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샘(프리랜서 기자. Washington D.C)

대형 트럭 적재함에서 물건을 내리고 있는 젊은 운전 기사에게 다가가 거칠게 몰아 붙였다.

필요 이상으로 의도된 나의 분노는 예상치 못한 그의 저자세 앞에서 쉽게 빳빳했던 풀기를 잃었다.

" 거의 다 끝났는데 조금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그렇게 하라고 멋적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나는 잠시 물러서서 그가 짐을 다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문제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발생했다. 출근하면서 살게 있어서 들어가려는데 대형트럭이 휠체어 경사로를 완벽하게 막아 놓고 짐을 부리고 있었다. 평소의 나 같으면 조용히 물러서서 기다리다가 다소 늦더라도 차가 떠 난 다음에 들어간다.

기다리는 동안 시청에서 근무하는 친구 매튜의 말이 생각났다. “너는 다른 장애인을 생각 안해.” 그의 말은 나로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는 항상 사회의 정의를 생각했고 나는 항상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의 사정을 생각했다.

그가 장애 국의 수장으로 있기 때문에 그와 만나면 가끔씩 장애의 문제를 격의없이 나누곤 했다. 당시 나는 미국방성 컨트랙터로 일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와 주변 상가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곤했다.

회사 주변에 있는 맥도날드에 자주 갔는데 화장실 들어가는 복도에 박스들을 쌓아놓아 내 휠체어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치우라고 했는데 갈 때마다 여전히 쌓여 있었다. 걷는 사람들은 통로가 좁아도 쉽게 들어갈 수가 있지만 나는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질 못하는 것이다.

나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정을 생각해 더 이상 항의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그 얘기를 매튜에게 하자 벌컥 화를 내며 당장 조치를 취하게 가게 주소를 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주소를 주지 않았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 건들지 말자고 말했다.. “그러면 안 돼” 그의 말 속에는 다소의 분노도 섞여 있었다. 공익 보다는 사적인 감정을 우선하는 나에 대한.

요즘 미국 남가주에서 공익 소송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장애인들이 의도적으로 상가를 다니며 장애인 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변호사를 선임해 공문을 발상 발송한다.

업주들은 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합의금을 보내고 문제를 매듭 짓는다. 장애인이나 변호사들은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장애인 천국이라는 미국도 장애인에 대한 허점이 너무 많았다. 버스 승차 거부, 화장실 잠금 장치가 너무 높게 되어 있는 것, 출입문이 너무 빡빡하다는 것 그 외에도 조금만 눈여겨 보면 고소해서 합의금 받아 낼 데가 널려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해 줄 하버드 법대 출신 장애인 전문 변호사도 가까이에 있다. 그런데 한 번도 그런 것을 문제 삼은 일이 없다.

제일 화가 났던 때는 버클리 대학 다닐 때 뺀질뺀질하게 생긴 52번 버스 운전 기사였다.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그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승강기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올 때마다 승차를 거부했다. 요즘에야 버스들에 자동 수동 장치가 다 되어 있어서 승차 거부를 할 수가 없지만 당시만 해도 모두 자동이어서 고장났다고 하면 장애인들은 승차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고발해 버리고 싶었지만 살인적인 학습 분량과 운전기사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기 때문에 참고 넘어가곤 했다.

강산이 세 번 변한만큼 살아와서 일까. 조금씩 미국식 정의가 생각나고 공익이라는 것이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부와는 달리 미국 동부 워싱턴 DC 지역은 전문직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까 정부에서 장애인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 전문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참 많다. 제도도 그렇고 시설들도 그렇다.

힘은 부족하지만 하나씩은 고쳐야 되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세븐일레븐 앞에 경사로를 가로막은 트럭을 보게 되었고 원래의 감정 만큼의 노여움 보다는 더 큰 화를 낸 것이다. 사회의 한 구석을 고쳐 나가고 싶은 생각에 어울리지 않는 버럭질을 한 것이다.

그가 짐을 다 내리고 고 기다림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 뒤로 몇 번을 그 대형트럭을 보았지만 한번도 장애인 경사로를 막은 적이 없다. 나를 만날 때마다 그 운전 기사는 당당했다. 나 이렇게 너와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웃음으로 답하며.

어떻게 보면 참 사소한 일이다. 별로 장애인들이 눈에 띄지 않는 한 편의점에서 장애인이 출입하는 경사로 몇 시간 치웠다는 것 뿐이다. 나 이외에 혜택을 받을 장애인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 하찮은 일을 해내기 위해 조금은 민망스런 창피까지 당했지만 나는 나름대로 기뻤다. 사회 한 구석을 조금 더 밝게 했다는 생각 때문에.

조금 더 확대해서 자가 만족해 보자. 이제 그 운전 기사는 어디에 가서도 장애인 경사로를 살필 것이고 거기에 차를 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의 순진한 얼굴이 그런 믿음을 갖게 했다. 그렇다면 그 어느 곳에서 장애인이 가게에 들어서며 겪었을 어려움을 내가 제거해 준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작은 성과를 거두어 문제를 해결한 스스로에게 조금은 자만심을 가져도 되는 것 아닐까? 이제 가끔씩 버럭질 해야 되겠다. 망신을 좀 당하더라도 사회의 한 구석을 조금씩 밝혀 나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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