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우 (김천황악신문 편집고문)

오늘도 가랑비가 내린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인가.

이제 시월도 중순을 넘어선다. 개천절과 한글날이 아무런 느낌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개천절 전후로 태풍 ‘미탁’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제대로(?) 쓸고 지나가면서 많은 피해를 남겼다.

언제부터인가, 마치 두 쪽으로 갈라진 양, 나라 전체가 연일 상대를 향해 칼날을 세우면서 들끓고 있다. 개천절이라면 유구한 역사와 하늘을 기리는 날이 아니던가. 일제의 계교로 단군의 역사는 아직 신화(神話)로 남아 있고, 하늘의 씨앗인 인간의 양심(良心)은 화석이 된지 꽤 오래 되었다. 그뿐이랴. ‘나’에서 ‘우리’로라는 함께하는 정신이 담긴 한글날의 의미는 퇴색한지 이미 오래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놈’, 양심 없는 ‘놈’...

‘나’만 알고, ‘우리끼리’만 챙기는 ‘놈’...

문득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인간이 지닌 세 가지 독한 마음(三毒心)이란 것이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분노, 지혜가 없는 어리석음이란 말씀이다. 셋 모두 마음이 밖으로 치달을 때 일어난단다. 이 삼독심이 불길같이 일어나 밖을 향하면 결국 생명을 해친다.

천지가 유구(悠久)한 것은 무심(無心)하기 때문이라 했던가.

그래! 가을이다.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고 밤낮으로 기온차가 심해지면서 곱게 물든 단풍은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고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라는 노래가 생각나는구나.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을 읊어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런가.

내년 봄, 짙은 매화향(梅花香)을 맡으려면 아직 매서운 북풍한설이 남아있다.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

한번 뼛속에 사무치는 차가움이 없고서야

어찌 코끝을 찌르는 매화향이 얻으리오.

당나라 시대 황벽선사의 게송 한 구절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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