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석 (在美 시인,소설가,수필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자가 아이들 둘을 데리고 한국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카운터로 가서 김치를 찾는다. 이곳 한국 음식점들에서는 김치를 찾는 손님이 많아서 준비했다가 팔곤 하는 것이다. 그 음식점에는 마침 김치가 떨어진 모양이다. 백인 여자는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다. 그녀는 안타까움을 못 이겨 답답함을 해소라도 하려는 듯 속에 있는 말들을 털어놓는다. 자기도 엄청나게 김치를 좋아하고 자기 남편은 물론 이제 서너 살밖에 안된 자기네 아이들도 그렇게 김치를 좋아한다고 법석에 가깝게 떠들어댄다.. 김치를 좋아하는 경지를 넘어서 속되게 말하면 김치에 환장을 한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신기해서 식사도 중지하고 한동안 그 여자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버린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치 냄새 때문에 한국 사람을 경멸하던 미국인들이 어떻게 저렇게 입맛이 변해 한국 사람보다 더 김치를 좋아하는지. 물론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미국인들이 한번 김치에 맛들이면 정신을 못 차리게 먹어댄다. 한국 마켓에서 김치를 찾는 미국인들이 부쩍 늘었다는 신문 기사를 잃은 적이 있다. 일본도 김치를 만들어 미국에 팔아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집에 초대 받아온 미국인은 들어서자마자 김치를 찾아 김치 냄새를 피하기 위해 몇 끼를 김치를 상에 올리지 않은 우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막상 김치가 상에 오르자 그는 중독 된 듯이 김치만 먹어댔다.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 어이없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 다반사다. 우리 친구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형수가 김치를 담궈 가지고 갔는데 그 소식을 들은 간호원 들이 일제히 달려와서 다 먹어 치워버리더라고 한다. 얼마 전에 같은 아파트에 살다 이사 간 로사는 우리 집에 전화만 걸면 김치 타령이다. 김치 먹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라며......어제 오후에는 외출해 돌아오는 길에 잠시 한국마켓에 들렸었다. 아내만 들여보내고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둔 채 차 안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 편 차 운전석에 앉은 60대 백인 노인이 손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집어먹고 있다. 자세히 보니 잡채였다. 그는 잡채를 맨 손으로 집어먹고 있다. 꽤 많은 분량의 잡채를 야만인처럼 맨손으로 먹어 치우더니 이번엔 김밥을 집어들고 정신없이 먹어댄다. 젓가락질을 할 줄 모르는 그는 뭐든지 손으로 집어먹는다. 그 김밥까지 다 먹어 치우고는 유유히 차를 몰고 사라진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즐겨 먹는 것을 볼 때마다 한국인으로서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다. 먼저 이민 온 한인들이 음식 때문에 당한 수난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복수심(?)과 비슷한...

미국에 살면서 한국 음식이 얼마나 좋은 음식인가를 절실하게 깨닫는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거리를 자나며 내 눈을 동그랗게 만든 것은 한국에서는 구경도 하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뚱뚱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비만을 장애인 범주에 넣는다고 들었는데 그 말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걷는데 불편을 느끼는 사람은 약과고 너무 비만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사람들도 상당수다. 걸핏하면 텔레비전에서 비만 때문에 누워버린 사람을 방영하곤 한다.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은 인체라기보다는 거대한 멍석에 쌀을 가득 담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화면에서 본 사람은 천육백 파운드라고 한다. 물론 스튜디오까지 나올 수 가 없어서 집에 카메라를 들고 가서 이원으로 생방송을 한 것이다. 다리 하나가 건장한 남자 크기만 한 것 같다. 그녀는 비통한 표정으로 비만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생존은 힘들고 가만히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미국에는 상당수에 이른다. 미국에서 비만을 막기 위해 각종 체조며 운동기구들을 이용하고 있고 길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숱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운동으로 뺀 살도 사 오 년 후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고 한다. 육류의 과다 섭취로 이미 올라버린 살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음식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네들은 채식을 하려 애쓰는 모습이 눈에 역력하다. 이곳에서는 채식 뷔페집이 성업이다. 작년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무척 넓은 홀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음식은 모두 날 채소. 당근이며 무, 채소 잎사귀들을 깨끗하게 씻어서 날 것으로 파는 곳이다. 익힌 것이라고는 스프와 고구마 구운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8달러씩이나 지불하며 날 식물을 먹어댄다. '참 싸지요'하는 함께 가신 분이 동의를 구하는 말에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날 채소 뜯어먹고 한국 돈으로 육천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그다지 싼 느낌이 들지를 않았다. 미국에 좀 살아봐서 인지 날 채소만 먹는 것이 좀 신선했다는 느낌밖에는...

우리가 그다지 풍족하지를 못하던 어린 시절에 육식을 즐기는 미국인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 건너와서 보니까 그런 부러움이 부질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런 음식 문화가 미국인들을 비만 장애에 몰고 가고 말았는데. 실제로 미국인들은 비만 공포증에 떨고 있고, 그 공포의 농도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살찌는 것이 우리 어렸을 때 공산당 소리 듣는 것만큼이나 으스스한 사실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살찌는 것을 겁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미의 손상, 혹은 건강 악화 정도의 수준이지 미국의 공포 수준까지는 아직 이르지를 못하고 있다. 아무리 육식을 좋아한다 해도 미국인들처럼 밤낮 없이 고기만 먹어대는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우리는 장애라 명칭 할 만큼의 비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 식생활 때문에 한국인은 아직도 보기 좋고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들려오는 반갑지 않은 소식 하나가 있다. 한국 아이들이 한국 음식을 실어하고 피자며 햄버거 같은 것들만 좋아하는. 통계 조사에 의하면 김치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거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좋은 한국 음식들을 우리의 미래의 주인공들이 배척한다는 말은 단순한 섭섭함을 넘어서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미국인들이 중독되다 시피 하는 깊은 맛을 가진 우리 음식이 혀와 입안만 즐겁게 하는 서양 음식에 자리를 내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우리가 한국에 있던 몇 년 전 만해도 우후죽순처럼 피자집이며 햄버거집들이 늘어나곤 했는데, 그것은 또 다른 서양 문화의 분별없는 수용 같아서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좋다는 말이 생각난다. 좋지 않은 문화의 침투를 막기 위해 직접 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미국에 와서 음식 때문에 비만이 되어 죽음에까지 이르는 흉측한 모습을 수 없이 보아도 한국에서 핏자집이 그렇게 늘어날지.

과한데서 부터 병이 시작되는 것 같다. 적당히 즐기는 서양 음식은 괜찮지만 주식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다.

새빨간 김치를 얼굴 찡그리지 않고 먹어대는 세 살짜리 금발 아이, 결국 저 아이들에게 우리의 좋은 음식 문화를 빼앗기고 우리는 좋지 않은 식생활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나 아닌지. 그로 인해 야기될 한국의 뚱보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한국 사람은 키도 작은데......

한국 아이들이 한국 음식을 싫어하게 되는데는 주부들의 음식에 대한 무성의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예전 우리 어머님들이 만드시는 음식은 유난히 맛깔스러웠다. 맛있는 동치미와 고추장만 있어도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먹어 치우곤 했다. 그것은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음식 만드는 일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는 주부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음식 만드는 일에 온 신경을 쓴다는 것은 비생산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음식 만드는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살을 빼려고 운동하러 다니는 시간 조금 절약해서 음식 만드는 일에 투자한다면 더 효과적이 아닐까 싶다. 정성 들여 마련한 한국식 식사로 햄버거를 대신한다면 자기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비만까지도 치료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무분별한 서양식 음식 문화 수용도 제지할 수 있을 텐데.

한국의 좋은 음식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문화 중에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 하나있다. 음식 만드는 일을 주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참여했으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남편이나 아이들도 곧잘 음식을 만든다. 한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함께 식사 준비를 하다보면 가족간의 사이도 훨씬 좁혀지고 여자 혼자서 감당하는 부엌일을 나누어 가짐으로 시간도 훨씬 절약될 것이다. 끼니 때마다는 어렵더라도 저녁 한끼쯤은 그런 식사가 됐으면 좋겠다.

온 가족이 만들어 함께 맛있게 먹는 좋은 한국 음식, 그것이 우리 한국의 미래의 음식 문화가 됐으면 싶다.

-주요경력

1992년 미국 이민(미국 시민권자)

LA Harbor College 졸업 (2002)

동아일보 도깨비 뉴스 리포터(Part time)

국립국어원 통신원

UC Berkeley 사회학과 전공 (2004)

탐하킨 민주당 상원의원 인턴 (2004년 여름)

라디오코리아(미국) 인터넷 칼럼니스트 외.

-저서

시집『빈터』『이별 다음에』『너』『불꽃놀이』

장편소설『겨울 달이 허문 모래탑』『저울 위에 앉은 허수아비』

에세이『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어때요』

정보도서『베이비척척박사』외.

-수상경력

하버칼리지 최우등 졸업(편입과정 4.0/4.0)

윈첼 스칼러십(사회학과 학생 중 1년에 한 명 수상)

버클리 사회학과 장학생

골든 키 장학생

내셔널 장학생(미 대학 0.5% 안에 드는 학생에 수여)

인터내셔널 장학생

총영사관 장학생

중앙일보 장학생

한국일보 장학생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 우수 도서 선정(1992 문예진흥원 선정,

2009년 워싱턴문학상 가작) 외.

-대표작

불멸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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