 도시와 나라와 왕조도 정통성이라는 것이 있어야 존속하고 제대로 행시(경상도 방언)를 할 수 있다.

퇴계학파를 계승한 유림의 거목이요, 독립운동의 관점에서도 세계적으로 그 어디라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김천의 정신적 보배인 공산선생의 魂이 서린 원계서원이 저리 천대받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는 것은 金泉人으로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다.

     공산 송준필 선생의 증손자 (좌측) 송재문,송재인(우측) 형제

누가 있어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김천의 예산은 1조를 넘는다. 문화유산 정비와 관리에 배정된 금액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사실인가 하는 생각이 원계서원의 무너진 담벼락을 보면서 들었다.

이 달(moon)정권은 세월호와 광주 민주화 운동에 엄청난 돈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고 지극히 예우한다 . 김천도 수백억에서 1,000억이 투자되는 각종 사업과 공원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나라를 존재하게한 독립운동의 중요한 자산과 愛國魂이 깃든 원계서원은  수 백만원을 지원받지 못해 시멘트담과 무너지는 축대에 위태롭다.

과연 이 나라와 이 도시엔 무엇이 중한가?

본지는 공산 송준필 선생의 사상과 불꽃같은 생애에 대해서 시리즈로 알려 나갈 계획이다.

 

#김천황악신문 #공산 송준필 #원계서원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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