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NH농협은행 신설동지점장,국민권익위원회 청렴교육 전문강사)

"오늘 밥값은 각자 냅시다" 몇일전 업무협의를 위해 만난 공공기관 간부직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한 말이다. 오랫동안 대관업무를 담당해 온 필자는 종종 공직자들과 식사를 하는데 청탁금지법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직무관련성을 따져야 하고 금액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상당히 불편하다. 곤혹을 느끼지 않으려면 그래도 따져보아야 한다. 공직자와 식사할 때 따져보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계산방법이다.

크게 4가지 계산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한턱내기다.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식사접대 관행이다. 2016년 12월 같은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하급자들이 상급자들에게 한턱을 냈다. 1인당 3만1천원의 식사를 대접받았다.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허용되는 밥값 3만원에서 정확히 천원이 초과되었다. 밥값을 내지 않은 상급자 모두 견책처분을 받았다. 하급자와 상급자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직무관련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직무관련성이 없는 공직자에게는 3만원을 초과하는 식사접대도 가능하다.

두번째는 몰래내기다. 변호사가 관할지역내 법원에 근무하는 판사가족의 식사대금 3만원 중 2만8천원을 몰래 계산한 사건(전주지법 2016과76)에서 해당 변호사는 11만2천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3만원 이내의 식사라도 공직자와 '함께 하는 식사'만 허용된다. 함께 먹지 않고 대신 계산하거나 나중에 계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식사를 하도록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것도 당연히 금지된다.

세번째는 각자내기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가장 주목받는 계산방법이면서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법률을 입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청탁금지법의 다른 이름이 '각자내기법'이라고 했다. 청탁금지법 시행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도 '각자내기'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조사 조사에서도 공무원의 72.8%가 "직무관련자와의 각자내기가 일상화됐다"고 답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도 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NH-PAY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작은 금액이라도 나누어 계산하는 것을 새로운(New) 습관(Habit)으로 정착시켜 불합리한 접대관행을 타파하자'는 윤리경영 실천캠페인이다.

마지막으로 상호접대다. 각자내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국민권익위원회 해석자료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기업체 직원이 1차를 내고 공직자가 바로 이어서 2차를 낸 경우에는 각자내기를 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2차 금액이 1차 금액보다 작은 경우에는 차액만큼 공직자가 접대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금액도 동일해야 한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공직자와 식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공직자가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만나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청탁금지법 제8조제3항제6호에서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등의 금품 등'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이유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와의 만남 자체를 금지하는 법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부정청탁과 접대관행을 없애기 위한 법임을 잊지 말자. 공직자와 업무협의를 마친 후 2만9천원짜리 한정식을 먹고 밥값을 참석자 전원이 각자 계산했다. 덕분에 직무관련성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계산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참석자 모두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공직자와 함께 즐겁게 식사를 하고 밥값은 각자 내자. 그것이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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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승 취재국장  apata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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