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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甘文(감문)의 슬픈 노래 11) 빗내 농악의 부활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5.1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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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금릉땅 남면 부상 출신인 정재진은 선산 무을 수다사의 주지로 있었다. 수다사는 말 그대로 물이 많아 수도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무을이지만 깊은 산속이라 수행을 방해하는 이들도 없었다.

수다사는 신라 문성왕 때 절 뒷산인 미봉에 힌 연꽃이 피어 절을 짓고 연화사라 이름했다.

한때는 24개의 건물을 거느리고 법화경 강론에는 수 만명의 중과 백성들이 찾기도 한 사찰이었고, 임진 왜란때는 만 명의 승병이 모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쇠락해 밥만 먹고 사는 수준이었다.

세상은 삼정의 문란과 세도정치로  민란과 연이은 수재로 수 많은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고통의 시대였다.

정재진은 요즘 꿈자리가 영 뒤숭숭했다. 벌써 여러날이다. 금관을 쓴 임금이 나타나기도 하고, 서역의 나풀거리는 옷으로 머리를 감싼 장신의 귀부인이 나타나기도 했다.

원룡이라는 장군이 칼을 차고 눈을 부릎뜨고 노려보기도 했다.

희미하던 꿈속의 인물들은 계속 나타나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다가 사라지곤 했다. 여러날이 지나 꿈속의 인물들은  이제 대화를 나누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머리에 왕관을 쓴 이는 자신을  고대왕국인 감문국 금효왕이라고 했다. 천으로 머리를 감싼 여인은 장부인라고 했다. 두 사람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김산의 고대국가 감문국의 왕과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눈을 부릎 뜨고 노려보던 원룡 장군은 감문국의 맹장인데 사로(신라)의 침공에 맞서 싸우다 죽어 원한을 풀고 싶다고 했다.

정재진은 이들이 왜 꿈속에 나타나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억울하게 죽은 감문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1,6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속문산성에서 죽은 많은 백성들과 군사들의 원혼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감문의 후손들이 자신들을 잊지 않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정재진은 물었다.“소승이 무엇을 하면 되옵니까?”

금효왕의 영혼이 대답했다.“ 그대는 정신을 차리고 잘 기억하라. 내일부터 열 이틀동안 하루에 하나의 굿을 가르쳐 줄 터이니 머리에 새기고 금릉의 후손들에게 감문국의 전통과 역사를 잊지 않도록  전해라. 마음에 새기라! 이 일이  네가 이 생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굿을 익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는 감문국의 후손인 금릉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수다사에도 절을 지을 때 쓰던 가락과 춤사위가 남아 있으니 참고하라.”

약속대로 금효왕과 장부인 원룡장군은 다음날부터 12마당의 굿의 추임과 몸짓, 짜임에 대해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첫날은 꽹과리에 맞추어 모든 풍물꾼이 춤을 추며 행진하며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가가호호 지신밟기를 하는 굿을 가르쳤다. 정재진은 골매기굿이라 이름지었다.

둘째 날은 원진을 갖춘 판을 벌려서 놀이를 준비하는 굿을 배웠다. 문굿이라 이름붙였다.

셋째 날은 마당굿으로 빠른 가락으로 상쇠와 종쇠의 가락에 따라 전 풍물꾼이 놀이훈련에 들어가는데, 상쇠와 종쇠가 서로 이동하면서 전 대원을 훈련시키는 굿이다.

넷째 날은 영풍굿으로 병사들의 훈련시키는 것으로 쇠잡이들이 원진 안에서 놀다 원의 선두로 들어가, 상쇠의 신호에 따라 앞으로도 가고 반대방향으로도 가며 또 원래위치로 돌아가는 놀이를 배웠다.

다섯째 날은 판안다드레기로 상쇠와 종쇠가 소리에 맞추어 쇠가락을 치며, 모든 풍물꾼들은 가락에 맞추어 자기 악기와 장비가 이상 없음을 과시하며 신나게 뛰어 노는 법을 배웠다.

여섯째 날은 기러기굿으로 풍물꾼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모든 풍물꾼들이 옆으로 뛰며 기러기 모양 팔을 벌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일곱째 날은 허허굿으로 상쇠가 가락을 치다가 '허허허'하며 소리를 하면 모든 풍물꾼들이 '허허허'하며 대답을 하는데, 이는 자기 장비에 이상이 없음을 알리는 것을 배웠다.

여덟째 날은 쌍둥이굿으로 풍물꾼들이 큰원을 그리며 놀다가 상쇠의 신호에 따라 두명씩 짝을 지어 작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오방진굿은 모든 풍물꾼이 다섯개의 작은 원을 만드는데 쇠가 안쪽으로 북, 장구, 소고는 바깥에서 원을 만들어 돌며 놀기도 한다.

아흐레 날은 판굿으로 풍물꾼들이 양쪽으로 갈라선 굿판 가운데서 쇠놀이, 북놀이, 장구놀이, 소고놀이 순으로 논다. 상쇠가 채굿가락을 치면 소고가 한줄로 소고놀이를 하고, 이어 잿북을 치면 소고잡이 몇 명이 중앙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빠른가락에 수박치기를 한다.

열흘 째는 영산다드레기로 가장 어려웠다. 가락과 놀이로 격렬한 전투 장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악기와 소고가 두 패로 나뉘어 밀고 당기며 전쟁을 나타내는 격렬한 놀이였다.

열 하루째는 진굿으로 상쇠와 종쇠가 두 패로 나누어 진을 치고 노는데, 이는 격전을 벌여 적을 포위섬멸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상쇠가 진을 풀면 모든 풍물꾼들은 전쟁이 승리로 끝난 것을 기뻐하며 한데 어우러져 흥을 돋구며 춤을 춘다.

마지막 열 이틀째는 상사굿으로 전쟁이 끝나고 각기 헤어져 흥겨운 마음으로 각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느린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상쇠가 '얼룰루 상사듸야'를 선창하면 모든 풍물꾼들이 뒷소리를 따라하며 돌아간다.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의식을 끝으로 모든 굿은 끝났다.

열 이틀 동안의 가르침이 끝나자 감문국의 금효왕과 총희인 장부인, 원룡장군은 정재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 동안 고생이 많았소. 부디 우리의 부탁을 기억하고 잘 전해 주시오. 대신 그대의 이름이 영원히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해 주겠소. 감문국의 땅 빗내라는 곳에 가면 그대를 도울 사람들이 있을 것이오. 정말 고맙소”

수다사의 승려 정재진은 같은 절의 승려 이군선과 무을의 오가동 백성들을 불러 꿈속에서 가르침을 받은 굿판과 절에서 전해오던 놀이를 섞어 익히기 시작했다.

굿판이 완성되자 빗내마을의 주민들을 인솔해 본격적인 빗내풍물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1,600년동안 잊혀졌던 빗내농악은 다시 부활했다.

제3대 상쇠 윤상만에 이르러 상쇠의 빗내마을에서  본격적으로  풍물패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광복 후엔 윤상만이 잠시 상쇠를 맡았다가 우윤조, 이남문, 김홍엽으로 이어진다. 제7대 상쇠 한기식은 1972년 김홍업의 뒤를 이어 2004년까지 상쇠를 맡았고 손영만은 2004년부터 현재까지 제8대 상쇠를 잇고 있다.

빗내농악은 1984년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문화재청으로부터 2019년 9월2일에 국가무형문화재 보유 단체(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인정받아 인정서를 문화재청장으로부터 교부받았다

            빗내농악 전수관

빗내농악전수관은 2003년 11월 빗내농악의 발상지인 개령면 광천리 빗내마을 입구에 건립되어 넓은 개령들과 감천 내를 바라보고 있다. 부지 면적 3388㎡에 지상 2층 규모의 전시실과 연습실, 숙소, 야외 공연장을 갖추고 연중 빗내농악 전승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빗내에서 바라본  개령들과 취적봉

김천의 유일한 무형문화재인 빗내농악은 감문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감문국이 사로국에 서기 231년에 패망한 뒤 소실되었다가 금릉군 남면 부상리 출신 수다사 승려 정재진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굿이란 특별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감문국의 전쟁에서 유래되었다.

김천의 자랑이고 영원히 계승 발전되어야 할 유산이다.

<필자 註>감문국의 역사 복원에 대해 김천시의 담당부서  관계자와 수차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무원의 생각은 그리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김충섭 시장은 그동안 많은 권한을 각 부서의 과장에게 주었다고 평소에도 밝혀 왔고 문화와 관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가치 있는 일에 대해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담당 부서의 책임자는 시장에게 말해 보라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김천시는 시장에게  사소한 것까지 모든 사안을 얘기하고 허락을 득해야 하는 후진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책임부서의 장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계획을 시장에게 말 못할 정도로 권한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무관심한 것인지 아니면 귀찮은 것인지 시장을 독대할 기회가 되면  직접 확인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김천황악신문 #빗내농악의 부활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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