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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면 은기리 마애반가보살상(金陵殷基里磨崖半跏菩薩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7호)김천의 문화와 역사를 찾아서 (7)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5.1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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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이 알을 품은 형국의 산((卵含山))아래 첫 마을은 봉항의 목(鳳項)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봉황 마을이 아니라 봉항이다.

이 마을은 기자가 찾아 본 김천의 마을 중 구성의 복호리를 제외하고 가장 풍경이 좋았다.

2009년 행안부가 주최한 살기 좋은 마을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전국의 1,029개 마을이 참가했다. 벌써 자리 좋은 곳에는 제법 괜찮은 전원주택 몇 채가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가 말기적 증상을 보이자 각지의 장군들이 군사를 일으켜 왕이라 칭했다. 세상은 혼란했고 민중들은 살길을 찾아야 했다.

                난함산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

난리를 피하고 안녕을 기원하던 일단의 사람들은 봉황이 알을 품은 명당의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었다. 승려들도 들어와 절터를 닦고 부처의 가피를 기원했다.

먹고 사는 최소한의 생존마져 위협받던   혼란의 시대!

건물을 제대로 세우기도 힘들었고, 제대로 된 불상을 모시기도 쉽지 않았다. 난함산 아래의 민초들은 묘함산 계곡 옆에서 부처를 새기기 좋은 바위를 발견했다.절집에서 5리 남짓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무로 사다리를 만들고 징과 망치로 부처를 새기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해 척박한 산을 개간해 보리를 심고, 시간이 남는 대로 부처를 조각하는데 몰입했다.

보관을 만들고 부처의 얼굴을 쪼아 새기고, 손을 만들고 반가부좌의 부처가 완성 될 무렵 드디어 세상은 왕건이라는 인물이 전국을 통일하고 신라의 왕은 고려에 귀부를 결심했다.

세상은 서서히 안정되어 갔지만 난함산 속의 사람들은 세상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의 삶을 이어갔다.

1,000년의 세월이 흘러 길은 넓어지고 난함산 꼭대기엔 군부대가 주둔하고 통신탑이 들어섰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싸드라는 물건을 들여와 김천에 배치가 결정되자 그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우마차가 다니던 길은 신작로가 들어서고, 얼마전에는 마을 앞에 더 넓은 새로운 고속국도가 생겼다. 이제는 사람들이 경치 좋고 물 좋은 동네를 찾아 들어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물은 푸르고 공기는 상쾌하다.

무식한 사람들이 난함산 아래 첫 동네를 봉황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난함산 아래 가까이 있던 동네는 물난리와 산사태를 당한 후 좀 더 아래로 내려 와 봉항의 목에 다시 동네를 일구니 목항(項자)를 써서 鳳項마을이라 이름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본다. 현재의 지명과 구역으로 역사를 해석하면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래서 과거를 모르면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은기리가 지나온 역사를 세밀히 알아야 하는 이유가 그기에 있다. 지금은 차라는 신기한 물건이 동네 끝까지 자유롭게 다니지만 1,000년 전 은기리는 현재를 사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오지중의 오지였다. 그곳에 마을을 이루고 절집을 만들고 높은 절벽에 부처를 새긴 민초들의 수고는 헤아리기 어렵다.

봉항의 알을 품은 산이 영원하듯이 돌에 새긴 보살은 풍화에 서서히 사라져가도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며 부처의 가피를 담은 그 정성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천황악신문 #은기리 마애보살상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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