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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甘文(감문)의 슬픈 노래 6) 문무국과 고인돌"새가 된 영혼들"
  • 김서업 대표기자
  • 승인 2020.04.11 21:26
  • 댓글 1

문무국의 지석묘를 보러가는 길에 빗내에 잠시 들렀다. 우람한 빗내농악전수관이 보인다.

코로나로 굳게 잠긴 문을 염치없이 두드려 안내물을 받았다. 감문국의 전쟁에서 비롯된 진굿이 가미된 형태로 2019년 9월 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빗내농악전수관 앞에 2003년 11월 5일 박팔용 前 시장이 적은 작은 기념비가 있다. 내용이 아주 좋아 옮겨본다.“오랜 세월 아름다운 산과 들을 적시며,우리 곁을 빗겨 흘러가는 저 냇물처럼 여기 울리는 이 소리가 김천을 휘돌아 길이 길이 살아갈 모든 이들의 큰 희망과 용기되어 영원토록 울려 퍼지리라“

문화체험으로 제격인 빗내농악 전수관을 약20여년 전에 수십억을 투자해 지은 그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빗내 농악에 대해 더 이야기 하고 싶지만 오늘은 문무국의 지석묘를 보러가야 하기에 개령로를 따라 위령초를 넘어 문무리로 향했다.

          문무리 -뒤에 보이는 산은 백운산이다

열흘 전에 한 번과 그 이전에 예비탐사를 한 적이 있어 이제 제법 익숙하다. 문무리는 상여와 하여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여마을에 삼한시대 小國인 문무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문명으로 넘어 가던 약 2,000년 전 개령과 감문을 중심으로 멀리는 선산까지 지배하던 감문국이 자리했고 그 세력권내에 문무국,아포국,주조마국,어모국등이 있었다.

                             상여마을의 맷돌

변한의 소국은 규모가 큰 나라가 4-5천家,작은 것은 6-700家에 불가했으니 감문국이 1,000가구정도였다고 추정하면 문무국은 커 봐야 1-200가구 정도였을 것이다.

상여마을에 궁궐터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여마을 북쭉에 지석묘 6기가 존재하고 있고,야산에 횡혈식 대규모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지표조사 자료에는 이 지역을 고인돌공원으로 조성해도 된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동네 주민들은 고분군을 고려장이라고 알고 있었다. 들은 얘기로는 예전에 집집마다 토기 1-2개 정도는 있었다고 한다.

가정집에 깨진 토기 파편을 아들은 그냥 가져가라고 했는데 엄마는 돈을 달라고 한다. 나에겐 사진이 필요해서 굳이 무리하진 않았다.

                 고소산 전경

문무리의 뒷산은 백운산이고 앞쪽은 어모와의 경계를 이루는 고소산이다. 뒤에는 속문산성이 앞에는 고소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다 감문국의 산성이다.

문무리에서 상주옥산의 공성으로 넘어가는 빈티고개에 고인돌로 보이는 거대한 돌이 있다.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보진 못했지만 인공적인 받침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인돌로 추정된다.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 최소한 수 십톤 이상의 집채 만한 돌이다. 고인돌이라면 지금의 장비로도 힘든 저 돌을 어떻게 운반하고 받침위에 들어 올렸을까?

세 번 째 고인돌 탐방은 감문면 사무소의 이경동 산업계장께서 주소를 찍어주어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무리 앞 들판에 그토록 보고 싶던 김천의 고인돌이 있었다. 물론 입구를 안내하는 표지판은 없다. 그런 안내판을 기대한다는 것은 아직 호사다.

김천에 사건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많은 회사와 단체와 개인들이 성금을 내고  사진을 찍고 언론에 뿌린다. 하지만 문화재를 위해서 성금을 기부하는 사례는 아직 보지 못했다. 문화재에도 관심을 좀 가져주면 좋겠다.

 작은 안내판 하나는 몇 십만원이면 세울 수 있다. 조금 미루어도 되는 공사에서 10억만 떼어 오면 웬만큼 김천의 문화재 안내판은 정리될 수 있을 듯도 한데 이럴 때는 얄팍한 내 호주머니가 다소 서럽다.

드디어 마주 선 고인돌은 논 바로 옆 길가에 뽕나무가 무성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민간단체에서 세운 작은 안내판 하나가 고인돌임을 말해주고 있다. 대체로 원형은 양호한 편이다. 옆에는 모래를 파 간 흔적이 위태롭다.

돌을 떼어낼 때의 흔적인지 의식용인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이 도구를 사용해 쪼아서 만든 규칙적인 홈의 흔적이 또렷하다.

신기하다, 2,000여년 전 인간의 흔적이다,인간은 가도 돌은 수 천년을 견디며 살아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채 잡목과 풀 속에 방치된 2,000여 년 전 문무국 일대를 호령하던 한 인간이 잠든 흔적이다. 풀이 자라는 여름을 지나면 찾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고인돌을 구경하고 차로 이동하는데 이름 모를 큰 새 한마리가 날아와 머리위를 한 바퀴 돌고 돌아간다. 백운산의 속문산성을 찾으러 산을 올라갈 때도 크기는 다르지만 이름 모를 새가 반겨 주었는데 감문국과 새는 인연이 깊은가 보다.

어딜가든 여전히 桃花는 허드러지게 피었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合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의 육신이 陰이라면 영혼은 陽이다. 나이가 들어 죽는 날까지 地水火風의 조화와 精靈의 존재, 보이지 않는 세계의 작용을 나는  굳게 믿을 것이다.

인간이 달나라와 우주를 탐험해도 보이지 않는 靈的 세계를 탐구하는 긴 여정은 계속된다.

문무국과 감문국의 수 많은 영혼들 중 2,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이유로든 편안히 잠들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恨서린 영혼을 이름 모를 새에 실어 저 멀리 그들이 온 세상의 하늘로  돌아갈 수 있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聃”

 

#김천황악신문 #문무국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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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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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문국 2020-04-14 17:27:08

    감문국과 문무국 그 역사의 흔적을 아주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어제,오늘,내일 우리는 역사를 본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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