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샘 (프리랜서 기자.워싱턴 D.C거주)

정치학에 관심이 있어 집 근처에 있는 칼리지에 원서를 냈다. 간단한 원서 제출과 학비를 처리한 후에 입학이 허가되었다. 사진이 붙은 학생증을 받아들고 캠퍼스를 나오면서도 내가 미국의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다. 지독한 입시 경쟁 문화를 보며 살아온 내게 원서 한 장으로 입학이 허가되는 문화가 쉽게 피부로 느껴지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어제 첫 등교를 하고, 개그맨 뺨치게 재미있는 말과 표정과 몸짓으로 강의하는 벽안의 여교수를 보고, 서점에 들려 미처 준비하지 못한 교재 몇 권을 사들고 나서야 비로소 학생이 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강의 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어서 캠퍼스를 이곳저곳 돌아보았다. 이제 더위가 한풀 꺾인 캠퍼스 안에는 젊음의 열기가 가득하다. 파란 잔디 위에 앉아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벤치 한구석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기도 한다. 바쁘게 오가는 학생들은 외모에서부터 향학열이 느껴진다. 한국의 학생들보다 더 진지하고 열심히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는 대학 교육을 감당할 수가 없다. 들어가기는 쉬우나 엄청난 과제물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시간만 되면 책과 씨름해야 하는 것이다.

이곳 칼리지 교육은 한국 대학 교육과 다른 점이 많다. 학생들의 모습부터가 다양하다. 학교 안에서도 미국의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남들의 시선 같은 것은 전혀 의식을 하지 않는 듯하다. 집안에서 입던 것 같은 편한 옷차림으로 캠퍼스를 활보한다. 배구를 하는 한 여학생은 수영복에 가까운 차림새다. 어떤 여학생은 배를 다 드러내고 배꼽에 귀고리 같은 것을 달고 다니기도 한다. 어깨 밑까지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기르고 다니는 남학생도 많다. 더 특이한 것은 이곳 대학들에는 장애인 대학생들이 많다. 숨조차 쉬지 못해 산소 통을 휠체어 뒤에 매달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전동 휠체어를 조작할 만한 힘도 없어 입으로 조절하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그런 장애인 학생이 천명이나 학교에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공부하려는 그네들을 보며 학문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낄 수가 있다.

이곳 대학의 또다른 점은 신청하는 학점 수대로 등록금을 낸다. part time 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다가 어렵거나 마음에 안 드는 과목은 포기하고 학비를 돌려 받는다.(단 학기 초여야 함) 매점 옆에 학비 돌려주는 코너를 마련해 놓았는데, 그곳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공부가 절대적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장이나 따러 다니는 학생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기에는 버려지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이다.

부럽기 그지없는 것이 미국의 칼리지 교육이다. 여건이 갖춰져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특정한 자격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편으로 배달되는 학교 안내서를 보고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이 있고, 그 과목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면 매일 오픈 되어있는 간단한 시험을 거쳐 등록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데 다방면의 좋은 학습 성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전공분야에 꼭 필요한 시험 한두 가지만 보고 나머지는 스스로 할 수 있어서 지원하겠거니 싶어서 지원하면 다 받아 주는 것이다. 일단 입학을 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엄청난 량의 숙제를 내 준다. 우리 교수만 해도 첫 등교한 학생들에게 다음 강의 시간까지 교재 20페이지의 분량을 숙제로 내 주었다. 사람들은 그 정도는 숙제도 아니라고 한다. 다른 것을 하면서도 쉬엄쉬엄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이곳 칼리지에서는 한국의 대학에서 느낄 수 있는 낭만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학생이기 때문에 대부분 공부하는데 만 신경을 쓴다.

미국은 엄청나게 많은 칼리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 동네만 해도 십 마일 반경 안에 좋은 칼리지가 세군 데나 있다. 이처럼 많은 칼리지가 생겨난 것은 미국 공황기 라고 들었다. 공황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는 교육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에 실천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은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국민 교육에 힘을 썼고, 그 노력은 미국을 오늘날의 최강국으로 서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칼리지의 시험은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수준을 알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학 같은 것을 공부하려면 높은 수준의 영어를 필요로 하는데 영어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치는 것이다. 수준이 모자라면 수준이 될 때까지 학교에서 일정량의 수업만 받으면 전공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칼리지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사년제 대학에로의 편입이 쉽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칼리지를 졸업하고 편입을 하지만 졸업도 하지 않고 사년제 대학으로 편입해 가는 학생들이 부지기 수다. 성적이 좀 괜찮고 학교에서 이 학생은 사년제 대학에 가서도 수업을 감당할 수 있다고 추천서를 써주면 편입이 되는 것이다. 칼리지의 등록금이 싸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일단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사년제 대학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자기의 역량이고, 감당할 수 없으면 자퇴하기 때문에 입학을 까다롭게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개혁은 칼리지 교육의 활성화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한국인들은 어느 민족 못지 않게 지적 욕구가 강한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제도와 교육풍토는 그 지적 욕구를 효과적으로 흡수하지를 못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들이 전공과목과 별 상관이 없는 쓸데없는 시험에 통과하지를 못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고 있다.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의 지적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줘야 한다. 낮은 학비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을 더 많이 지어야하고 더 많은 사람을 대학에 받아들여야한다. 쉽게 들어가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이곳 칼리지의 목적은 지도자 양성보다는 공부하려는 사람, 혹은 전문직업을 원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실제 목적 또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교육이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되어있는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정년 퇴직한 후에도 공부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생활하느라고 여유가 없다가 이제 시간이 되니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공부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면 요즘 할 일이 없어 친구들과 백화점이나 배회하는 많은 가정 주부들을 학교로 불러들일 수가 있고, 그 배움은 곧바로 사회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다양, 다변화된 우리 사회에도 그 실정에 맞게 교육에 큰 변화가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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