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샘 (프리랜서 기자.워싱턴 D.C거주)

우리 동네는 올드타운이다. 올드타운의 특징은 안정된 동네, 지은지 오래된 건물, 살기에 좋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괜찮지만 건물들이 오래됐다는 것은 장애인에게 적잖은 불편을 준다. 물론 공공 시설이야 철저하게 장애인 시설을 마련해 놓지만, 개인 주택이나 아파트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의 시설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애인이 이 동네에 이주해 살고자 할 때는 새로 지은 호화 아파트에 살던가 아니면 낡은 아파트를 자기가 스스로 고쳐서 살아야 한다. 나도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찾기 위해 무척 애를 먹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값비싼 아파트로 덜렁 들어갈 수도 없었고, 가격이 낮은 아파트를 구하려니까 대부분 내가 살만한 여건이 마련이 되어있지를 않아 아파트 구하는 데만도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다행스럽게 상가 가까운 곳에 고치면 쓸만한 아파트가 있어 망설임 없이 계약을 했다. 오래 살만한 아파트는 못되지만, 남의 집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 미안해 몇 개월 후에 다시 한번 이사하자는 생각으로 급하게 얻어 들어온 것이다.

아파트에 한국인들도 이웃해 살고 있고, 마켓이 가까워 임시로 차가 없어도 살만큼 불편은 없었지만 현관 밖으로 계단이 두개 있는 것이 큰 흠이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하려면 청년 두세 명의 도움이 있어야만 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아파트 관리인이 그것을 눈치 채고는 목수를 불러 줄 테니까 램프(경사로)를 설치하라고 했다.

약속한 날, 무거운 연장 통을 메고 온 목수는 마이클 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십대의 청년이었다. 일은 네 시 반쯤에 시작되었다. 전기 톱과 전기 드라이버 등 시간을 단축한 만한 장비들을 이용하는 데다 손놀림이 무척 빠른 것으로 보아 오래지 않아 공사(?)가 끝날 것 같다. 이제 경사로를 이용해 오늘 오후에는 어렵지 않게 밖으로 나가 낯선 나라의 이런저런 물건들을 아이쇼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마음대로 집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일은 무척 느리게 진행되어 갔다. 좋은 기계와 빠른 손놀림과 일의 진척은 무관한 것 같다. 재고 자르고 다듬는데 엄청나게 신중을 기울였다. 삼 십 분은커녕 두 시간이 지나도록 모양도 못 갖추고 있었다. 이건 두개 짜리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품을 만드는 것처럼 온 정성을 기울였다. 몇 달 후면 이사를 가게 된다. 우리가 이사를 간 후에 다시 장애인이 이곳으로 들어올 확률은 것의 없다. 그러므로 그 안에 불편없이 쓸 정도만 만들 면되는 것이다. 어디 한군데쯤은 삐뚤어지거나 삐거덕거려도 별지장이 없다. 나는 그런 완벽보다는 어둡기 전에 외출 한번 해볼 수 있는 여유가 더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몇 번씩 눈치를 보였지만, 그는 내 말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기 일에만 열중했다. 그의 정성스러운 손놀림 하나하나에는 장애인에 대한 미국인 특유의 애정과 자기의 일에 대한 애착이 담겨있었다. 일을 한다기 보다는 일에 미쳐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램프 작업은 밤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몰랐다. 혼자만의 외출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한인 이웃들이 한사람씩 작업장 주위로 모여든다. 만난지 오래지 않은 이웃들인데도 우리들은 오래 사귄 사람들처럼 친숙해 있었다. 이웃들은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마이클을 향해 감탄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저렇게 철저해.”

“세상에 저런 거 하나 만들면서도...”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사고 방식 대로라면 저렇게 힘들일 필요가 하나도 없다. 내 전동 휠체어는 백 킬로그램이 조금 넘을 것 같다. 계단이 넓지 않으므로 그다지 크지도 않은 물건이다. 그것만 충족 시켜주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다. 우리 나라의 목수에게 맡기면 삼십 분이면 족히 만들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에게 시간으로 계산해서 작업 비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건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아무리 늦게 까지 일해도 20불밖에는 받을 수가 없다. 그런 데도 그는 몇 시간씩 이 일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저래가지고 어떻게 돈을 벌까. 필요, 시간, 경제성, 어느 것 하나도 나의 한국적인 사고 방식과는 맞물리지를 않아 나는 잠시 혼돈에 빠질 정도였다. 차라리 아이 큐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 내 정신의 혼돈을 수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 마음에 도전을 해왔다. 차라리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신, 그래 저게 미국인들의 정신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철저하게 하고 넘어가는...젊은 목수 한사람으로 봐서는 오히려 손해보는 일이 틀림없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뿌리내린 저런 철저성은 사회를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든든한 받침대가 될 것이다. 누군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진국 국민은 자기가 좀 못살더라도 나라가 잘 살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후진국 국민은 나라가 좀 못살더라도 자기가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나는 마이클의 생활을 안다. 죽어라고 한달 벌어서 아파트 렌트비 내고, 먹고사는 일에 바둥대는 그런 생활이 그의 전부다. 그의 생활을 훔쳐 본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 와서 며칠만 살아보면 예외가 많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상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라를 생각하고, 자기와 별 상관이 없는 한 외국인을 생각할 필요, 아니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그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빨리 일을 마치고 다음 일을 해나가는 것이 그가 그런 생활에서 조금이나마 풀려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지혜로운(?) 방법을 포기하고 나라와 장애인을 잘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어떠한가? 아니 우리 국민은 어떠한가? 과연 장애인을 위해 낡은 아파트에 나무 경사로 하나 만들어가면서 국가와 장애인을 생각해 저만큼의 정열을 기울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이클이 하나 만들 때 다섯 개 이상은 만들 수 있는데, 그러면 옷 한 벌 더 살 수 있는데, 더 좋은 오디오세트를 살 수 있는데, 새 살림 하나 장만할 수 있는데...국가와 어려운 사람을 위해 그런 좋은 것들을 포기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난다. 서울 답십리 어느 연립 주택에 살 때 방 가운데가 주저앉아 베개 없어도 불편없이 잘 수 있었던 기억이. 여름에 완성시킨 그 집은, 지은 사람들이 겨울이 와서 연탄 개스로 사람이 죽어갈 수도 있다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빨리 지어서 일한 만큼의 돈만 챙겨 가면 그만인 것이었다. 다시 안 볼 사람들이고 나만 잘살면 되니까. 실제로 그와 같은 부실 공사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우리 주위에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불평만 했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사회가 그러니까...문득 부끄럽다. 가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가치 있는 일에 혼신을 기울이고 있는 마이클에... 언제쯤 우리는 저런 의식을 갖게 될 수 있을지.

열 시가 넘었다. 주변의 한인들도 이제 언제 끝나느냐는 말조차 꺼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야 어쨌든, 내일의 일이야 어쨌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기어코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뜨거운 의지만이 그의 눈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의 그런 행동하나하나가 우리 한인들의 가슴에 알알이 박히고 있음을 안다. 비록 소수이지만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더할 수 없이 큰 교훈이 되어 더 나은 한국, 더 나은 한국인들이 되게 하는데 일조 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드디어 공사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늦은 밤인데도 한사람도 돌아가지를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누군가는 어느새 카메라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나도 외출은 틀렸지만 완성된 기쁨을 휠체어를 타고 내려가는 것으로 함께 누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열 한시가 되서야 일이 끝났다. 마지막 과정으로 마이클은 램프 위에서 꽝꽝 뛰어 안전성을 테스트하고는 나에게 OK 사인을 보낸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스키 타는 사람처럼 경사로를 내려갔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박수를 쳤고, 사진을 찍었다. 이제까지 돌을 다듬는 조각가처럼 엄숙하기만 했던 마이클의 얼굴에서 훌륭하게 완성시킨 성공자 만이 가질 수 있는 만족한 미소를 비로소 발견할 수가 있었다. 흡족한 것이다. 자기의 정성이 한 장애인을 안전하고 불편없이 외출하게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더없이 기쁜 것이다. 그 기쁨은 손해 본 것 같은 시간과 정열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제 그는 어지럽혀져 있던 주변을 정돈하고 가방에 연장을 담았다. 전기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땀방울이 보석처럼 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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