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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 새암골 無也寺址 미륵불..."인민군의 총탄에 얼굴의 형체조차 사라진 통일신라의 영험한 부처 "“김천의 문화 유산을 찾아서 8”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2.07.0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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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황악신문] 彌勒(미륵)이라는 부처가 있다. 석가모니불이 열반하고 56억7천만년이 지난 후에 사바세계에 출현 해 인간을 구제하는 부처님이다.

하지만 혼탁한 세상,  핍박받던  한반도의 민중은 그렇게 기나긴  오랜 세월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었다.

통일신라의 허덕이던  숨이 끊어져 갈 무렵 궁예라는 장수가 태봉국을 세우고 미륵의 現身이라 자칭했다 관심법으로 세상을 관조하니 많은 이들이 왕이자 부처로 받들었다.

새암골 미륵불

민중들은 신묘한 돌을 깍아 세우고 미륵이라 부르며 그들의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조선이란 나라가 망해가자 다시 또 미륵불을 칭하는 자들이 한반도에 나타나 지금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돌을 깎아 만든 부처도 信心과 세월의 기운이 더해져 신통함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게 해주기도 하고, 과거에 합격시키기도 하고, 병을 낫게 하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은 더욱 깊이 돌부처에게 그들의 소원을 아뢰고 부처는 기꺼이 속세의 인간들을  간절한 소망을 들어줬다.

어모 옥계리 새암골 無也寺라는 절이 통일신라 말 혼란기에 세워졌다. 미륵불의 조화가 신비로워 사람들이 몰려드니 마을이름도 미륵당으로  바뀌었다.

영험한 기도발이 알려지자 1950년대까지 사람들로 붐볐다.

 6.25가 터지고 패퇴하던 북한군 하나가 미륵부처에게 총을 난사해 얼굴이 깨어지고 코와 귀는 날아갔다. 왼쪽 다리도 부서졌다. 몸에는 아직도 총흔이 역력하다.

총을 쏜 인민군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7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미륵당을 찾는 이는 드물다. 가끔 외국인들이 찾아 온다고 마을주민은 귀뜸했다.

새암골 미륵불/황악신문

미륵당 앞으로 추풍령과 상주의 공성면을 잇는 큰 길이 나 있지만 미륵불을 안내하는 단 하나의 표지판도 없다. 

과거의 영화를 뒤로하고 미륵불이 자리한 절터는 개인묘들이 점령했다. 주춧돌만이 예전의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미륵당 주차장에서  산길로 올라가면 물탱크가 하나 있고, 조금 더 올라가서 비포장 된 왼쪽 길로 조금만 가면 미륵불을 만날 수 있다.

2년이 지나서 다시 찾아온 미륵불엔 풀만 무성했다. 역시 작은 안내판 하나 없다.

김천에서 어찌보면 가장 오래된 부처일 수도 있다. 민중들이 각자의 소원을 가지고 구름처럼 몰려들던 영화를 뒤로 하고 이제는 찾는이조차 없이 인간의 묘들 사이에 초라하게 풀들과 놀고 계신 부처!

언제 다시 사람들의 경배를 받을 수 있을까?

경배는 고사하고 기억해 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거룩하고 자비로운 얼굴은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목 아래 아름다운 法衣 주름만이 흘러간 영광을 증명하고 있다.

성스러운 얼굴의 형체조차 사라지고 거룩한 신체에 총탄의 흔적을 훈장처럼 간직한 미륵불은  오늘도 如如히 찾아올  이들을 위해 보살심과 加被를 준비하고 있다.

#황악신문 #어모면 미륵당 미륵불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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