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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역로 포인트 탐방1학사대(學士臺) 거리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9.11.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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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역로 포인트 탐방’이라는 주제로 김천역에 이르는 옛 문화의 발자취들을 더듬어 본다. 이 글은 서남석 평화남산동장이 자신의 폐이스북에 시리즈로 실었던 글이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황악신문의 독자들에게도 김천역 인근의 문화적 유산을 소개하고자 한다. 

현재 평화동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며, 평화동에 산재한 문화적 유산을 발굴하고 현대적 의미로 복원하는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글을 주신 서범석 동장께 감사드린다.

김천 황금천주교회(황금성당)가 김천시 학사대길 64에 위치하고 있다. 학사대길은 황금성당을 거쳐 남산공원 뒤편에 있는 개운사(開雲寺)까지 연결되어 있다.

학사대는 통일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말년에 합천 해인사에 잠시 거처하실 때, 김천에 와서 학문을 강론하고 소요하던 곳으로 개운사 바로 앞에 있다.

고운 최치원선생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74년 18세의 나이로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중국에서 벼슬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2년간은 낙양을 유랑하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하였고, 876년 헌강왕 2년에는 당나라 선주(宣州)의 율수현위(栗水縣尉)가 되었다.

뒤에는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변(高騈)의 추천으로 관역순관(館驛巡官)이 되었다. 그리고 곧 이어 879년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제도행영병마도통인 고변의 종사관이 되어 일명 <격황소서(檄黃巢書)>을 지어 반란군을 격퇴함으로써 문명(文名)을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붕괴되어 가는 고국 신라의 국내 사정을 알고 모든 관직을 버리고 입국하여 889년 진성여왕에게 시무책(時務策) 10여조를 올려서 문란한 정치를 바로 잡으려고 하였으나, 시대의 최대 기득권층인 왕족출신 진골(眞骨)들의 방해로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라는 멸망했다.

그 후에는 골품제도의 한계를 절감하고 함양태수를 마지막으로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전국을 주유하며 강학을 해왔다.

이는 오늘날 우리사회 또한 기득권 세력들의 횡포와 변화를 거부하는 작태에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김천황악신문 #김천역로 탐방 #학사대 #서범석 평화남산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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