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죽은 토론의 사회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5.02 14:55
  • 댓글 0

강샘 (프리랜서 기자.워싱턴 D.C거주)
 

특정한 문제를 놓고 아들하고 나하고 의견이 대립되었다. 기회가 왔다. 서로를 알고 앎을 넓혀 가는데 토론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서로의 의견을 주장하는 토론 시간은 예상보다 길었다. 길면 길수록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들이나 나나 기회 되는 대로 꼬투리를 잡아 늘린 것도 시간을 지연시키는데 한몫했다.

토론을 마치고 나면 뒷끝이 맑게 개인날처럼 개운하다. 더 이해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그만큼 더 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토론에는 불문률이 있다. 절대로 이기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이기려는 토론은 서로에게 상처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기기 보다는 서로가 성장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가끔씩 발생하는 아들과의 토론은 시작부터 마음이 설렌다. 이를 통해서 우리 아들이 토론한 만큼 성장하겠구나 싶어서 내심 흐뭇하기 그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성장을 원해서 하는 토론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얼굴 붉히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토론에 앞서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어 서로의 주장을 받아들일 열린 마음을 준비하는 것도 다른 토론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직장에서 여당파와 야당파의 말싸움이 벌어졌다. 갈수록 언성이 높아진다. 곧 싸움이 벌어질 줄 알았더니 마지막에는 농담으로 돌아가 웃음으로 끝났다. 

대학 때 2인 1조가 되어 기말 사회 문제 발표회가 있었다. 대부분은 같은 시각에서 서로 같은 방향으로 가는 데 어느 한 조가 서로 반대의 의견으로 심하게 논쟁을 벌여 교수로 부터 최고 점수를 받았다.

상원에 있을 때 본 미국 정치가들이 인상적이었다. 토론장에서는 피터지게 싸우더니 끝나고 나서는 모두 정다운 친구다. 그들에게 토론은 크게 보아 상대를 죽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미국을 한발짝 더 나아가게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언쟁이 꼭 이와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지인의 부자가 정치적 견해가 달라 원수가 되어 버렸다. 같은 교회의 성도들도 정치로 인해 갈라서고 동창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가족이나 친척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는 금물로 되어있다. 교회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못하도록 되어 있고 동창회나 각종 모임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금물로 되어있다. 언쟁은 커가면 결국 절교까지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정치가 뭐라고 가족을 갈라 놓고 교인을 갈라 놓고 동창을 갈라 놓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의견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면 적이 된다. 너와 나는 다르고 서로의 의견을 통해 더 좋은 것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국민을 가르는 데는 정치가들의 꼼수가 크게 한몫을 한다. 교묘한 정치 공학은 국민을 싸움을 붙여 자기 편의 집결력을 강화 시키고 그를 통해 입지를 굳혀 나간다. 선한 국민들 싸움 붙여 놓고 거기에서 반사 이익을 얻는 것이다. 

정치가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차갑도록 냉정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주류를 이룰 때 정치가들은 꼼수를 쓰지 못한다. 

이제 국민이 냉정해 지자.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서로 낮은 목소리로 토론하자. 깊게, 그리고 아주 질기게. 그런 토론에  의해 성숙한 민의를 지니게 될 때 정치가들은 바른 정치를 할 수가 있고 그래야 좋은 나라를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김천황악신문 #전물필진 #강샘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황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서업 대표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민선7기 2주년, 김충섭 김천시장의 시민과 함께한 담대한 변화를 돌아본다(기획취재)
민선7기 2주년, 김충섭 김천시장의 시민과 함께한 담대한 변화를 돌아본다(기획취재)
TK통합신공항 이달까지 공동후보지 신청 안하면 무산
TK통합신공항 이달까지 공동후보지 신청 안하면 무산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