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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읍 예리 산천재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 11)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6.0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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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충신 송월당 이사경의 집터 혹은 서당터로 추정”

“아포 마을 이름을 만든  이사경과 다섯  아들의 행적에 대한 연구 필요”

     아포읍 예리 산천재

고려가 망하자 한 선비가 다섯 아들을 거느리고 아포로 낙향했다. 그는 고려말 서북면병마부사를 지낸 송월당(送月堂) 이사경(李思敬)이었다.

그는 아포읍 깊은 산골 마을에 서당을 열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인재를 키우기 시작했다. 고려가 망하자 공민왕의 화상을 벽에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쳐다보며 不事二君의 뜻을 접지 않았다.

이사경이 서당을 차렸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인재들이 몰려들기 사작해 300호에 달하는 집들이 들어설 정도로 마을은 커지고 아포는 학문과 예의 고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을 이름도 ‘인·의·예·지’로 붙였다.

송월당의 후손들이 선생의 공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1781년 일신서원을 세웠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허물어져 사라졌다.

      경남 산청 남명 조식이 세운 산천재

김천시에서 조사한 비지정문화재 목록에 아포읍 예리에 산천재라는 이름이 있었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어서 예리를 찾았다.

조금 헤메긴 했지만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산천재는 남명 조식이 61세에 세워 경남 산청에서 후학을 양성한 서당 이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남명 조식의 제자이거나 그와 관련이 있는 선비의 유적이려니 생각했다. 산천재라는 이름이 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록들을 찾아보니 그 자리는 송월당 이사경의 집터라는 자료가 있었다. 이사경의 후손들이 세운 일신서원의 터는 대나무 밭으로 변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건물 앞 향나무 한 그루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동네 주민에게 들으니 예전에 서당이 있어서 서당마라는 마을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걸 보니 이사경과 연관이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남명 조식이 세운 산천재(山天齋)는 지리산을 너무나 사랑한 남명이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명당에 세운 서당인데, 아포의 산천제도 멀리 보이는 국사봉과 제석봉이 간단치는 않다.

뒤돌아 나오는 길에 차를 타고 잠시 뒤돌아보니 산천재의 背山인 현무도 한 마리의 꿈틀거리는 짐승의 형상인데 다시 살펴봐야 할 듯하다.

건너편의 못 이름도 서당못이다.

이 마을의 이름과 못의 이름을 봐도 이사경의 서당과는 깊은 관련이 있음은 확실하다.

                  철문의 형태가 이채롭다. 지정문화재가 되면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송월당 이사경의 집터인지 혹은 서당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지금 남은 건물의 이름이 왜 산천재 인지 부터 시작해 하나씩 알아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일을 누가 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지만 인력과 돈이 문제일 터이니 향토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 그 짐을 나누어 주면 좀 더 쉬울 것이다.

김천과 아포의 학문을 드높이고 아포라는 지역의  마을을 이름지어 존재하게 만든  이사경의 흔적은 좀 더 정비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다.

#김천황악신문 #아포 예리 산천재 #송월당 이사경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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